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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렌즈] '피크 코리아'와 '피크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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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렌즈] '피크 코리아'와 '피크 트럼프'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이미지 확대보기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한국이 저성장 고착화 구조에 빠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해 소비 동력이 떨어지고, 성장 엔진이 식어가는 경제 지표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한국의 전분기 대비 성장률은 고작 0.1%에 그쳤다. 연간 성장률 2.0%를 턱걸이했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을 애초보다 0.2%포인트 이상 낮춰 1.6~1.7%로 제시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상경 계열 교수 111명에게 ‘피크 코리아(Peak Korea)’에 동의하냐고 물었더니 3명 중 2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제로 성장 공포가 새해 한국 경제를 엄습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한국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가 터졌다. 그사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해 미국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 질서를 송두리째 갈아엎으려 든다.

트럼프의 재등장은 외교·안보와 경제 분야에서 한국에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검토, 한국산 수입품에 10~20%의 보편 관세 부과 등으로 공세의 고삐를 바짝 죌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2기 정부는 조 바이든 전임 정부가 추진한 산업정책을 속속 폐기하고 있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비즈니스에도 선명한 적신호가 들어왔다.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들이 ‘반도체 지원 및 과학법’에 따라 미 정부의 보조금을 받기로 한 계약을 트럼프 정부가 이행하지 않으려 한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지명자는 최근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미국 정부계약 이행에 관해 “말할 수 없다. 내가 읽지 않은 무엇을 이행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러트닉은 특히 “일본의 철강, 한국의 가전우리를 그저 이용했다”며 “이제는 그들이 우리와 협력해 그 생산을 다시 미국으로 가져올 때”라고 주장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수천억~수조원 규모의 미국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이행 중단과 멕시코에 대한 25% 관세 부과 위협 등으로 현대차 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등 K-배터리 업체들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파상 공세가 한국과 한국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정책 우선순위와 이를 집행하는 타이밍에 달려 있다. 그가 취임 10일 만에 300여 개의 행정명령을 쏟아내며 속도전에 나서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끝내기는 불가능하다. 지금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과 글로벌 기업들이 자국과 자사에 악영향을 미칠 트럼프 정책을 최대한 뒤로 늦추거나 예외를 인정받으려고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속전속결로 나오는 이유는 시간이 갈수록 자기 힘이 빠지고, 국정 동력이 꺼져간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파워는 지금이 ‘피크’이고, 이것이 얼마나 지속될지가 관건”이라고 짚었다.

공화당이 상원과 하원의 다수당을 차지했고, 미 대법원도 보수파 6, 진보파 3명으로 구성돼 있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제왕적 패권을 휘두를 수 있는 완벽한 환경이 조성돼 있다. 글로벌 경제 분야에서도 미국만 유일하게 순항하고 있다.

그렇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2년이다. 내년 말 하원의원 전원과 상원의원 3분의 1을 새로 뽑는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이 상원과 하원의 다수당을 모두 뺏기거나 최소한 한쪽을 지키는 데 그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정부에서 한·미 관계, 미국의 한반도 정책, 한·미 경제 관계는 모두 올해와 내년 사이에 판가름 난다. 공약은 쉽지만, 이행은 어렵다. 한국이 이 점을 파고들어야 한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