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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렌즈] 대왕고래 프로젝트 침몰과 한국판 '딥 스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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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렌즈] 대왕고래 프로젝트 침몰과 한국판 '딥 스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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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직접 발표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매장 가치가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 정도”라고 거들었다. 그러나 산업부가 8개월이 지난 6일 “경제성을 확보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발표했다. 한국의 산유국 꿈은 다시 한번 허망하게 깨졌다.

산업부는 그 책임을 용산 대통령실 측에 돌렸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첫 케이스에서 성공할 확률은 로또 맞을 확률보다 낮은데 여러 정무적인 이유로 많은 부담을 안고 진행했다”고 실토했다. 말하자면 ‘늘공’(늘 공무원) 집단인 산업부가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정점에 있는 용산 대통령실의 정무적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한국에서 벌어진 대왕고래 프로젝트 논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는 ‘딥 스테이트(deep state)와의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좌파 성향으로 정부를 좌지우지하는 기득권 집단인 딥 스테이트가 워싱턴 D.C. 관가에 포진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들을 연방정부에서 축출하고, 정부 조직도 최소한으로 슬림화하려고 한다.

트럼프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정부효율부’ 수장으로 발탁하고, 그에게 큰 칼을 쥐여주었다. 성소수자 인권 보호 등 진보 이념 교육을 추진한 교육부, 재난 구호와 인도주의적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국제개발처(USAID), 은행과 금융기관 감독 업무를 맡는 소비자금융보호국 등이 존폐의 갈림길에 섰다.
법무부, 연방수사국(FBI), 중앙정보국(CIA) 등 사법·정보 당국에도 사정의 칼바람이 불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정부 기관이 딥 스테이트의 대표적인 본거지라고 여긴다. 이들 기관에서 비밀스러운 늘공 관료 집단이 선출직 어공의 권력을 약화시키려고 사보타주를 한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다. 팸 본디 법무장관이 취임과 동시에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법무부와 FBI 상대로 사법 시스템을 '무기화한 공직자' 조사에 착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딥 스테이트에 발목이 잡혀 있는 양대 기관으로 국무부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꼽았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마이크 왈츠 국가안보보좌관은 정부 부처에서 NSC 파견된 약 160명과 법무부 고위 변호사 20여 명을 즉각 해고했다. 트럼프 대통령 정권 인수팀은 NSC에 파견된 공무원들을 상대로 지난해 대선에서 누구에게 투표했는지와 정치자금 기부 현황, 소셜미디어(SNS)에 트럼프 비난하는 글을 게재했는지 조사했다.

트럼프 정부는 또 자발적 퇴직을 통한 정부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NBC 뉴스에 따르면 퇴직을 선택한 공무원이 6만 명을 넘었다. 이는 연방정부 내 일반직 공무원 200만 명의 3%가량이다. 백악관은 늘공의 5~10%를 잘라낼 계획이다. 미 인사관리처 오는 9월 말까지 급여와 각종 혜택이 유지되는 조건으로 자발적 퇴직 신청을 받고, 이 기회를 이용하지 않은 공무원은 해고 대상이 될 것이라고 압박했다.

딥 스테이트는 애초 민주주의 제도 바깥에서 은밀하게 운영되는 '그림자 조직'을 뜻하는 말이다. 이 말이 미국 연방정부가 비밀 공무원 집단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음모론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 실체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 침몰 사태를 겪으면서 한국 정부 내 딥 스테이트 같은 늘공과 어공의 관계 재정립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세종시의 늘공이 용산 어공의 정무적 요구를 미국에서와 같은 이념이나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보신을 위해 방임하고 있지 않은지 따져볼 일이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