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글로벌 렌즈] 한국 정부·기업의 '트럼프 사용법'

글로벌이코노믹

[글로벌 렌즈] 한국 정부·기업의 '트럼프 사용법'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이미지 확대보기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 무차별 살포로 세계 주요 국가들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승리하려면 무엇보다 트럼프라는 인물을 잘 알아야 한다. 그다음으로 트럼프 정부의 움직임과 전략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이때 다른 나라들의 성공과 실패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 한국이 맞춤형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린아이처럼 자랑하기를 좋아하고, 본질(substance)과 내용보다는 체면이나 모양새(optics)를 중시한다. 자기가 돋보였다고 느껴지고, 미디어의 주목을 받으면 성공으로 여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집권 1기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이다. 그는 미국 대통령 최초로 김 위원장과 싱가포르·베트남 하노이·판문점에서 세 차례 만났다. 이 중에서 트럼프가 판문점 회담에 가장 만족했다고 미 국무부의 한 고위 당국자가 기자에게 말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김정은과 함께 판문점을 넘나드는 광경이 미국의 주요 방송을 통해 일제히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고, 그 이후에도 이 모습이 끝없이 미국과 세계 미디어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트럼프-김정은 회담은 북핵 외교사에서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김 위원장의 위상만 한껏 높여주었을 뿐 트럼프가 실질적으로 얻은 성과는 없었다.
트럼프가 가장 먼저 관세 폭탄을 투하했던 멕시코와 캐나다의 사례에서도 그의 보여주기식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트럼프는 지난 1일 마약 펜타닐과 불법 이민자 유입 등을 ‘징계’하는 차원에서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가 발효를 하루 앞둔 3일 협상 끝에 관세 부과 시점을 30일 유예했다. 멕시코와 캐나다는 이미 취했던 국경 강화 조처를 재가공해 새로운 내용인 것처럼 트럼프에게 제시했고, 트럼프는 이를 ‘승리’로 포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주요 언론은 “트럼프가 뒤로 물러선 것”이라고 혹평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트럼프를 만나 대형 대미 투자와 가스 수입 확대 약속’으로 미국의 관세 예봉을 피했다. 미국 언론은 이시바 총리가 '아부의 기술'로 트럼프의 환심을 샀다고 평가했다.

이시바 총리는 2023년 기준 8000 달러 수준인 일본의 대미 직접 투자액을 1조 달러까지 확대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알래스카 석유·천연가스 개발 프로젝트와 관련해 합작 의향을 내비쳐 트럼프 대통령을 흡족하게 했다. 하지만 일본 기업들은 이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최근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투자를 비롯해 대미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세계 2위 LNG 수입국인 일본이 알래스카 가스 수입을 확대하는 것은 실질적인 선물이 아니다.

한국이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할 때는 ‘실리’ 노출을 최대한 감추면서 그가 승리한 것처럼 ‘포장’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트럼프한국과 조선 분야 협력 희망을 직접 피력했다. 백악관철강에 대한 25%의 관세를 복원하면서 “최근 현대제철이 미국에 제철소 건설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백악관은 이에 앞서 멕시코·캐나다·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를 발표하는 설명 자료에서도 현대차·현대제철·삼성전자·LG전자 등의 대미 투자를 관세 효과의 주요 사례로 제시했다.

박종원 산업부 통상 차관보를 단장으로 한 한국 정부 대표단이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17일 워싱턴에 온다. 대통령이나 총리가 나서도 시원찮을 판에 차관보급 방문이 한없이 초라해 보이지만, 트럼프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예쁜 ‘포장지’를 많이 준비해 왔기를 바란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