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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금문도 고량주와 트럼프-시진핑 "대만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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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금문도 고량주와 트럼프-시진핑 "대만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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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글로벌 이코노믹 연구소장
대만 하면 ‘금문 고량주’부터 연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고량주는 수수를 원료로 만든 증류주다. 중국 한자로는 高梁酒다. 현지 발음은 가오량지우. 희다는 의미의 白乾 또는 白干, 즉 빼갈로 부르기도 한다. 중국을 대표하는 술이다. 이 고량주의 원산지가 바로 금문도(金門島)다. 중국말로 진먼다오다. 중국 본토와 대만 사이에 있는 섬이다. 진먼다오는 중국 본토 후젠성 샤먼시에서 5㎞ 정도 떨어져 있다.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지척(咫尺)이다.

홍콩발 중국 샤먼행 비행기를 타고 갈 때 금문도는 마치 중국에 딸려있는 부속 섬처럼 보인다. 진먼은 그러나 중국 땅이 아니다. 중국이 1949년 공산당과 국민당으로 분열될 때부터 지금까지 진먼은 줄곧 대만의 영토였다. 진먼과 대만 섬의 거리는 200㎞ 정도다. 대만 땅이지만 대만보다는 중국 대륙에 훨씬 가까운 곳이다. 진먼은 국공 내전 이후 지금까지 중국 인민해방군과 중화민국의 대만 국방군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최전선이다. 이 진먼다오에서는 실제로 여러 번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금문고량주는 중국-대만 전쟁 때문에 대량생산이 되기 시작했다. 중국 공산당에 맞서 전투를 벌이던 대만 군대의 사기 진작을 위해 장제스 정부가 대대적으로 수수를 재배하고 또 전략적으로 주조시설을 확대하면서 금문 고량주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대만 진먼다오에 위치한 지방공기업인 '진먼주창(金門酒廠)'이 주로 생산하고 있다. 알코올 도수 38%와 58% 두 종류가 많이 팔린다. 요즘은 중국 본토 사람들도 대만 금문 고량주를 즐긴다. 술을 빚을 때 화강암반에 있는 지하수를 사용하기 때문에 사용되는 물의 불순물이 적어 숙취가 다른 백주보다 적은 편이다.

금문도에는 우리나라의 현충원과 유사한 충렬사가 있다. 중국과의 전쟁에서 희생된 대만의 군인과 애국 충절을 기리는 곳이다. 이곳에 뜻밖에도 한국인 기자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그 위패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최병우(崔秉宇)다. 최병우는 1924년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전 언론인이다. 1958년 한국일보 계열의 코리아타임스 소속으로 진먼다오에서 중국-대만 전쟁을 취재하다가 대만해협에서 조난 중 실종됐다.
대한민국 역사상 종군 취재 중 목숨을 잃은 유일한 기자다. 최병우 기자는 조선일보 외신 차장 및 부장, 한국일보 외신부장을 거쳐 한국일보 논설위원 및 코리아타임스 편집국장을 지냈다. 한국 언론에서 국제뉴스의 지평을 연 최초의 글로벌 기자로 볼 수 있다. 관훈클럽의 창립회원 18명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대만 당국은 2008년 8월 진먼 포격전 50주년을 맞아 최병우의 위패를 진먼의 충렬사에 봉안했다.

최병우 기자는 이른바 1958년 '8·23 포전' 당시 중국과 대만의 포격전 취재를 위해 진먼으로 갔다. 중국 인민군은 당시 각종 대포를 이용해 진먼다오 150㎢ 지역에 47만 발의 포탄을 쏟아부었다. 워낙 많은 포를 쏘았던 탓에 지금도 금문도에서는 땅을 파면 쇳조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만은 이 포탄 조각으로 대형 식칼을 만들어 금문도를 방문하는 관갱객들에게 기념품으로 팔고 있다. 중국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사각형 모양의 고기 써는 초대형 주방장 칼이 바로 이곳 포탄 유탄으로 만들어졌다. 최병우 기자는 1958년 9월 26일 진먼다오 취재 중 일본과 대만 기자 등과 함께 상륙정을 타고 가다 높은 파도에 휩쓸려 배가 전복되면서 순직했다. 시신은 끝내 찾지 못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최병우 기자가 그 머나먼 금문도까지 왜 갔을까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금문도 포격전의 지정학적 중요성이다. 당시 국제정세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미국과 중국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주한미군의 대만해협 이동 배치 가능성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던 시점이었다. 최병우 기자는 금문도 포격전의 후폭풍을 내다보고 있었다. 주한미군이 대만으로 대거 빠져나가면 북한으로서는 그 빈틈을 노리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 있다. 한마디로 금문도 포격전은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 우리의 안보와 직결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한국과 대만의 안보 상황이 서로 연계될 수 있다는 군사 정치학적 가설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하다. 1950년 북한이 기습 남침을 했을 때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한국에 미군을 파병했다. 이른바 미국의 한국전 참전이다. 이때 미국이 동시에 취했던 조치가 대만해협에 항공모함을 파견한 것이다.

최근 미국 국무부가 홈페이지에서 '대만 독립 반대' 문구를 삭제한 사실이 드러나 주목을 끌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는 최근 홈페이지의 '대만과의 관계에 관한 팩트시트' 자료를 업데이트하면서 "우리는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삭제했다. 아울러 대만이 미국 국방부의 반도체 개발 프로젝트 등에 협력하고 있다는 문구도 추가했다. "적절한 국제기구의 가입을 포함한 대만의 의미 있는 참여를 지지한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미국의 역대 행정부는 대만 문제와 관련해 '하나의 중국 정책'을 견지해 왔다. 이 정책은 미국이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고, 중국이나 대만 어느 한쪽이 현 상황을 일방적으로 바꾸는 것에 반대하며,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기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런 정책의 뼈대를 이루는 문구를 일부 삭제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기 행정부가 대만에 대한 지지 의사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해군 구축함이 대만해협을 통과하기도 했다. 대만 외교부는 미국 국무부의 자료 수정과 관련해 "미국과 대만 관계에 대한 긍정적 입장과 지지 표명을 환영한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문제는 중국의 반응이다. 1979년 미·중 양국 수교 당시 미국은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며 대만 독립에 반대한다는 문구를 국무부 공식 홈피에 게재해 왔다. 당시 덩샤오핑이 미국을 직접 방문, 공식 수교에 서명할 때 중국은 이 같은 입장을 관철, 미국의 양보를 받아냈었다. 미국이 이 문구를 폐기한 것은 유사시 대만에 개입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미·중 양국 관계의 기본 대전제를 흔드는 것으로 중국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중국은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보고 있다.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통일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중국은 상호 보복관세를 때리고 있다. 무역전쟁이 이미 시작된 셈이다. 경제 전쟁은 자칫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경우 대만이 전장이 될 수 있다. 관세 폭탄에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만에서 벌어질 수도 있는 미국과 중국의 전면전에 대한 선제적 대응도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 제1호 종군기자 최병우의 정신을 다시 새겨본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주필/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