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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나무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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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나무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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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빛이 제일 먼저 닿는 곳, 땅끝마을이 있는 해남 일대로 여행을 다녀왔다. 우수절 아침 용산역에서 KTX 열차를 타고 나주까지 가서 다시 승용차로 갈아타고 2박 3일 동안 나무를 찾아다녔다. 외기는 냉랭하고 바람도 사납게 불었다. 하지만 이 추위는 우수절 얼음같이 곧 사라지고 봄기운이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제일 먼저 찾아간 것은 나주 송죽리의 금사정 동백나무다.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로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죽고 개혁 세력의 선비들은 숙청되었다. 그 개혁 세력 중에서 조광조를 따르던, 나주가 고향인 유생 11명이 금강계(錦江禊)를 조직했다. 영산강 아래 터에 정자를 지어 금사정(錦社亭)이라 이름 짓고, 그 앞에 동백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세상이 변해도 사철 푸른 동백나무처럼 이루고자 했던 마음을 잊지 말자는 뜻을 담은 기념식수였다.

나주 금사정 동백나무는 1530년에 심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동백나무다. 키는 6m이고 뿌리 부근 둘레는 2.4m로 천연기념물(515호)로 지정되었다. 과거 여수에 더 오래 살았던 동백나무가 있었는데 태풍에 쓰러졌다고 한다. 송죽리 동백나무는 수세가 좋고 가지의 밀도가 높아서 부챗살처럼 뻗어 규모가 튼실하다. 정자는 임진왜란 때 불타고 몇 차례 다시 지어 지금 건물은 1993년에 지은 것이다. 이곳 정자는 외벽을 두르고 있다. 결사체를 이룬 초기에는 살림채를 짓고 지켰다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동백꽃은 11월에서 4월까지 피는데, 대부분 3월에 피는 것이 많다. 잎은 진초록이고 꽃잎은 붉은색이며 꽃가루는 노란색이라 대조가 되어 아름답다. 점점이 붉게 피는 꽃도 아름답지만 떨어진 꽃송이 또한 아름답다. 아직은 계절이 일러 그 고운 꽃을 보지 못하고 떠나는 게 못내 아쉬웠다.

이어 찾아간 곳은 나주 공상면 상방리의 호랑가시나무다. 금사정 동백나무에서는 6㎞ 떨어진 가까운 거리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을 도와 공을 세운 이 마을 출신 오득린 장군(1564~1637)이 마을에 정착하며 심었다고 하니 수령이 400년 정도 된 나무다. 높이는 5.5m로 제법 크고, 뿌리 근처 줄기 둘레는 1.7m다. 가지가 반구형으로 퍼져 아름답다. 보는 방향에 따라 수형은 조금 다르다. 지세를 보호하기 위해서 심은 나무인데, 암수 나무를 심어 마을의 화목을 위한 뜻도 있다고 한다. 호랑가시나무 잎은 오각형 또는 육각형인데 모서리마다 가시가 튀어나와 있다. 잎은 두툼하고 가시는 단단하고 날카롭다. 호랑가시나무는 잎에 난 가시가 호랑이 발톱처럼 날카로워서 붙인 이름이다. 등을 긁기 좋다고 하여 '등긁기나무'라고도 한다. 호랑가시나무의 자람터 한계선은 변산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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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를 떠나 전남 영암군 군서면 월곡리 느티나무를 찾았다. 면사무소 옆 도로변에 우뚝 서 있는 월곡리 느티나무는 키가 23m나 되는 매우 큰 나무다. 아파트 건물 한 층의 높이를 대략 3m쯤으로 볼 때, 무려 8층에 가까운 높이다. 펼쳐진 가지는 그보다 더 크다. 남북으로 25m, 동서 방향으로는 무려 29m나 된다. 철책 주변으로 초록빛이 살아나며 개불알풀, 광대나물 꽃 등이 피어 바람을 타는데 느티나무는 여전히 잿빛 겨울이다. 마을의 정자나무로서 오가는 손님과 마을 사람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며,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도 해왔다. 정월 대보름에는 이 나무를 중심으로 풍악 놀이를 하며, 명절 때마다 나무에 금줄을 치고 제물을 바치며 풍년을 기원하고 있다고 한다.

뒤이어 천연기념물 제241호로 지정된 해남 연동리의 녹우단 비자나무 숲과 대둔산 왕벚나무 자생지도 둘러보았다. 해남 연동리의 비자나무 숲은 해남 윤씨 시조의 사당 뒷산에 있으며 나무의 나이는 530년 정도로 추정된다. 해남 윤씨 선조의 유훈을 받들어 가꾼 인공 숲이다. 왕벚나무는 장미과에 속하는 나무로서 꽃은 4월경에 잎보다 먼저 피는데 백색 또는 연한 홍색을 띤다. 지형이 높은 곳에 자라는 산벚나무와 그보다 낮은 곳에 자라는 올벚나무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이란 설도 있으나, 제주도와 전라남도 대둔산에서만 자생하는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귀한 나무들을 만나고 온 덕분일까. 내 안 가득 초록 봄기운이 감도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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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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