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글로벌 렌즈] 美 '해방의 날'에 울리는 '전면전' 총소리

글로벌이코노믹

[글로벌 렌즈] 美 '해방의 날'에 울리는 '전면전' 총소리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이미지 확대보기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일(현지 시각)을 ‘해방의 날(liberation day)’로 선언했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 무역 상대국에 ‘상호 관세’를 부과해 그동안 착취당했던 미국이 마침내 해방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국 등의 입장에서 이날은 미국과의 통상 전쟁이 국지전이 아니라 전면전으로 바뀌는 날이다. 세계사적으로는 지난 80여 년간 발전해온 자유무역 체제가 붕괴하는 날이다. 트럼프 재등장에 따른 불확실성과 혼돈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날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 관세를 비롯한 관세 정책을 놓고 오락가락하는 것은 사실이다. 치밀한 협상 전략인지, 특유의 직감에 따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관세의 범위와 정도, 대상 품목 등을 놓고 발언 수위를 올렸다 내렸다가 다시 올리는 널뛰기를 계속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의 발언과 태도가 어떻든 그가 여태껏 없었던 글로벌 무역 전쟁에서 절대로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전술의 변화가 있을 수는 있으나 그는 이미 관세 전쟁에 올인했다.

트럼프 정부가 꼽은 핵심 교전 상대국에 한국이 올라와 있는 것은 물론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31조원 규모 대미 투자 발표 현장에서 “현대차는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한 것은 립서비스일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 현대차를 비롯한 수입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포고문’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안이나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등이 충분히 긍정적인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한·미 양국 간 관세를 철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한·미 FTA가 한국의 보호막이 결코 될 수 없다는 의미다.

한국은 대미 무역 흑자 규모 기준 8위 국가다. 오는 4월 2일 ‘해방의 날’에 한국 상공에 거대한 관세 폭탄이 무차별로 투하된다. 또한 이와 별개로 자동차에 이어 반도체·배터리 한국의 핵심 수출 품목을 과녁으로 한 정밀 타격용 폭탄이 동시에 발사된다.

대응책은 두 가지다. 하나는 협상이고, 또 하나는 보복이다. 미국과 전쟁을 치러야 하는 국가들은 이 두 가지를 병행하기 마련이다. 캐나다, 멕시코, 유럽연합(EU) 회원국, 중국이 그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한국 정부는 보복 카드를 아예 접어두고, 협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 알래스카 천연가스 수입 확대, 조선 분야 협력 등이 한국이 손에 쥐고 있는 칩이다. 한국은 한·미 군사 협력 체제로 대북 억지력을 유지하고 있어 대미 레버리지가 약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무역 전쟁에서 한국이 무조건 수세에 몰려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관세 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넘어갈 때 미국 경제 주체들이 고통을 버텨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벌써 관세 전쟁의 여파로 미국 경제 전반에 걸쳐 경고음이 커지고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으며, 불확실성이 심화하고 있다.

뉴욕 증시의 주요 주가지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관련 발언으로 춤을 추고 있다. 그가 관세와 관련해 유화적인 발언을 하면 주가가 뛰고, 강경 발언을 하거나 정책을 내놓으면 곤두박질친다.

주가가 하락하면 부유층과 중산층의 소비가 위축되고,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줄여 경기가 둔화하기 마련이다. 그런 현상이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월가의 주요 투자은행들은 앞다퉈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확률을 높이고 있다.

미국과의 통상 전쟁은 한판 승부가 아니다. 한국 정부와 기업은 자유무역 체제가 무너지거나 미국 경제가 침몰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포함한 단계적 대응책으로 장기전을 준비해야 한다. 개전을 알리는 총성은 이미 울렸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