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주장은 이렇다. 미국이 모든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매기면 다른 나라들이 고통을 받아 미국 수출품에 자국 시장 문을 열어 미국의 수출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또 미국이 부과한 관세를 낮추려고 다른 나라들이 미국과 협상을 하려 들 것이며 미국은 이때 관세율을 내려주면서 상대국의 관세·비관세 장벽을 허물 수 있다고 한다. 미국과 글로벌 기업들은 관세 부담을 줄이려고, 미국으로 생산 시설을 앞다퉈 이전함에 따라 미국의 제조업이 부활하고, 미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체제가 구축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최상의 시나리오’일 뿐이다. 미국과 글로벌 경제계는 그 정반대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우려한다. 우선 미국이 관세로 인해 인플레이션 재상승, 기업 투자와 소비 위축, 고용 시장 둔화, 주가 급락 등의 대혼란 사태에 빠질 수 있다.
세계 1위 경제 대국인 미국이 침몰하면 다른 나라 경제도 동반 추락할 수 있다. 지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전을 거듭해온 글로벌 자유무역 시스템이 붕괴해 거의 모든 나라가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할 수 있다.
월가는 벌써 관세 전쟁으로 미국이 경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공포감에 휩싸여 있다. JP모건 체이스의 마이클 페롤리 미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상호 관세만으로 올해 인플레이션이 1.5%포인트 올라가고, 개인 소득과 소비 지출 감소로 미국 경제가 침체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UBS의 조너선 핑글 미국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상호 관세 여파로 미국 경제가 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하는 기술적 침체에 빠질 것으로 내다봤다. RBC캐피털마켓츠의 뉴욕 증시 간판 지수인 S&P500 지수가 지난 2월 고점 대비 최대 20%의 낙폭을 기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월가의 투자자들은 미국 경제만 침체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경기 침체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며 주식 투매에 나서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혼란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 문제는 그가 이를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이해시키면서 미국 유권자의 인내심을 관리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미국의 현대사를 보면 유권자들에게 그런 인내심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인들은 정부의 경제 정책으로 주가가 급락하며 물가가 뛰고, 일자리가 사라지면 선거를 통해 예외 없이 정권을 호되게 심판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말기에 터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물가 불안 등 경제적 혼란을 수습하지 못해 2020년 대선에서 조 바이든 전임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바이든은 팬데믹을 거치면서 치솟은 인플레이션 탓에 다시 트럼프에게 정권을 내줬다. 그런 트럼프에게 관세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재상승이라는 시련이 다가오고 있다. AP 통신은 “이것은 시간과 잠재적인 유권자 반발의 싸움”이라고 진단했다.
CBS가 지난달 말 2609명의 미국 성인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5%가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문제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인플레이션에 '충분히 집중하고 있지 않다'는 답변이 64%에 달했다. 또 77%가 관세로 인한 단기 물가 상승을, 47%가 장기적 상승을 예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나라와의 향후 관세 협상에서는 물러서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유권자들이 돌아서면 견딜 수가 없다. 관세 전쟁의 열쇠는 결국 미국 유권자들이 쥐고 있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