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만 상품전략연구소장

오락가락하는 미국 관세정책을 보면, 어릴적 동화가 생각난다. 옛날 한 마을에 스스로 벽을 쌓아 고립된 '왜 눈박이 괴물'이 있었다. 그는 외부와의 소통을 거부하며 점차 외톨이가 되어갔다. 세계 강대국 미국의 모습이기도 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며, 그의 대표적 정책인 '관세 전쟁'이 세계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운 이러한 관세 정책은 동맹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글로벌 공급망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관세로 인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미국은 점차 '세계의 괴물'이라는 이미지마저 낳고 있다. 이 칼럼에서는 세계와 미국, 그리고 한국이 이 흐름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점검해본다.
협상카드 된 관세 장벽, 유럽과 아시아 긴장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유럽연합과 아시아 국가들에 '미국과의 무역 신뢰 붕괴'라는 후폭풍을 남겼다. EU는 2018년 미국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고율 관세가 부과되자 즉각 보복 관세로 대응했다. 유럽산 오토바이, 위스키, 청바지 등에 맞관세를 부과하며 정치적 압박도 병행했다. 유럽은 이후 '전략적 자율성'을 외치며 미국 의존 탈피를 본격화했다.
각국의 대응은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독일은 산업 연계를 고려해 대화를 우선시했고, 프랑스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강경한 대응을 주문했다. 영국은 자국 철강 산업 보호를 위해 신중한 협상 노선을 택했다. EU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은 "유럽은 가장 오래된 동맹국에 실망했다"고 말하며 깊은 불신을 드러냈다.
아시아도 즉각 반응했다. 중국은 미국과의 관세 전쟁에서 농산물·기계류 등 주요 품목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며, 미국 기업에 대한 규제 가능성도 시사했다. 일본은 다자무역체제 복원을 위해 CPTPP를 주도했지만, 트럼프의 압박에 결국 양자 협상 테이블에 나서게 됐다. 대만은 미·중 갈등을 피하며 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입 확대를 통해 미국과의 관계 유지를 모색했다.
한국도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트럼프가 "한국은 관세를 4배 부과했다"고 주장하자, 정부는 "한미 FTA에 따라 대부분 무관세"라며 사실을 정정했고, 외교 채널을 통해 갈등 최소화에 주력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는 미국의 관세 장벽에 대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탈미국화와 새로운 경제 연대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 내 경제 전문가들의 우려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한 비판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와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등은 '고립된 보호무역'이 미국 산업을 약화시키고 글로벌 공급망을 교란시킨다고 분석한다. 소비자물가 상승과 수출 감소, 제조업 투자 위축이라는 부작용이 이미 현실로 나타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의 54%가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반대한다. 특히 응답자의 3/4은 관세로 인해 생필품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 1월보다 지지율은 감소했고, 경제 정책 전반에 대한 부정평가가 찬성을 앞질렀다.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관세는 미 경제를 보호하는 도구가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미국을 점점 더 외톨이로 만드는 전략"이라고 비판했다. 블룸버그는 "트럼프의 관세는 결국 소비자와 기업 모두를 힘들게 한다"고 지적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도 최근 보고서에서 "관세는 물가 상승을 자극해 연준의 금리인상 부담을 높이고, 결국 경기를 위축시킨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최근 미국 증시도 관세 불안으로 흔들리고 있다.
한국의 대응은 관세 장벽을 넘는 전략적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은 미·중 간 통상 충돌과 미국발 관세 압박 속에서 민첩하게 대응해왔다. 과거 철강 관세 부과 당시 일정 물량에 대해 면제를 얻어내며 협상력을 입증했다. 하지만 트럼프식 관세주의가 재등장할 경우, 보다 구조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공급망 다변화, 전략물자 지정 확대, 대미 수출기업에 대한 맞춤형 지원 정책 등을 추진 중이다. CPTPP 가입 검토와 아세안·EU와의 통상 협력도 강화될 전망이다. 대응의 핵심은 '미국 의존 축소'와 '대체시장 확보'에 있다. 변화에 휘둘리지 않고, 시장을 선제적으로 설계하는 전환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 경제계와 정부, 협력과 대응 전략
한국 경제계와 정부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적극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경제계는 미국의 관세 부과로 인한 수출 감소와 생산 비용 증가를 우려하며, 정부에 보다 적극적인 협상과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 전자, 철강 등 주요 수출 산업은 미국 시장에서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외교적 채널을 통해 미국과의 협상을 강화하고, 동시에 국내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다른 국가들과의 무역 협정을 확대하여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고,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한국은 감정이 아닌 전략으로 움직여야 한다. 미국과의 동맹은 유지하되, 통상 전략에서는 철저히 실리 중심의 국익 외교를 펼쳐야 한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대비하여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고,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해야 한다. 아세안, EU 등과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CPTPP 가입을 추진해야 한다. 국내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연구개발과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은 긴밀히 협력하여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고, 경제 성장의 새로운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국제 무역 환경에서 기존의 경제 사대주의나 안전한 관계에 의존하는 습성도 냉정하게 버려야 한다. 미국의 관세 인상은 자국 무역과 국내 경기 활성화를 위한 방안이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큰 그림의 경제 관념이 새롭게 필요하다. 최근 현대자동차의 대미 투자는 보기 드문 정책으로 평가된다. 한국은 무역 대국으로서 미국과의 대승적 지혜를 모아 대비해야 한다.
임광복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ac@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