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기 BNE컨설팅 대표 겸 한국협상학회 부회장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복귀와 함께 미국은 또 세계를 상대로 "관세전쟁"을 선포했다. 한국의 주요 수출품인 철강, 반도체, 자동차는 모두 타겟이 됐고 미국은 무역적자 해소라는 명분 아래 동맹국조차 예외 없이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다시 말해, 무역은 외교의 수단이 아닌 무기화됐다.
문제는 이 국면에서 한국의 외교통상 대표자들이 누구인가이다.놀랍게도 미국 협상 테이블을 마주하고 있는 한국의 통상교섭 수석대표는 인하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출신의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다. 그는 자유무역협정(FTA) 연구 분야에서 풍부한 이론적 업적을 남긴 학자이지만, 실전 협상경험은 제한돼 있다.
이러한 인사는 비단 정인교 본부장만이 아니다. 우리는 지난 20년간 외교통상 분야의 최고위 협상 리더 자리를 ‘교수 출신’ 인사들에게 반복해서 맡겨왔다. 그리고 이 구조는 대한민국 외교통상 협상력의 부실로 이어질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은 실전 협상가만 협상 테이블에 앉힌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국제무역 변호사로 미중 무역전쟁 실무를 총괄한다, 그는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20건 이상을 담당했다.
캐서린 타이 현 USTR 대표는 무역법 전문 변호사로 미중, 미-EU 디지털세 협상을 담당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수석보좌관은 상무부 정책기획관 출신이다.그는 중국 관세협상 설계자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을 주도했다
USTR은 지난해 내부 평가 문서에서 "우리는 협상 테이블에 이론가가 아닌 전투가를 보낸다"고 자평했는데 허언은 아닌 것 같다..
지난해 3월 미 하원 통상분과의 내부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분석이 실려 있다: "한국의 외교 및 통상 협상 수석대표 중 다수는 학자들이며, 국제 협상의 전술적 흐름에 대한 감각이 부족하고, 회의 진행 중 분석 정합성에만 치중해 협상 주도권을 내준다.". 이는 단순한 비판이 아니다. 이는 전략 부재, 심리전 취약, 실전감각 미비를 동시에 드러낸 외교 실적의 적신호가 아닐 수 없다.
협상은 논문이 아니다. 전장은 학문적 분석이 아니라 실전대응이다. 협상은 전장이며, 전장에는 학문적 분석가가 아닌 실전 협상 전략가가 있어야 한다. 이론은 자문에 쓰여야 하며, 실전은 경험자에게 맡겨야 한다. 협상가는 압박과 양보, 심리전, 전술적 카드배분을 실전에서 훈련한 사람이어야 한다.
실전 협상가 없는 외교통상협상은 미국에게 유리할 수 있다. 한국의 외교통상 정책이 강해지려면, 협상가 중심 인사 구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전투의 리더는 강단이 아닌 현장에서 검증돼야 하며, ‘FTA 강의’가 아닌 ‘양자협상 심리전’에 능한 전문가가 필요하다. 세계는 협상이라는 무대에서 각국의 생존을 겨루고 있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글로벌 전략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교수단 외교를 넘어 협상가 리더십으로 전환해야 한다.
박상기 BNE컨설팅 대표 겸 한국협상학회 부회장
박희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acklond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