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만 상품전략연구소장

알래스카 LNG 가스관 사업이 한·미 경제 협력의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국의 참여를 직접 요청했고, 알래스카 주지사도 방한해 협력을 제안했다. 한국은 LNG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지만, 64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투자와 긴 건설 기간은 부담스러운 요소다. 이러한 상황은 단순한 경제적 제안이 아니라 정치적 압박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경제성이 불확실한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미국은 셰일가스 생산 증가로 세계 최대 LNG 수출국이 되었다. 한국도 미국산 LNG의 주요 수입국으로, 정치적 리스크가 적고 가격이 안정적이어서 선호한다. 그러나 알래스카산 LNG는 상황이 다르다.
북극권 가스전을 개발하고 1300㎞의 가스관을 통해 니키스키까지 운송한 후 액화하는 방식으로, 경제성이 불투명하다. 초기 투자비용이 약 64조원으로 추산되며, 사업성이 불확실하고 원가 회수까지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 과거 엑손모빌 등 글로벌 기업들도 경제성 문제로 사업에서 철수한 바 있다.
또한 미국이 한국에 불리한 계약조건을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 예컨대 일정량의 LNG 구매를 강제하거나 건설비 부담을 한국이 떠안아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조건은 장기적으로 한국 기업의 부담을 늘리고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알래스카 LNG 사업을 언급한 것은 단순한 경제 협력이 아니라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 철강·자동차 관세 인상 등을 통해 한국을 압박해 왔다. 이번 LNG 가스관 요청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트럼프의 목표는 미국 내 투자 확대와 무역수지 개선이다. 한국이 사업에 참여하면 미국산 천연가스를 대량 구매하게 되어 무역수지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성이 불확실한 사업에 무리하게 투자하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이 참여를 거부할 경우 트럼프가 다른 방식의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방위비 증액 요구, 자동차·철강 관세 인상 등의 협상 카드가 다시 등장할 수 있다.
미국산 LNG 필요해도, 알래스카산은 신중해야
한국이 미국산 LNG를 수입하는 이유는 공급 안정성, 가격 경쟁력, 에너지 안보, 탄소중립 대응 등이다. 미국은 정치적 불안정성이 적고 장기 계약이 가능해 안정적인 공급처로 평가된다. 반면에 중동과 러시아산 LNG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크고 가격 변동성이 있다.
그러나 알래스카산 LNG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낮은 지층 압력으로 가스 채취가 어려워 추가 압축 공정이 필요해 비용이 증가한다. 둘째, 장거리 운송 문제로 주요 LNG 소비국과 거리가 멀어 경제성이 낮다. 셋째, 개발 지연과 투자 부족으로 프로젝트가 여러 차례 지연되거나 취소된 바 있다.
따라서 미국산 LNG는 필요하지만, 알래스카산 LNG는 경제성과 기술적 한계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일본과 대만도 알래스카 LNG 사업 참여 요청을 받았지만,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경제적 부담과 장기적인 협상력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LNG 가스관 사업을 단순한 경제 협력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미국과의 협상 카드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미국산 LNG 수입 확대를 방위비 협상, 무역 정책 등과 연계해 조율할 수 있다. 또한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 원전 수출 협력 등도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
트럼프 시대, 신중한 대응이 필요
알래스카 LNG 가스관 사업은 단순한 에너지 협력을 넘어 한·미 관계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사업 자체는 한국이 LNG 공급망을 다변화할 기회가 될 수 있지만, 경제성과 수익성을 따졌을 때 부담이 더 클 수 있다. 특히 트럼프의 요구가 한국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신중한 대응이 필요하다.
일본과 대만도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역시 성급한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이 사업을 미국과의 협상 카드로 활용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임광복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ac@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