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은 봄의 팡파르와 같다. 많은 꽃이 벚꽃보다 먼저 피어 봄소식을 전하지만 벚꽃이 만개해야 본격적인 봄이라고 할 수 있다. 벚나무는 버찌 열매가 달린다고 해서 벚나무라고 부른다. 버찌는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벚나무속의 속명 Prunus는 자두(prum)를 뜻하는 라틴어 ‘프룸(prum)’에서 유래했다. 속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벚나무속 나무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일나무로 심어왔다. 대개 열매가 좋은 나무는 꽃이 시원찮은 경우가 많은데 벚나무속 나무들은 열매도 좋지만 꽃 또한 매우 아름다워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왔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벚나무의 종류로는 크게 산벚나무·올벚나무·왕벚나무가 있다.
박상진 교수는 합천 해인사에 있는 고려 팔만대장경 60% 이상이 산벚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산벚나무는 산에 피는 벚꽃인데 진해 군항제가 끝날 때쯤 온 산마다 하얗게 핀다. 왕벚나무 벚꽃은 꽃이 먼저 피고 뒤에 잎이 나는데, 산벚나무는 잎과 꽃이 같이 핀다. 그런가 하면 지리산 자락 전남 구례 화엄사에는 350년 묵은 천연기념물 올벚나무가 있다. 옛날에는 벚나무 껍질을 벗겨 활을 감아 손이 아프지 않도록 했다고 하는데, '세종실록'과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벚나무 껍질을 벗겨 활을 만든다는 기록도 있다.
왕벚나무는 1901년 일본의 마쓰무라(松村) 박사가 신종(新種) 기재했지만, 기준표본의 채집지를 정확히 하지 않았다. 1908년 4월 타케 신부는 한라산 관음사 뒷산 해발 약 600m의 숲속에서 벚나무류 표본 한 점을 채집(표본번호 4638호)해 독일 베를린대학의 쾨네 박사에게 보냈고 그는 이 식물이 일본에 자생지가 없던 왕벚나무로 확인해 한라산이 왕벚나무 자생지라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지난 2월, 해남 여행길에서 천연기념물 173호인 두륜산 왕벚나무 자생지를 찾았었다. 두륜산 왕벚나무는 1965년 4월 두륜산 식물상 조사 때 우연히 발견돼 육지에서도 왕벚나무가 자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총 세 그루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는데 현재는 한 그루만 남아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흔히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화려한 꽃을 피우는 벚나무는 거의 왕벚나무다. 여의도 윤중로의 벚꽃도, 워커힐 언덕의 벚꽃도, 우이천의 벚꽃도 왕벚나무꽃으로 보면 된다. 꽃그늘마저 환하게 만드는 눈부신 벚꽃을 보면서도 일본을 상징하는 것 같아 왠지 마음이 께름칙하다면 그 왕벚나무의 자생지가 우리나라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작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벚꽃은 마치 전원 스위치를 넣으면 수많은 전구에 일제히 불이 켜지듯 한순간에 화르르 피었다가 화르르 지고 만다. 꽃의 순간은 짧고, 그래서 더 눈부시게 아름다운 게 꽃이 아닌가 싶다.
짧은 꽃의 시간만큼이나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이내 지나가고 마는 게 봄이다. 벚꽃이 진다고 꽃의 시간이 끝나는 건 아니라고, 그 외에도 수많은 꽃이 연달아 피어나지 않느냐고 꽃구경을 뒤로 미루어선 안 된다. 벚꽃, 그 환한 그늘에서 잠시 쉴 여유도 없다면 그것은 너무 슬픈 인생일 테니 말이다.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