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진단] 알래스카 LNG 사업과 트럼프 관세폭탄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진단] 알래스카 LNG 사업과 트럼프 관세폭탄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이미지 확대보기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알래스카는 1741년 덴마크의 탐험가 비투스 요나센 베링이 발견했다. 베링은 러시아 쪽에서 출발해 바다 건너 동쪽에서 알래스카를 찾아냈다. 그 업적을 기려 러시아와 알래스카 사이의 바다를 베링해라고 부른다. 알래스카라는 말의 어원은 알류트족의 알류트어인 Alyeshka에서 왔다. 바다에 떠있는 섬이 아니라 대륙의 일부인 땅이라는 뜻이다. 면적은 172만3000㎢다. 우리나라 영토의 18배 정도다.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영토가 가장 넓다.

베링이 알래스카를 발견한 직후 그 소유권이 러시아로 넘어간 사연이 흥미롭다. 베링은 덴마크 국적이다. 신대륙 개척 시대에는 새로 발견되는 땅은 발견자의 국적에 따라 소유권이 정해졌다. 베링이 덴마크 사람인 점을 감안하면 당연히 알래스카는 덴마크령이 되었어야 했다. 문제는 베링이 탐험할 때 탔던 배의 국적이었다. 북극 탐험에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 베링에게는 배와 선원을 꾸릴 돈이 없었다. 덴마크에서는 베링에게 돈을 댈 기관이 없었다. 덴마크 왕실도 관심이 없었다. 베링은 궁리 끝에 러시아로 갔다. 표트르 1세에게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당시 러시아 제국의 표트르 대제는 영토 욕심이 많았다. 영토를 더 늘려보자는 심산으로 신대륙을 발견하면 그 소유권을 러시아에 넘긴다는 조건을 걸어 배와 선원을 내주었다. 베링의 발견으로 알래스카는 러시아 영토가 된 것이다.

러시아는 알래스카에서 모피 산업을 일으켰다. 야생 동물을 사냥해 그 껍질 등으로 모피를 만든 것이다. 모피 산업은 갈수록 번창해 러시아 총수출의 10% 이상이 모피에서 나오기도 했다. 알래스카 모피 산업은 100년 정도 이어지다가 이후 쇠퇴했다. 야생 동물을 너무 많이 잡아 멸종 상태에 처하면서 알래스카의 경제적 가치가 감소했다.

그러던 차에 크림 전쟁이 터졌다. 크림 전쟁은 1853년 10월부터 1856년 2월까지 크림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러시아 제국이 크림반도 지배권을 둘러싸고 오스만 제국, 프랑스 제2제국, 대영제국 그리고 사르데냐 왕국이 결성한 동맹군과 싸웠다. 러시아는 크림 전쟁에서 패했다. 전쟁 과정에서 너무 많은 돈을 쏟아부은 나머지 국고가 탕진됐다. 크림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 제국은 재정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때마침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윌리엄 H. 슈어드가 불과 720만 달러, 즉 1㎢당 5달러가 못 되는 헐값에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들이는 조약을 체결시켰다. 그때 미국 국민들은 알래스카가 '슈어드의 냉장고' '슈어드의 바보짓'이라며 맹비난했다. 1880년대에 들어 알래스카에서 금광이 발견됐다. 골드러시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본격적으로 개발이 시작됐다. 금뿐 아니라 은과 석유 등을 비롯한 각종 자원과 금속들이 잇따라 발견됐다. 알래스카에서 채굴된 철광석만으로도 당시 기준으로 720만 달러의 수백 배를 넘었다. 결과적으로 알래스카 매입은 제정 러시아가 미국에게 공여한 것이 되었다. 지금 미국은 중동, 베네수엘라에 이어 세계 석유매장량으로 3위다. 알래스카에 엄청난 양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알래스카는 1959년 미국의 49번째 주가 되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폭탄으로 세계 경제가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느닷없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사업이 한국과 미국 간 통상 현안으로 떠올랐다. 알래스카 LNG 사업은 미국 알래스카주 북부의 천연가스전을 개발하는 에너지 인프라 사업이다. 알래스카주 북부 가스전에서 생산한 천연가스를 1300㎞ 길이 파이프라인을 통해 남부 해안의 니키스키 지역으로 운송한 뒤 LNG로 가공해 수출하는 게 목표다. 예상 사업비가 440억 달러에 이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사업에 한국이 참여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이 적극적으로 투자하면 한국에 대한 관세 폭탄을 완화해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도 경제안보전략TF 회의에서 “알래스카 LNG 사업과 관련해 한·미 간 화상회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혀 한·미 간 관세 협상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예고했다. 수출로 먹고살기 때문에 관세 불확실성 제거가 절실한 한국으로선 피할 수 없는 협상의 시간이 왔다. 한·미 관세 협상에서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가 고차 방정식을 푸는 난제로 떠오른 것이다.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거절하기도 어려운 형국이다. 알래스카 북부에서 남부까지 1300㎞에 걸쳐 가스관을 연결하는 이 사업은 기후 특성상 1년 내내 얼어 있는 영구 동토층을 파는 어려운 공사다. 1년 중 공사할 수 있는 날도 많지 않다. 미국계 엑손모빌과 영국계 BP 등 대형 유전 개발회사들이 도전했다가 발을 뺀 이유다. 중국도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개발에 나서려다 수익성이 낮아 접었던 사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사업에 큰 애착을 보이고 있다. 총사업비만 440억 달러(약 64조원)로 추정되는 이 사업이 시작되면 알래스카에 건설 투자 붐을 일으키고, 완공 이후 LNG 수출 사업으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미국은 한국·일본·대만 3개국에 투자를 요청하고 있다. 알래스카 주지사가 한국을 방문해 투자 유치전을 펴기도 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투자에 참여하면 상호관세와 품목별 관세는 물론 방위비 논의에서도 유리한 협상에 나설 수 있다. 문제는 협상의 지렛대로 쓰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점이다. 대형 유전 개발회사들도 발을 뺀 사업인 데다 화석연료 개발에 부정적인 미국 민주당이 3년여 뒤에 정권을 되찾기라도 한다면 자칫 사업이 중단되고 투자금을 날릴 수도 있다. 미국은 최근 관세 전쟁에서 국면 전환 조짐을 보인다. 무차별적 관세 부과가 미 국채시장 불안을 야기하고, 중국이 맞불 관세와 함께 희토류 수출 금지에 나서자 관세 전쟁의 안정화가 시급해졌다. 한국 등 5개국과의 조기 협상도 이런 흐름에서 나왔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통화한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를 무기 삼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과 알래스카 가스관 투자, 미국의 LNG 수입, 조선업 투자 확대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덕수 대행과 28분간 통화에서 예시한 대미 협상은 이른바 ‘원스톱 쇼핑’으로 압축된다. 우리에게 카드를 내놓으라던 그가 먼저 카드를 제시했다. 협상 칼자루를 쥐고 동맹을 손익계산 대상으로 보는 상대의 눈에는 아름답고 효율적인 쇼핑으로 보일는지 모른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선 괴로운 선택이다. 미국은 자국 내 반대 여론을 의식해 성공 사례를 속전으로 끝내려고 벼른다. 390억~440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알래스카 개발 논의를 ‘대행 정부’가 급히 결정하는 건 상식에도 안 맞는다. 한국 경제나 차기 정부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알래스카 사업과 조선업 등에 관해 협상에 응하는 메시지는 분명히 하면서도 결론은 6·3 대선 이후 새 정부가 내릴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전략이 필요하다. 알래스카 속담에 '카리부(북아메리카 순록)와 바람이 가는 곳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는 우리 속담과 함께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