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6년여간 금융권에서 발생한 금융사고 규모가 무려 8500억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민국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올해 4월까지 국내 금융권에서 발생한 사고 금액은 총 8422억8400만원에 이른다. 더 큰 문제는 금융사고 규모와 건수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막대한 이익을 거두면서도 금융사들은 내부통제 강화에는 상대적으로 인색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기 부양책과 금리 인상 등으로 금융권의 이익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매년 수조원대 순이익을 기록,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하지만 이익이 늘어난 만큼 내부통제 시스템도 함께 고도화됐는지 묻는다면, 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최근 사고 유형과 업권별 사고 규모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해당 기간의 사고 유형별로는 업무상 배임이 2524억94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횡령·유용도 1909억5700만원에 달했다. 은행권이 전체 사고 금액의 54.6%를 차지했다는 점도 충격적이다.
해마다 사고 금액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 2019년 424억원대였던 사고 금액은 2022년 1488억원, 2023년 1423억원으로 뛰었고, 작년에는 역대 최고치인 3595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도 이미 481억원 규모의 금융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금액 중에는 최근 하나은행에서 불거진 74억원대 부당대출 의혹이나 사기에 의한 350억원 규모 금융사고는 아직 포함되지 않았다.
특히 우리은행은 1158억원을 기록해 개별 은행 중 최다 사고액을 기록했다. 우리은행은 2022년 700억원대의 직원 횡령에 이어 작년에 249억원 규모의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 사건까지 터지면서 1000억원대 사고액을 기록했다. 뒤를 이어 KB국민은행이 912억원, NH농협은행이 749억원, 경남은행은 601억원에 이르는 사고액을 기록했다. 기업은행도 최근 800억원대 부당대출이 적발돼 검찰이 수사 중인 가운데 공시된 일부만 지난해 반영됐다.
증권사 중에는 신한투자증권이 1498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뒤를 이어 하나증권 230억원(7건), 아이엠증권 205억원(4건) 순이었다. 증권업권 금융사고는 사기가 287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대형 금융기관이면서도 연이은 사고를 막지 못한 것은 임직원의 준법 의식 부재와 더불어 내부통제 시스템이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일부 은행은 사고 발생 이후에도 재발 방지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고 사후 수습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오죽하면 강민국 의원이 지난해 "우리금융 임종룡 회장 취임 1년여 만에 금융사고 9건에 사고 금액만도 약 142억원에 달했다"고 강하게 지적하기도 했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어 보인다.
이제 금융권은 뼈아픈 자성에 나서야 한다.
△임직원 윤리 의식 강화 △거래 모니터링 시스템의 실시간 고도화 △비정상적 거래 탐지 강화 △내부 고발 활성화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투명한 정보 공개 등 실질적인 내부통제 강화가 절실하다. 또한 사고 유형별, 업권별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해 각 금융기관이 안이하게 대응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 금융당국도 단순히 사고가 발생한 뒤 제재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사전 예방 중심의 감시체계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금융산업은 국민 경제의 혈관이다. 내부통제 실패는 단순히 금융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경제의 신뢰를 해친다. 금융권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신뢰를 잃는다면, 이익을 아무리 많이 올려도 결국 국민과 시장의 외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익을 거둘 줄 알았다면, 그에 걸맞은 관리와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금융권이 '책임 있는 성장'을 실천해야 할 때다. 내부통제 강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정준범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jb@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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