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 도시의 신호등이 모두 꺼지는 바람에 자동차와 열차 운행도 멈췄다. 전화와 인터넷 등 통신망도 끊기자 시민들의 혼란은 극에 달했다. 현지 언론에서는 유럽 최악의 정전이란 표현을 써가며 원인 분석과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번 정전을 단순한 사고가 아닌 급격한 재생에너지 전환에 따른 예고된 재앙으로 보는 이유다.
스페인 국가 전력망의 경우 평일에는 100% 재생에너지로만 가동한다. 갑자기 전력 수요가 몰리면 전력망이 무너지기 쉬운 구조다.
마드리드 인근 전력 시스템이 고온으로 인한 수요를 이기지 못해 작동을 멈춘 게 원인이라는 게 스페인 전력망 운영사인 레드엘렉트리카(REE)의 설명이다. 이게 다른 발전소들에 영향을 미치면서 포르투갈과 프랑스 남부 지역까지 정전 사태를 야기한 것이다.
이번 사고는 인공지능(AI) 시대에 던지는 시사점도 적지 않다. 2023년 기준 세계 전력 소비량은 2만7047TWh(테라와트시) 정도다. 1980년에 비하면 3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유럽연합(EU)의 2050 탄소중립 달성 계획에 따라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추세다. 스페인은 현재 전체 전력의 40% 이상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있다. 현재 20%인 원자력발전 비중을 제로로 줄이는 탈원전 정책도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도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를 세우고 전력 시스템을 정비 중이다. 탈탄소 전환의 전제 조건은 전력 수급 불균형에 대비하는 일이다.
재생에너지는 생산단가를 크게 낮출 수 있지만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 한계도 있다. 그렇다고 석탄·가스·원전에만 의존할 수도 없다. 전기의 시대에 대응하려면 전력 수요를 예측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게 중요하다.
유럽 최악의 정전 사태를 계기로 전력 인프라와 관련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