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와 주요 에너지·자원 공기업도 세계 에너지시장의 수급 현황과 가격 변동을 예의주시하면서 국내 산업계와 서민경제에 미칠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시장 긴급점검과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에너지 대란의 한 요인으로 전세계에 걸친 급격한 탈탄소 에너지전환을 꼽았고, 이 여파에 따른 연쇄 물가상승, 이른바 '그린플레이션'을 우려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30일 한국전력·한국가스공사·한국석유공사·발전공기업 등 주요 에너지·자원 공기업 사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에너지 수급동향 긴급 점검회의'를 가진데 이어 지난 14일 민간전문가까지 포함시킨 '에너지·자원 수급관리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 첫 회의를 열어 민관 경제주체의 합동 대응을 점검했다.
산업부는 현재의 글로벌 에너지 대란이 난방수요가 높은 동절기인 내년 2월까지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앞으로 산업부 2차관 주재로 매주 민관합동 TF 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
동시에 현재 국내 에너지 수급 상황이 안정적이지만 국제 에너지 동향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국내 비축상황 등 리스크 요인을 점검해 선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들도 당장 국내 에너지 수급에 큰 차질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가스공사는 장기도입계약 중심으로 액화천연가스(LNG)를 도입하기 때문에 현재의 글로벌 에너지 대란이 국내 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석유공사 관계자도 "지난해 코로나 팬데믹으로 국제유가가 급락했을 때 전략비축유 구입량을 늘렸다"고 전하며 글로벌 에너지 대란이 단기간에 국내 석유수급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스공사와 석유공사에 따르면, 현재 국내 천연가스 비축물량은 총 9일분, 원유 비축물량은 공기업과 민간을 포함해 약 200일분이다.
각 발전공기업도 발전용 유연탄 비축량을 평균 2주분을 보유하고 있고, 향후 수개월분 도입에도 문제 없다고 전했다.
다만 일부에서 에너지 대란에 따른 수급 불안을 우려한 나라들이 연료 확보에 혈안이 돼 있는 상황인 만큼 LNG 비축량을 현재의 9일분보다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발전용 유연탄도 LNG와 비교해 공급처가 제한돼 있는 만큼 비축량을 더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휘발유 등 에너지가격 상승과 그에 따른 국내 물가상승 우려는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가스공사 채희봉 사장 역시 지난 15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물가당국의 고충도 이해하지만 지금 해외 LNG 가격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은 언젠가 국민이 부담하는 부분"이라며 '적정 수준의 요금 인상' 필요성을 언급했다. 에너지 공기업들이 안고 있는 연료비 부담의 고충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됐다.
글로벌 에너지 대란이 장기적으로는 한전의 해외 신규 석탄사업 중단선언 등 주요 공기업들의 해외 화석에너지 개발사업 중단 움직임과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중단 등 탈원전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이다.
학계에서는 에너지 대란을 계기로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도 재고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현재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나 온실가스 감축목표(LNC)는 기술·경제 측면에서 현실성이 없을 뿐 아니라, 전통 화석연료에 대한 '에너지 부국의 에너지자원 무기화'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커뮤니케이션)는 "현재의 글로벌 에너지 대란은 급격한 에너지전환 영향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중국-호주 외교갈등, 러시아 천연가스 수출 등 '전통적인 자원 부국의 자원 무기화'의 연장선상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1970년대 중동 오일쇼크나 지금의 에너지 대란에서 보듯이 자원 부국의 자원 무기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만고불변의 국제질서 원리"라며 "액화수소 등 더 고도의 기술이 결합되는 신재생에너지는 관련 기술을 독점하는 국가의 에너지자원 무기화가 더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덕환 교수는 "최근 정부의 2050 탄소중립안을 실현하려면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극복하기 위한 에너지저장장치(ESS)에만 10년 마다 1200조 원이 투입돼야 한다는 분석결과가 나왔다"며 "자원빈국인 우리나라가 에너지자립을 지키고 해외 자원부국의 자원 무기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경쟁력을 갖고 있는 원전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철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kch00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