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라(KOTRA) 뉴욕무역관은 최근 발표한 ‘반DEI 운동 일어난 미국, DEI 경영에 고심 중인 기업들’ 보고서를 통해 “DEI 목표와 실행계획을 앞다퉈 발표했던 기업들이 정치적 요소와 DEI 노력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DEI 정책을 재검토하고 있다”며 이렇게 밝혔다.
보고서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오는 11월 5~6일(현지시각) 진행되는 미국 대통령선거기 ‘인도계 이자 흑인 여성’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민주당)과 ‘백인 우월주의’를 내세우며 재집권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공화당)간 초접전 양상이 지속하면서 두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 분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데 따른 것으로 분석했다.
할리데이비슨은 소셜미디어 엑스(X, 구 트위터)를 통해 “자사의 모든 DEI 기능을 중단하고, 지난 4월부터 관련된 프로그램을 시행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채용과 예산 운영에 다양성과 관련된 목표를 없애고, 인권 캠페인을 주도하는 그룹과 관계 중단, 직원교육에서 사회적 동기부여 콘텐트 삭제 계획 등도 발표했다.
할리데이비슨은 “지난 몇주간 할리데이비슨 커뮤니티를 분열시키기 위해 의도된 소셜 미디어상의 부정적인 분위기에 유감을 표한다”고 X에 게재했다.
할리데이비슨의 정책 철회를 불러 일으킨 주인공은 뮤직비디오 디렉터이자, 반DEI 운동가인 로비 스타벅(Robby Starbuck)이다. 그는 지난 7월 23일 소셜미디어에 할리데이비슨의 DEI 정책을 비판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이 글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그 외 보수 정치가들을 포함한 반DEI 세력으로부터 큰 지지를 얻었다. 스타벅은 할리데이비슨의 LGBTQ 기업가를 위한 부트 캠프 후원과 비영리단체인 유나이티드 웨이(United Way) 기부, 오토바이 구매자 기반 확대를 위한 채용 인력의 다양성 추구 등을 문제로 삼으며, 여론을 조성했다.
이러한 반DEI 운동으로 기업내 DEI 정책을 철회한 기업은 할리데이비슨만이 아니다. 농기계와 중장비 등을 제조하는 기업인 존 디어(John Deere & Co.)와 트랙터 서플라이(Tractor Supply)도 스타벅에게 비슷한 공격을 받고 기업의 DEI 관련 정책 시행을 중단했다. 스타벅은 최근 AP와의 인터뷰를 통해 “인종으로 채용이 결정되는 것에 반대하고, DEI 이니셔티브와 정책은 사회적 이슈와 정치를 기업의 문화로 허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3개사의 사례에서 보듯, 미국 내에서는 DEI 관련 정책을 놓고 찬반 여론이 갈리고 있다. DEI 정책이 또 다른 차별을 낳을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 DEI를 보는 시선도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BLM 운동이 시작되자 DEI에 수백만 달러를 투입하겠다고 했던 기업들이 DEI 관련 예산을 삭감하고, 팀을 축소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 7월 1일 비즈니스 모델 변화를 이유로 DEI 팀을 감원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인원수는 밝히지 않았다. DEI를 촉발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흑인 직원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신설할 정도로 DEI 관련 이슈에 강력한 목소리를 냈던 구글과 메타도 DEI 팀을 줄이고, 관련 예산도 삭감했다.
DEI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중요성 확대도 확산의 요인으로 꼽힌다던 주장도 힘을 잃고 있다. 애초 DEI는 ESG 중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역할을 강조하는 S(Social, 사회)를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 중 하나로 인식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DEI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 실현을 위한 전담팀 구성, 다양한 이니셔티브와 지원 정책 등을 내놨다. 또 기업 연차 보고서에 DEI 관련 내용을 포함시키거나 별도로 DEI 관련 보고서를 발간해 DEI 노력과 성과를 공개했다. 하지만, 정치적 이해관계가 엮이면서 이러한 장점도 퇴색되고 있다.
라이트캐스트의 엘리자베스 크로풋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HR 전문 매체인 HR다이브와의 인터뷰에서 “DEI 중 다양성(Diversity) 관련 채용은 지난 2022년 8월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이후 급격하게 감소하며 2024년 7월에는 최고점 대비 43% 감소했다”며 “DEI 전문가의 재직 기간도 다른 포지션에 비해 단축됐다”고 지적했다. 지난 2020~2022년 사이에 DEI 부서에 매니저 혹은 디렉터급으로 채용된 인원 중 2024년 7월 현재에도 동일한 직장에 재직중인 비율은 36%에 불과했다. 그는 “(DEI 전문가는) 기업 외부와 내부의 정치, 소비자 수요 등 여러가지를 고려해야 하는 스트레스 강도가 높은 환경에 놓여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보고서는 반DEI 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특정 기업이 타깃이 되고 있지만 상당수 미국인들은 다양성과 형평성, 포용성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 기업들이 DEI 정책 시행을 단순히 중단하는 것 역시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와 입소스폴(Ipsos Poll)이 지난 4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61%가 기업 내 DEI 정책을 ‘좋다’고 평가했다. 인종별로는 흑인 84%, 백인 51%가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해당 설문조사 결과를 보도하며, 응답자들이 DEI 정책에 대해 좀 더 추가적인 설명과 예시를 제공했을 긍정적인 답변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고 전했다.
DEI 정책에 부연 설명을 추가한 후 이를 지지하는 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좋은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69%로 단순히 DEI 정책 지지여부를 물었던 질문보다 긍정적인 비율이 8%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또 미국인 대부분이 여러 방면의 DEI 이니셔티브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비주류 그룹(underrepresented group)을 위한 멘토십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에는 75%가 지지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DEI라는 표현 자체가 소비자들이나 주주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인식하고 직접적인 DEI 관련 단어를 업급하기보다 좀 더 중립적인 언어(Neutral language)로 바꿔 정책이나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있다.
그래비티 리서치(Gravity Research)가 포춘 100개 기업의 수익 보고서를 검토한 결과 2023 이후 보고서에 DEI와 ‘다양성’, ‘포용성’ 같은 직접적 언급은 22% 감소했다. 100대 기업 가운데 DEI를 직접 언급한 비율은 2023년 43%에서 2024년 31%로 줄었다. 대신 ‘소속감(Belonging)’, ‘다양한 경험(Diverse Experience)’, ‘다양한 관점(Diverse Perspective)’ 같은 단어 사용이 늘었다.
보고서는 “최근 DEI 정책을 두고 미국 내에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기업들도 자사의 DEI 관련 정책과 프로그램 운영 방향을 재설정하고 있다”면서, “DEI 정책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연관성이 있고, 장기적 관점에서 추구해야할 방향이라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이해관계자와의 소통과 실행에서 불필요한 오해와 논란의 소지를 피할 수 있게 정책을 수립하고, 적절한 언어를 선택하는 데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진출 소비재 기업 A사 HR 관계자는 코트라에 “DEI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DEI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인데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에 있어서 여러 사안을 고려하고, 다양한 방법을 검토해볼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기업의 DEI 정책은 성공적인 현지화 정책과도 맞물려 있어 노력을 기울이는 부분”이라며, “반DEI 운동이 진행되는 시점에서 진출기업은 자사의 DEI 정책을 점검해보아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