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논현동 한 카페에서 만난 15년차 글로벌 투자사 한국법인 김모 씨는 우리나라 상업용 부동산 투자를 표현하다가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그의 말마따나 한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오랫동안 '블랙박스'로 불려왔다.
영화 '월스트리트'에서 고든 게코가 "정보가 곧 돈이다"라고 했듯, 부동산 시장에서 정보의 힘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한국 시장은 제한된 정보와 비표준화된 데이터, 불투명한 거래 관행으로 인해 투자자들이 마치 안개 속을 걷는 듯한 경험을 해왔다.
최근 데이터 기반 분석 플랫폼의 등장으로 불투명한 상자에 밝은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투자 의사결정 시간이 단축되고 수익률이 향상되는 성과가 나타난 뒤, 데이터는 한국 상업용 부동산 투자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부동산 투자 시장에서 한국은 국격 대비 '정보의 사각지대'였다. 미국이나 유럽의 투자자들은 RCA, 블룸버그, 코스타 같은 플랫폼을 통해 풍부한 데이터를 얻는 반면, 한국 시장은 이런 글로벌 플랫폼에서도 커버리지가 제한적이었다. 이는 해외 투자자들에게 큰 장벽으로 작용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토머스 크라운 어페어'에서 주인공이 고의로 보안 카메라를 무력화시키듯, 우리는 과거에 눈을 감고 한국 부동산에 투자했죠. 이제는 데이터라는 렌즈를 통해 명확히 볼 수 있게 되었어요."
한국 시장에서 10년 넘게 투자해온 글로벌 펀드매니저의 말이다. 그의 표현처럼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상업용 부동산 투자에서 데이터의 가치는 단순한 편의성 향상을 넘어선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한 글로벌 투자사는 서울 중심 업무지구의 A급 오피스 투자 검토 과정에서 과거에는 정확한 시장 데이터 수집에만 2개월 가까이 필요했다. 탐정이 단서를 하나하나 모으듯 '휴민트'를 통해 정보를 수집했지만 신뢰성은 의문이었다.
데이터 플랫폼 도입 후에는 주변 지역의 임대료 추이와 공실률, 임차인 구성, 유사 건물의 거래 가격을 상대적으로 쉽게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투자 검토 시간이 8주에서 2주로 줄었고, 데이터에 기반한 확신을 갖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국내 자산운용사들도 변화하고 있다. 물류센터 투자에 주력하는 한 중견 자산운용사는 이전에 여러 중개사로부터 정보를 수집하고 교차 검증하는 데 한 달 이상이 필요했다.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정보를 모아도 전체 그림을 보기 어려웠다.
데이터 플랫폼 도입 후에는 전국 1만5000곳의 물류센터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투자 대상을 효율적으로 선별하고 분석한다. 지역과 규모, 스펙별 임대료와 공실률 데이터를 통해 투자 전략을 정교화했다. 그 결과 의사결정 시간이 1개월에서 1주일로 단축됐다. 경기도 남부 물류센터 투자에서는 초기 수익률을 당초 예상보다 0.8%p 높였다.
소설 '빅 쇼트'에서 마이클 버리가 시장이 보지 못한 위험을 데이터 분석으로 발견했듯이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도 데이터는 리스크 관리의 핵심이다.
국내 한 금융기관은 담보대출 심사 과정에 데이터 분석 플랫폼을 도입했다. 이전에는 담보가치 평가 시 제한된 데이터로 인해 감정평가 결과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시장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우리는 하루 전 날씨 예보를 보고 오늘 우산을 챙길지 결정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해당 금융기관의 부동산금융 담당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데이터 플랫폼 도입 후에는 담보물건 주변 지역의 시세 동향과 거래 사례를 실시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담보가치 평가의 정확도를 높이고 리스크 관리를 강화했다. 그 결과 담보대출 심사 기간이 평균 3주에서 10일로 단축됐다. 부실 대출 비율은 전년 대비 0.7%p 감소했다.
데이터는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다양한 참여자에게 가치를 제공한다. 투자자에게는 빠르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금융기관에는 효과적인 리스크 관리를, 시장 전체에는 투명성과 효율성을 가져다준다.
미지의 세계를 지도로 그리는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이다. 우리나라 상업용 부동산 시장도 이제 정확한 지도를 갖게 되었다.
국내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글로벌 표준에 부합하는 투명성과 효율성을 갖추려면, 데이터 인프라의 발전이 필수적이다. 다행히 최근 국내 부동산 데이터 플랫폼들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시장의 정보 비대칭성 해소에 기여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알스퀘어애널리틱스(RA)와 같은 데이터 플랫폼들이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분석과 통찰까지 제공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GPS가 단순히 지도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 최적의 경로까지 안내하듯, 임대료와 공실률 같은 기본 정보뿐 아니라 리스크 분석, 임차인 트렌드 분석 등 고도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데이터 플랫폼의 영문화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한국 시장 접근성을 높이는 중요한 계기다. 이를 통해 해외 투자 자본의 유입이 확대되고, 시장의 글로벌 표준화가 가속될 것이다.
데이터는 한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블랙박스를 여는 열쇠다. 그동안 불투명했던 시장에 빛을 비추고, 투자자와 금융기관에 명확한 지도를 제공한다. 투자 의사결정 시간 단축과 수익률 향상이라는 실질적 성과를 통해 데이터의 가치가 증명되고 있다.
해리 포터가 '마법사의 지도'로 호그와트의 비밀 통로를 보듯, 데이터는 부동산 시장의 숨겨진 기회와 위험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상업용 부동산 업계가 글로벌 표준에 부합하는 투명한 선진 시장으로 도약하려면 데이터는 이제 필수다.
이상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angho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