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기업의 M&A 시 지배주주는 30~100%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지만 일반주주들은 지배주주와 같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사실상 원천봉쇄되어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1997년 1월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상장기업 발행주식총수의 25% 이상을 취득하고자 하는 자는 의무적으로 발행주식총수의 50%+1 주를 공개매수 하도록 한 의무공개매수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 직후 IMF 외환위기 발발로 M&A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반대와 기업구조조정 촉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1998년 2월말 폐지됐다.
일반주주들은 의무공개매수제도 폐지 이후 재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법 개정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 거듭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1년 12월 27일 대선공약으로 약탈적 M&A를 막기 위해 의무공개매수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내세웠지만 2년여 지나도록 법제화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금융위원회도 2022년 6월 주식시장 투자자보호 강화 정책세미나를 통해 의무공개매수제도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의무공개매수제도는 지난 1998년 폐기된 채 25년여간 처박혀 있었고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公約)으로 제시한 이후에도 2년여 공약(空約)이 되고 있는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갑진년 새해 첫날인 1일 “검토만 하는 정부가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하는 정부가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이와 함께 "자기들 만의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을 반드시 타파할 것"이라며 국민을 위한 개혁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2년 가까이 법제화되지 못하고 있는 의무공개매수제도는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한 행동하는 정부를 평가하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의무공개매수제도의 재도입 시 금융당국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과연 얼마만큼 일반주주들을 보호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계속되고 있다.
25년여만에 재도입이 추진되는 의무공개매수제도는 상장 피인수회사 주식의 25% 이상을 보유하면서 최대주주가 되는 인수회사는 전체 주식의 50%에 1주를 더한 분량에 대해 공개매수청약 의무를 지게 되는 방향으로 추진된다.
인수회사는 지배주주와 동일한 가격(경영권 프리미엄 포함)에 해당 주식을 구입해야 하지만 공개매수에 응한 주식이 50%에 미달하면 청약물량만 매수해도 된다. 반면 공개매수에 응한 주식이 50%+1 주를 초과하는 경우 안분 계산해 인수회사가 매수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극단적인 예로 인수회사가 피인수회사 지배주주의 지분 50%를 인수할 경우에는 1주만 의무공개매수 신청자에 대해 안분 계산하면 된다.
의무공개매수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지배주주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그대로 누릴 수 있지만 일반주주들에게는 사실상 경영권 프리미엄이 돌아가지 않는 구도가 되는 셈이다. 윤 대통령이 지적한 약탈적 M&A가 고스란히 재현될 것으로 우려되는 대목이다.
반면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의무공개매수제도 시행 시 일반주주들의 주식도 지배주주가 받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유럽에서는 일정규모 이상의 주식을 취득하려는 경우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잔여지분 전체에 대해 동일한 가격으로 공개매수를 하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독일과 네덜란드, 스페인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30% 이상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취득하는 경우 잔여주주를 대상으로 공개매수 청약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상장기업이 장외에서 지분을 취득하여 1/3을 초과하는 경우 해당 주식을 공개매수 방식으로 취득해야 하며 2/3 를 초과하여 주식을 취득하는 경우 잔여주주가 보유한 모든 주식에 대해 매수 의무가 부과된다.
미국은 이사회가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들에 대해서도 충실의무를 지도록 되어 있어 M&A 과정에서 일반주주를 위한 보호가 이뤄지고 있다. 판례에서도 지배주주의 충실의무에 따라 지배가치를 훼손할 수 있는 지배주주의 매각시 손해배상을 인정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미국 전장기업 하만을 인수할 당시 지배주주에게 주었던 30% 상당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일반주주들도 누릴 수 있도록 했고 주식 100%를 인수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는 의무공개매수제도가 도입된지 1년여만에 IMF 외환위기 사태로 폐지됐고 IMF를 극복한 20여년이 지나도록 의무공개매수제도가 재도입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지 2년이 넘었고 금융위원회도 의무공개매수제도를 재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무관심 속에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다.
의무공개매수제도의 도입 시기도 불투명하고 그 내용도 선진국에 비해 일반주주들이 훨씬 불리하지만 그 누구도 앞장서 문제를 풀어가려하지 않는 현실이 한국 지배구조의 현 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김대성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kimds@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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