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31 09:19
비가 내린다. 비 한 번 내릴 때마다 봄은 십 리씩 깊어진다는데 이 비 그치고 나면 서울에도 봄빛이 가득 차서 출렁일 것이다. 100년 만에 제일 빠르게 꽃을 피웠다는 벚꽃은 서울에도 이미 피기 시작했다. 그 중엔 벌써 내리는 비에 꽃잎을 흩어놓는 성질 급한 녀석들도 있다. 이젠 일부러 꽃을 찾아 나서지 않아도 문밖만 나서면 세상이 온통 꽃 대궐 속이다. 새로 피어나는 꽃을 볼 때마다 휴대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다 보니 휴대폰 속엔 예쁜 꽃 사진들로 넘쳐난다. 틈틈이 찍은 꽃 사진들을 친구들과 문자를 주고받을 때 함께 보내주면 선물이라도 받은 것처럼 좋아들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만남도 쉽지 않고 꽃구경을 나서기도 쉽지2021.03.24 08:55
바야흐로 화란춘성(花爛春盛) 만화방창(萬化方暢)이다. 천지사방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건듯 부는 훈풍에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연록의 새싹들도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가 싶더니 어느새 대지를 초록으로 물들이고 있다. 바람꽃을 찾아 세정사 계곡에 다녀온 지 일주일 만에 변산바람꽃을 보러 또다시 안양 수리산엘 다녀왔으니 이쯤 되면 바람이 나도 단단히 난 게 분명하다. 하지만 바람 중에 가장 멋진 바람이 꽃바람이 아니던가. 야생화를 보러 나서는 걸음은 언제라도 경쾌하고 설렌다.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우리 인간도 진화 기간 중 99.5%를 자연환경에서 보내온 터라 본능적으로 자연에 끌린다. 그래서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2021.03.17 09:24
백목련이 순백의 꽃망울을 터뜨렸다. 3월의 중심에 가까워져 오니 봄꽃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다투어 피어나고 있다. 아직은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엔 냉기가 여전하지만, 눈길 닿는 곳마다 꽃이 눈에 들어오는 걸 보면 완연한 봄이다. 그 많은 꽃 중에도 3월을 대표하는 꽃을 곱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너도바람꽃을 꼽을 것이다. 같은 장소라면 눈을 녹이고 피는 복수초(얼음새꽃)보다도 먼저 피는 부지런한 꽃이 너도바람꽃이다. 바람꽃은 종류가 아주 많다.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것만도 10여 가지나 된다. 너도바람꽃으로 시작하여 변산바람꽃, 꿩의바람꽃, 만주바람꽃, 홀아비바람꽃, 회리바람꽃, 쌍둥바람꽃, 숲바람꽃, 들바2021.03.10 09:35
마침내 매화가 피었다. 서울에도 봄이 온 것이다. 며칠 전부터 볕 바른 아파트 화단에서 꽃망울을 부풀리던 매화가 드디어 하늘을 향해 꽃잎을 활짝 열어젖혔다. 봄은 역시 꽃으로부터 시작된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꽃이 피어서 봄이 온다.’고 했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꽃이 피는 때가 곧 봄의 시작점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봄의 어원이 학술적으로는 ‘빛’, ‘볕’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긴 해도 봄꽃을 볼 때면 눈으로 무언가를 본다는 의미로 ‘봄’이라 했다는 말에 더 마음이 기운다. 봄이 왔다는 말은 꽃이 피었다는 말과 같다. 마찬가지로 꽃을 보는 일은 곧 봄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이해인 수녀님의2021.03.03 09:13
“바람 부는 날이면 모든 길이 바다로 간다.” 어느 시인의 말이다. 굳이 이 말을 떠올린 것은 꽃바람의 진원지를 찾아 바다 건너 바람 부는 제주에 왔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봄은 오고야 말 테지만 코로나로 인해 숨 막히듯 답답한 겨울을 보낸 뒤라서 남보다 앞서 봄을 만나고픈 마음이 컸다. 굳이 제주를 찾은 또 하나의 이유는 곶자왈을 둘러보기 위함이었다. 생태나 환경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 곶자왈 방문은 일종의 성지순례와도 같다. 곶자왈이란 ‘곶’과 ‘자왈’의 합성어로 된 고유 제주 방언이다. 곶은 숲을 뜻하고, 자왈은 표준어로 ‘덤불에 해당한다. 곶자왈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2021.02.24 09:36
모처럼 볕이 따뜻하다. 대동강물도 풀린다는 우수절에 때 아닌 한파가 들이닥쳐 세상을 꽁꽁 얼리며 봄에 대해 웃자란 기대를 싹둑 자르는가 싶더니 은근하게 어깨를 짚어오는 햇살이 밤새 다투고 돌아섰다가 이내 마음이 풀린 아내의 손길처럼 더없이 따사롭다. 봄바람은 평생을 두고 헤아려도 알 수 없는 여인의 마음만큼이나 변덕스러워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빙점을 사이에 두고 오르내리길 거듭하는 기온 때문에 수시로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끝내 밖으로 향하는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봄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봄은 다가서고 물러서기를 반복하면서 가까이 다가선다. 3월이 가까워지면서 일조량이 조금씩 늘고 온도계의2021.02.17 10:29
이번 설날에는 고향에 가지 못했다. 코로나바이러스 인해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감염 예방을 위해 내려진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 때문이다. 군복무 시절을 빼면 처음 있는 일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명절 풍경마저 바꾸어 놓은 것이다. 하릴없이 북한산 둘레길을 서성이며 고향에 가지 못하는 답답함과 무료함을 달래었다. 만약에 가까이에 이런 숲마저 없었다면 명절 연휴를 어떻게 보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해진다. 자연은 내게 생존을 위한 마지막 보루와도 같다. 사람들과 만남이 쉽지 않은 코로나 시대에 숲은 우리의 안전한 피난처이자 마음 놓고 숨 쉴 수 있는 마지막 숨구멍과도 같은 존재라는 게 새삼 드는 생각2021.02.15 09:39
여일하신가요? 입춘(立春)이 지난 지 엿새나 되었건만 옷깃을 파고드는 새벽 한기는 냉랭하기 그지없습니다. 전해오는 입춘의 풍습 중에 '아홉차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근면하고 끈기 있게 살라는 교훈적인 세시풍습으로, 이날 각자의 임무에 따라 아홉 번씩 부지런히 일을 되풀이하면 한 해 동안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화를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글방에 다니는 아이는 천자문을 아홉 번 읽고, 나무꾼은 아홉 짐의 나무를 하고, 노인은 아홉 발의 새끼를 꼬고, 계집아이는 나물 아홉 바구니를, 아낙들은 빨래 아홉 가지를 하는 식으로… 또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이라 하여 입춘 날이나 대보름날 전야에 착한 일을 많이2021.02.03 12:10
2월이다. 2021년 새해는 희망보다는 절망이, 기대보다는 체념이, 기쁨보다는 우울이 안개처럼 멀어진 사람과 사람 사이를 떠돌며 답답하게 시작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번 겨울은 눈도 잦고 한파가 맹위를 떨쳐 가뜩이나 지친 사람들의 마음마저 꽁꽁 얼어붙게 했다. 우리가 이 암울한 현실을 극복하려 만용을 부리기보다 어떻게든 견뎌내려 애쓰는 동안에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2월에 다다른 것이다. 2월이 남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입춘(2월 4일)이 들어 있는 달이기 때문이다. 입춘(立春)은 문자 그대로 봄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혹한의 겨울을 견디느라 잔뜩 움츠렸던 마음속의 봄이 비로소 기지개를 켜는 출발점이 바로 입춘이다.2021.01.27 11:05
바람결이 부드럽다. 며칠 전만 해도 살을 에는 듯한 냉기가 서려있었는데 애인의 손길처럼 부드러워 바람이 스친 나뭇가지들이 당장 꽃망울을 터뜨릴 것만 같다. 이렇게 좋은 날, 집안 구석에 틀어박혀 지내기엔 몸이 근질거려 무작정 집을 나서 북한산을 향했다. 등산로 입구엔 포근한 날씨 탓인지 제법 등산객들로 북적였다. 딱히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산을 향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등산은 글자 그대로 산을 '오르는' 것이지만 숲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굳이 땀을 뻘뻘 흘리며 산꼭대기까지 올라야 할 이유가 없다. 숲의 맑은 공기를 맘껏 호흡하며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펼쳐지는 자연 풍광으로 눈을 씻고 물소리, 새소리로 귀를 즐겁2021.01.20 12:33
코끝이 싸할 정도로 바람이 맵고 차다. 산행하기엔 추운 날씨임에도 짐을 꾸려 집을 나선 것은 창 너머로 보이는 도봉산의 바위벽이 유난스레 희어 보이고 그 뒤로 펼쳐진 쨍한 겨울 하늘이 가슴이 시릴 정도로 파랬기 때문이다. 그 당김이 너무 강해서 도저히 그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지난 한 해 동안 나를 견디게 해 준 숲으로 가는 길을 고향으로 가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진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부산했을 연말연시도 조용히 지냈건만 비대면의 세상은 좀처럼 그 휘장을 걷어낼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사방이 꽉 막힌 방안에 갇힌 사람처럼 답답함으로 조바심칠 때 나의 숨통을 틔워 준 유일한 존재가 숲이었다2021.01.13 10:51
좀처럼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힘겹게 2021년이란 터널을 겨우 지나왔는데 신축년 새해는 희망의 빛은커녕 오히려 더 길고 어둔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코로나19의 3차 대유행으로 인심이 흉흉해져 가는데 설상가상으로 북극 발 한파까지 들이닥쳐 세상이 온통 냉동고 속이다. 게다가 모든 약속은 취소되고 새로이 약속을 잡을 수도 없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롭기만 한 요즘이다. 하지만 아침이면 어김없이 태양이 떠오르듯이 생은 지속되어야 하고, 우리는 살아 있는 한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 그래서 내가 택한 것은 걷기다. 근사하게 표현하면 산책이라고 할 수 있는 '2021.01.06 11:19
신축년(辛丑年) 새해가 밝았다. 해가 바뀌어도 코로나는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난 일 년, 산은 마스크에 갇혀 사는 내가 답답한 숨을 몰아쉴 수 있던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새해에도 산은 나의 숨구멍이 되어줄 것이고 산을 찾는 나의 발걸음은 잦아질 것만 같다. 매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듯해도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를 보며 위로받고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뿐 그들도 사람 못지않은 치열함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산을 오를수록 그들이 들려주는 침묵의 소리야말로 가장 생생한 가르침이란 걸 느끼게 된다. 그들이 소리 없이 내보이는 꽃 한 송이, 몰래 내어놓는 연록의 새순들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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