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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에게 희망적인 교단을 다시 안겨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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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에게 희망적인 교단을 다시 안겨주었으면…"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69)] 교사의 건강이 사회의 건강이다

전국에서 모인 교사들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에서 '9.16 공교육 회복을 위한 국회 입법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전국에서 모인 교사들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에서 '9.16 공교육 회복을 위한 국회 입법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이초등학교 여교사가 자살한 사건 이후 참담한 교육 현실에 대해 그동안 속으로만 분노하고 있던 교사들이 거리로 나섰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전에 있었던 교사들의 자살, 그리고 그 후 일어난 잇따른 교사들의 자살이 최근 교육계뿐 아니라 사회에도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2학기 들어 언론에 알려진 것만 해도 9명의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20대 서울 서이초 새내기 여교사로 시작해 정년을 1년 앞둔 60대 체육 교사, 대전의 24년차 40대 여교사까지 나이, 성별, 지역을 가리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매년 20여 명의 공립학교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학생들에게 자살하지 말도록 교육하고 말려야 하는 교사들이 잇달아 자살하는 사건은 현재 우리의 교육 현실이 어떤 모습인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참담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교권 침해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한 교사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들어 지난 6일까지 ‘교권 침해 보험’에 가입한 교원 수가 2018년보다 다섯 배 넘게 늘어났다고 한다. 그동안 비교적 안정된 직장이라고 여겨졌던 교직이 이제는 보험을 들어야 하는 위험한 직장이 됐다. ‘2023 교사 직무 관련 마음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심한 우울증을 겪는 교사가 일반 성인보다 4배나 많았다. 자살을 생각하는 비율도 최대 5.3배나 높았다.

학생들 성숙하게 기르는 교사들 정당하게 보호받아야 마땅


그중에서도 최근에 일어난 24년차 40대 여교사의 자살은 왜 교사들의 자살이 잇따르는지, 그리고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2019년부터 4명의 학부모로부터 지속적인 민원을 받아온 그는 서이초 교사 죽음의 진상 규명과 교권 회복을 주장하며 매주 토요일마다 서울 집회에 참석했으며 49재 날에는 학교에 병가까지 신청했을 정도로 서이초 사건이 준 충격이 컸다. 가족들도 그가 서이초 사건을 접하며 많이 힘들어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가 직접 초등교사노조의 교권 침해 사례 모집에 제보한 내용에 따르면 그는 지난 2019년 1학년 담임이었을 때 친구 배를 발로 차거나 뺨을 때리는 학생과 관련해서 학교장에게 지도를 부탁했다. 그러자 다음 날 해당 학생의 학부모가 교무실로 찾아와 자녀에게 망신을 줬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사과를 요구하기까지 했다. 이런 부당한 곤경에 처했을 때 당시 학교장과 교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해당 학부모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12월 그의 행동을 문제 삼아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

그의 아동학대 혐의는 2020년 '무혐의 처분'으로 결론 났지만, 해당 학부모와 학생이 "교사와 마주치기 싫다"며 그가 학교를 떠날 때까지 4년 동안 민원을 지속했다. 그가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달라고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의 남편에 따르면 “학교에서는 어떤 지원도 없이 ‘그냥 조용히 넘어갔으면 좋았을 걸 왜 일을 키웠느냐’는 식으로 오히려 아내의 잘못인 것처럼 방관했다”며 “억울함을 풀기 위해 아내랑 둘이 변호사를 수소문해 상담받고 알아서 법적 대응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동료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탄원서 덕분에 억울함을 풀 수 있었으나, 무혐의 결론이 나오기까지 10개월 동안을 혼자서 싸워야 했다.

교육의 최대 수혜자는 학생, 교사 존경해야


그는 검경 조사를 받은 뒤에야 무혐의 처분을 받을 수 있었다. 10개월이 지난 일이었다. 그의 제보에서 “3년이란 시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다시금 서이초 선생님의 사건을 보고 공포가 떠올라 계속 울기만 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저는 다시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어떠한 노력도 내게는 다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공포가 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말미에 “서이초 사건 등 모든 일이 잘 마무리되어 교사들에게 희망적인 교단을 다시 안겨 주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쓴 지 약 한 달 반 뒤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이런 부당한 곤경에 처했을 때 학교장과 교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학부모들의 부당한 교권 침해에 학교 안에서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혼자 부당한 처우에 맞서야 한다. 만약 교장이나 동료 교사로부터 ‘그냥 조용히 넘어갔으면 좋았을 걸 왜 일을 키웠느냐’는 식으로 매도당하기라도 한다면 어느 교사가 소신껏 “교육”을 할 수 있을까? 교육을 하지 못한다면 교사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교사는 수십 명의 미성숙한 학생들을 성숙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하는 “신성한” 책임을 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보호받아야 한다. 정당한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하루하루 잘 버텨서 무사히 퇴근하고, 대과(大過) 없이 세월을 감내해 연금 탈 수 있기만을 기다리는 무기력증에 빠지게 만들 뿐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속담의 의미는 그만큼 스승의 자리는 존경받을 만한 자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스승 개인의 인격이 존중받을 만큼 고매(高邁)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스승이라는 자리를 존경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스승을 존경해야 교육의 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육 효과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학생이다. 그러므로 학부모는 교사의 나이를 불문하고 “선생님”으로 호칭하는 것이 예의이다. 그 모습을 보고 배우는 것이 바로 자녀이기 때문이다. 교사를 존경하지 않는 학생은 학교에서 배울 것이 별로 없다.

교사들은 ‘모범’을 보이는 삶을 살도록 무언의 압력을 받는다. 같은 실수를 하더라도 교사이기 때문에 더욱 죄송한 마음이 들 뿐 아니라 사회적 비난도 심하다. “선생이 그렇게 행동하면 됩니까? 다른 사람에게 모범을 보여야지”라는 말을 들으면 더 이상의 해명이나 변명할 여지가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교사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에 더욱 깊은 상처를 받는다. 더욱이 교육 전문가로서 자격이 없다고 비난받으면 회복하기 어려운 심리적 상처를 받게 된다. 교사의 보람은 학생을 사랑하고 헌신하는 것이다.

상처받은 교사도 상담 절실, 교원치유지원센터론 역부족


교사는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 항상 자기-검열을 하면서 생활한다. 이런 교사들이 고소나 고발 사건에 휘말려 송사를 진행한다는 것은 너무나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다. 수시로 송사에 휘말리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고소당하는 것이 별반 놀랄 일도 아닐뿐더러 자살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냥 일상일 뿐이다. 하지만 남보다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고, 실제로도 그렇게 살고 있는 대다수 교사들에게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고소·고발을 당한다는 것은 심각한 심리적 외상을 남긴다. 이것은 단순히 송사에 드는 비용이나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더군다나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을 학대했다는 혐의를 받고 송사에 휘말린다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가 비록 무혐의를 받았지만 “다시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을 하게 되는 이유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한 번 상처받은 자긍심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유가족은 그가 "2019년부터 이어진 악성 민원과 아동학대 고소로 힘든 시간을 보내며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올해 7월, 서울 서이초 사건을 접하면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고, 많이 힘들어했다"고 덧붙였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상처받은 교사들에게 상담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교에는 학생들의 마음 건강을 살펴주기 위해 ‘전문상담교사’가 상주하는 학교가 많아진다. 하지만 상처받은 교사들을 위한 상담제도는 아직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교사들의 마음 건강을 지원하는 ‘교원치유지원센터’가 설치돼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만, 전체 50여만 명의 교사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국적으로 상담자가 26명에 그친다는 것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 심리상담을 지원해주는 제도도 만들어져 있다. 교육활동 침해와 관련해 소진(消盡)된 교사에게 심리상담을 10회기 범위 내에서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교육활동 중 심리적으로 소진된 교사들에게는 심리상담을 8회기 범위 내에서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있다.

교육활동이 빈번히 침해되는 현실에서 소진된 교사의 상담을 지원해주는 제도가 더욱 활성화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진된 교사는 물론이고 동료 교사나 학교 행정당국자들이 상담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상담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무능력한 교사라거나 심약한 교사라는 낙인이 찍힌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상담을 지원받기 어려워진다. 자살한 교사가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지만 서이초 교사의 자살 사건을 접하고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떠올라 많이 힘들었고, 급기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충분한 상담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원하는 상담회기를 정하기보다는 필요한 만큼 상담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불필요한 상담을 계속 받을 교사는 없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소진되기 전에 교사들을 돕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몸이 건강할 때 운동하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더 효율적이다. 마찬가지로 상담은 소진되기 전에 받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이미 소진된 상태에서 받는 상담보다 소진을 예방하기 위해 받는 상담이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따라서 마음의 상처가 악화되기 이전이라도 쉽게 상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고 활성화되어야 한다. 건강한 신체를 위해서는 ‘운동’이 필요하고 생활화돼야 하듯이, 건강한 정신을 위해서는 ‘상담’이 필요하고 생활화돼야 한다. 교사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상태에서 보람을 느끼며 즐겁게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는 여건을 빨리 만들면 만들수록 사회도 건강해지고 즐거워진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