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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길 먼 연금개혁③] 수익률보단 안정… ‘디폴트옵션’ 도입 반년, 예금에 자금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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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길 먼 연금개혁③] 수익률보단 안정… ‘디폴트옵션’ 도입 반년, 예금에 자금 몰렸다

퇴직연금의 디폴트옵션 제도가 본격 시행된지 반년 가량 지났으나 은행권이 주로 운용하는 초저위험 상품에 대한 쏠림 현상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이미지투데이.이미지 확대보기
퇴직연금의 디폴트옵션 제도가 본격 시행된지 반년 가량 지났으나 은행권이 주로 운용하는 초저위험 상품에 대한 쏠림 현상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퇴직연금의 디폴트옵션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지 반년여가 지났으나 여전히 안정만을 추구하는 예·적금 등 원리금 보장형 상품이 대부분을 차지해 문제가 되고 있다. 기존 퇴직연금의 경우 86.3%가 예·적금으로 이뤄져 수익률(1~2%대)이 낮아 노후 대비가 부실하다는 지적이다. 미국이나 호주 등 퇴직연금이 발달한 국가의 경우 실적 배당형 상품 비율이 70~80%에 이달할 만큼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어 벤치마킹할 만하다는 분석이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접 금융업권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적립액은 5조1095억원으로 지난 6월 말인 1조1018억원과 비교했을 때 석 달만에 5배 증가하는 등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디폴트옵션은 확정기여(DC)형과 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자가 적용 대상으로 적립금을 운용할 금융상품을 결정하지 않은 경우 가입자가 사전에 지정한 디폴트옵션 상품 운용 방법으로 적립금이 자동 운용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본 제도는 지난해 7월부터 1년간의 시범 운영 기간을 거친 뒤 올해 7월 12일부터 전면 시행되고 있다.
당초 정부는 지나치게 낮은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디폴트옵션을 도입한 바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기존 퇴직연금의 86.3%는 예·적금과 같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으로 운용되고 있어 수익률이 1~2%대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퇴직연금이 은퇴 이후 노후생활을 보장하는 주요 대비 수단중의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에 정부는 퇴직연금 제도를 개선해 수익률을 높이고 국민의 노후소득보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디폴트옵션을 시행했다. 금융권은 디폴트옵션의 도입으로 은행이나 보험사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증권사로의 자금 이동이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이로 인해 퇴직연금 시장 판도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은행권 쏠림 현상은 여전했다.

지난 9월 말 기준 은행권의 디폴트옵션 적립금 규모는 3조4073억원으로 전 금융업권 적립금의 86%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증권사의 디폴트옵션 적립금은 2188억원으로 전분기인 1033억원 대비 두 배가량 증가했으나 점유율은 지난 2분기 말 9.4%에서 4.2%로 줄어들었다.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의 적립액 규모는 각각 1336억원, 667억원 수준이다.

이처럼 은행권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는 은행이 대부분 운용하고 있는 초저위험 상품으로 자금이 몰렸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사전지정운용제도 가입 현황에 의하면 전체 가입자 200만명 중 177만명이 초저위험 상품을 선택해 원리금보장상품 비중이 가입자 수 기준으로 88.5%에 달했다.

저위험은 9만명(4.5%), 중위험이 8만명(4.0%), 고위험이 6만명(3.0%)이었다.

수익률을 살펴보면 고위험군으로 갈수록 높은 수익률을 나타냈다. 제도 도입 이후 누적 수익률이라 할 수 있는 6개월 수익률을 보면 원리금보장상품은 2.26%, 고위험 상품은 8.88%로 세 배 가량 차이났다.

고위험 상품에 투자할수록 수익률이 높아지지만 국내 가입자의 초저위험 선호도가 큰 까닭은 퇴직연금을 바라보는 보수적인 시각에 있다는 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미국이나 호주와 같은 해외의 경우 실적 배당형 상품 비율이 70~80%에 이를 만큼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퇴직연금을 ‘노후를 대비하는 최후의 보루’로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원금이 손실되는 것에 민감하다는 설명이다. 이로 인해 보수적으로 운용하는 원리금보장상품의 비율이 높다.

하지만 이로 인해 수익률을 높이고 원리금보장상품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개선해 합리적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디폴트옵션의 도입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에서는 디폴트옵션의 올바른 정착을 위해서는 적격 상품 항목에서 원리금 보장 유형을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디폴트옵션에 원리금보장상품이 선택 가능한 대안으로 포함된 것은 당초 도입 취지로 봤을 때 일종의 제도적 결함이라 할 수 있다”며 “향후 제도 개편을 통해 원리금보장상품은 적격상품의 유형에서 제외되는 것이 바람직하나 이러한 제도 개편이 어렵다면 미국의 QDIA에서와 같이 사전지정운용 상품으로 원리금보장상품을 지정하는 경우 그 기간을 짧게 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규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bal4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