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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플레이브'와 함께 달라진 버추얼 인플루언서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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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플레이브'와 함께 달라진 버추얼 인플루언서 생태계

오제욱 한국버추얼휴먼산업협회(KOVHIA) 공동 협회장 겸 디오비스튜디오 대표이사. 사진=디오비스튜디오이미지 확대보기
오제욱 한국버추얼휴먼산업협회(KOVHIA) 공동 협회장 겸 디오비스튜디오 대표이사. 사진=디오비스튜디오

KPOP 남성 아이돌 씬에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PLAVE)'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초동 앨범 판매량 57만 장, 멜론 24시간 스트리밍 600만회 돌파, 유튜브 라이브 방송 동시 시청자 3만6000명 돌파 등등 이들에 관한 기사에는 유독 '최초', '기록', '돌파' 같은 표현들이 붙는다.

이들의 첫 단독 콘서트는 예매 사이트 동시 접속 인원 7만명을 넘어서며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지상파 방송사의 간판 음악 프로그램에선 무려 르세라핌의 'Easy', 비비의 '밤양갱' 등의 인기곡을 제치고 주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플레이브는 2023년 3월 12일 블래스트(VLAST)가 선보인 버추얼 보이그룹이다. 하민, 노아, 예준, 밤비, 은호, 다섯 명의 멤버들은 로맨스 웹툰 주인공을 연상케 하는 외관을 갖추고 있다. 작사, 작곡, 프로듀싱, 안무 창작 등을 모두 자체적으로 소화하며 멋진 음악과 퍼포먼스로 등장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강연 등의 자리에서 플레이브를 소개하면 늘 두 종류의 상반된 반응이 즉각적으로 터져 나온다. Z세대로 보이는 젊은 분들, 특히 10~20대의 여성 분들은 마치 그들을 직접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꺄악"하는 반가움의 감탄사를 내뱉는다.

다른 한 부류의 반응은 정 반대다. '저게 뭔데?’라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침묵할 뿐이다. 기실 데뷔 초창기부터 이들이 받는 관심 속에는 '주류가 아닌 애니메이션 캐릭터들로 무엇을 하려는 거냐'는 의심이 섞인 시선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었다. 심지어는 그들의 화려하고 빠른 성공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논평도 있었다.

이러한 반응의 기저에는 이들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대표되는 '서브컬처'에 대한 조금은 부정적 시선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플레이브 이전에는 브이튜버, 혹은 버튜버라고 하는 이들이 존재했다. 2016년 일본의 키즈나 아이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이들은 성우, 가수 등 목소리를 담당하는 이들이 만화 캐릭터 같은 아바타를 외관으로 해 새로운 페르소나로 활동하는 것을 뜻한다.

이들은 라이브 방송 수익, 굿즈 판매, 음원 유통, 팬미팅, 콘서트까지 다각도로 성과를 거뒀지만, 귀여운 목소리와 말투로 '애니메이션 속 미소년, 미소녀'와 같은 모습을 했다는 이유로 뉴미디어의 한 장르보단 마니악한 소수가 소비하는 서브컬처 장르로 폄하 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한국형 버튜버'라 할 수 있는 플레이브가 기존의 주류 케이팝 아이돌들까지 제치는 모습은 그야말로 '천지개벽'할 일이었다.

플레이브 멤버들의 모습. 왼쪽부터 밤비, 은호, 예준, 하민, 노아. 사진=플레이브 공식 인스타그램이미지 확대보기
플레이브 멤버들의 모습. 왼쪽부터 밤비, 은호, 예준, 하민, 노아. 사진=플레이브 공식 인스타그램

필자는 디지털 얼굴 그래픽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디오비스튜디오를 이끌고 있다. 배우 윤여정의 이십대 얼굴을 재연하거나 많은 이들이 그리워하는 셀럽과 공군 영웅을 방송 프로그램에 복원하는 등 실재하는 얼굴과 육안으로 구별이 어려운 가상얼굴을 제작하는 기술을 개발해왔다.

디지털 미디어 시장에서 사진처럼 현실감 있는, 포토리얼리스틱(Photo-realistic)한 가상얼굴은 분명한 수요가 있고, 다수의 기업들은 셀럽들의 마약이나 음주운전과도 같은 일탈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가상인간, 버추얼휴먼의 가능성에 열광했다.

이 가운데 플레이브와 같은 이들의 눈부신 성과를 거둠에 따라 버추얼 휴먼 산업계 또한 흔들리고 있다. 사진 같이 리얼한 가상의 얼굴 그래픽은 성공의 필수 요소가 아니고,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스타일의 외형이 오히려 시장에 더 어필할 수 있다는 것을 깔끔하게 입증했기 때문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인격으로 인지하는 데 필수적인 것은 '소통'이라는 말이 있다. 표정, 언어, 몸짓 등 다양한 방식으로 메시지가 전달되고, 해석되며 서사가 쌓여야만 상대를 인격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디오비스튜디오가 만들어 온 디지털 가상얼굴 기술이나 오픈AI의 챗GPT, 신디시아(Synthesia)의 AI 아바타 솔루션 등 AI 기술은 '소통의 도구'로서 표정, 언어, 몸짓 등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플레이브는 소통의 도구보단 그 내용과 진정성이 더욱 우선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플레이브의 팬들은 웹툰 스타일의 캐릭터 뿐 아니라 뒤에서 열심히 노래를 만들고, 안무를 기획하고, 꿈을 가꿔가는 '본체'에 열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독특한 외관만큼, 어쩌면 외관보다도 중요하면서도 외부인 입장에선 알아보기 힘든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앞으로 버추얼 인플루언서 생태계에는 사실적인 그래픽 외에도 '플레이브'와 같은 콘셉트의, 보다 가상의 캐릭터와 같은 외형이 더욱 활성화 될 것으로 전망한다. 디오비스튜디오 역시 이러한 흐름에 맞춰 커먼컴퓨터와 협업, 30초 이내의 영상을 손쉽게 '버추얼 크리에이터'로 변신시킬 수 있는 데뷧타이(deVut AI) 서비스를 선보이려 한다.

플레이브와 같은 이들은 분명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젖혔다. 이후 새로운 유형의 버추얼 인플루언서들이 앞으로 더욱 많이 눈에 띄기를, 그들이 다양한 활동을 통해 보다 유익하고 재미있는 디지털 콘텐츠 세상을 만들어주기를 기대한다.


오제욱 한국버추얼휴먼산업협회장 겸 디오비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