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은 그동안 자동차 부품사업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LG화학이나 삼성SDI이 전기자동차 배터리 등 각종 자동차 관련 소재를 내놓고 있지만 롯데그룹 계열사는 경쟁업체에 비해 한 발 늦은 모습을 보여 왔다.
롯데그룹이 현대차그룹과의 사업 협력으로 미래 친환경 자동차 시장에서 게임체인저(Game Changer: 판도를 바꾸는 요인)이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롯데·현대차그룹, ‘미래車 큰 그림’ 그린다
신 롯데회장은 지난달 25일 롯데케미칼 의왕사업장에서 정 현대차그룹 회장과 만났다. 양측은 회동 후 구체적인 회동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롯데그룹 화학 계열사 롯데케미칼이 첨단 소재개발을 신(新)성장 동력으로 여기고 있어 두 사람이 미래 전기차와 수소차에 들어가는 각종 화학소재를 놓고 사업 협력 방안을 모색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이를 잘 보여주듯 정 회장이 방문한 롯데케미칼 의왕사업장은 과거 롯데케미칼 첨단소재 본사가 있던 곳이다.
이곳은 현재 자동차 내·외장재로 사용되는 고부가합성수지(ABS), 폴리프로필렌(PP)과 폴리카보네이트(PC) 등 고기능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을 연구개발(R&D)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LG화학, SK이노베이션, SKC 등 경쟁업체들이 전기차 배터리와 부품 소재 등 신사업으로 발빠르게 대응해 친환경차, 스마트카 등 미래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고 있는 점과 비교하면 다소 늦은 감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롯데케미칼이 석유화학 제품 기초 소재 에틸렌 부문에서 국내 1위 업체이며 올 들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새 먹거리 사업’에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며 “미래자동차 부문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롯데그룹, 롯데케미칼 첨단화학소재로 미래 신사업 박차
이와 관련해 롯데케미칼은 지난해부터 사업 다각화에 박차를 가했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초 자회사 롯데케미칼 첨단소재 부문을 흡수통합해 ‘순수 화학업체’에서 각종 첨단 화학 분야로 보폭을 넓힐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다. 이에 따라 롯데케미칼은 미래형 전기차와 수소차 등에 각종 화학소재를 제공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췄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이 기존 그룹의 핵심축이었던 유통·식품 산업에서 최근 첨단 화학 소재 분야로 사업영토를 넓히고 있다”며 “이를 위해 신 회장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유망업체 인수에 적극적인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신 회장이 이번에 정 회장과 비공식 회동을 갖는 것도 롯데그룹의 미래차 사업 진출을 타진해 보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풀이했다.
롯데케미칼은 신 회장에게 매우 중요한 계열사다.
신 회장은 1990년 롯데케미칼 전신인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경영 수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롯데그룹에서 롯데케미칼은 롯데쇼핑과 함께 그룹의 핵심 캐시카우(Cash Cow:주요 수익원) 역할을 하고 있다.
◇신 회장, 최근 인사에서 미래 신사업에 힘 실어줘
이번 롯데그룹 인사도 미래 신사업에 대한 신 회장의 각오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7년부터 롯데케미칼 대표이사를 겸하고 있는 김교현 사장은 이번 인사에서도 유임되는 저력을 보였다. 이를 계기로 김 사장은 롯데케미칼 신사업 추진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일각에선 롯데의 거미줄 같은 국내 유통망과 롯데케미칼의 신소재를 현대차그룹의 전기·수소차 등 미래 친환경차에 적용하면 사업 시너지가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롯데케미칼은 올해 2월 컨퍼런스콜에서 첨단소재사업에서 글로벌 완성차의 협력 의지를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케미칼이 생산하는 각종 첨단소재가 글로벌 완성차 부품으로 사용되고 있다”며 “신 회장은 현대차 등 글로벌 완성차와의 협력을 강화해 모빌리티(이동수단) 소재사업을 적극 육성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현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kamsa091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