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 관계자의 말처럼 더현대 서울의 미학은 ‘비움’에 있었다. 실제로 더현대 서울의 영업 면적 대비 매장 면적 비중은 현대백화점 15개 점포의 평균(65%)보다 30%가량 낮다.
층별 동선 최대 너비는 8m 정도로 유모차 8대가 동시에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넓다. 지상 공간 인테리어는 목재 색감의 지하층과 달리 파스텔톤으로 돼 있어 안정감을 줬다. 2층에서 1층, 3층에서 1층으로 떨어지는 인공 폭포(워터폴 가든)가 “쏴”하고 시원한 소리를 냈다. ‘리테일 테라피(쇼핑을 통한 힐링)’ 개념을 적용한 자연친화형 백화점다웠다.
특히 약 1000평 규모의 5층 ‘사운즈 포레스트’는 건물 중앙에 섬처럼 붕 떠 있었는데 내부로 들어가니 새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숨을 들이켜니 향긋한 풀 냄새가 났다. 유모차를 끌고 유유히 휴식을 즐기는 주부들과 화단에서 시든 잎을 정리하는 조경사들을 보고 있자니 이곳이 백화점인지 공원인지 헷갈렸다.
뻥 뚫린 건물 가운데 공간에 전시된 예술 작품들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는 더현대 서울이 선보이는 아트프로젝트다. 3~4층 난간에서 볼 수 있는 박선기 작가의 ‘An Aggregation 180609’는 수만 개의 원형 개체가 줄로 연결된 형태인데 거리에 따라 입체감이 달라지는 점이 신기했다. 1층에는 스튜디오 스와인의 비눗방울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엄마 미소’가 지어졌다.
건물 곳곳에 구비된 의자에는 고객들이 앉아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그 중 더현대 서울 인근에 산다는 주부 A 씨(60대‧여)는 “백화점을 갈 때면 다리가 아파 오래 못 걸었는데, 여기에는 각 층에 카페도 있고 쉴 곳이 많아 오랜 쇼핑에도 걱정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상층이 ‘자연’을 주제로 여유있게 짜여졌다면, 지하층은 ‘MZ세대’를 겨냥해 참신하게 꾸며졌다.
지하철과 연결되는 지하 2층에는 '크리에이티브 그라운드'가 있다. 스웨덴 H&M그룹의 최상위 SPA 브랜드인 ‘아르켓’의 아시아 첫 매장을 비롯해 명품 시계 리셀숍 ‘용정컬렉션’, 서울 성수동의 문구 전문매장 ‘포인트오브뷰’ 등 국내 백화점에서 보기 힘든 매장들이 대거 입점했다.
온라인 중고 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의 첫 오프라인 매장 ‘BGZT(번개장터)랩’에는 젊은 고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고객 B 씨(30대‧남)는 “국내에 재고가 없거나 한정판매 돼 구하기 어려운 운동화를 구경할 기회라서 왔다”고 말했다.
더현대 서울에는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 등 3대 명품 매장은 없지만, 구찌·프라다·보테가베네타·버버리·발렌시아가 등 30여 개 해외패션·명품 브랜드 매장과 국내외 화장품 브랜드 30여 개 매장이 들어서 있다. 현재 루이비통 등 여러 명품 브랜드와 입점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회사 측 관계자는 귀띔했다.
지하 1층은 축구장(7140㎡) 2개를 합친 것보다 큰 국내 최대 규모(1만 4820㎡) 식품관 '테이스티 서울'이 차지했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푸드트럭 8대가 놓인 '푸드트럭 피아자'에는 인파가 가득했다. 그 옆을 둘러싼 F&B 매장 중 족발 튀김으로 유명한 문래동 '그믐족발', 단팥빵과 모나카로 유명한 '태극당'에 직장인들이 북적이는 게 보였다.
같은 층에 마련된 푸드마켓은 제품부터 서비스까지 ‘프리미엄’으로 기획됐다. 각 상품 진열대마다 파견직원들이 서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다. 정육코너는 고객 요구에 맞춰 고기 두께를 잘라주는 서비스를 전개하고 있었고, ‘FRESH TABLE’에서는 제철 과일과 채소를 씻어 고객이 원하는 형태로 손질해줬다. 미역코너의 여직원은 “다른 백화점보다 제품 종류를 세분화해 선택의 폭을 넓힌 게 특징이다. 신선도는 자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현대 서울이 문을 열면서 백화점 '영등포 대전'의 막이 올랐다. 공교롭게도 롯데와 신세계, 현대백화점 3사 모두가 영등포에 집결하면서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백화점 3사 점포가 한 구에 몰려 있는 것은 전국적으로도 영등포가 유일하다.
다른 두 백화점과 비교할 때, 더현대 서울은 상품을 판매하는 '매장'으로서의 기능보다 '쇼핑·여가·문화 복합공간'으로서의 역할이 더욱 두드러진다. 다만 ‘백화점의 얼굴’인 1층을 명품관으로 구성한 것은 전통적인 공식을 따랐다는 점에서 한 가지 아쉬움으로 남는다.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은 지난해 12월 1층에 MZ세대 관심 콘텐츠를 도입하는 도전을 꾀했다.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점도 B관 전체를 리빙 매장 중심의 생활전문관으로 꾸몄고, 업계 최초로 식품 전문관 ‘푸드마켓’을 1층에 배치하며 변화를 줬다.
더현대 서울은 2011년 롯데백화점 김포공항점 이후 10년 만에 생긴 서울 백화점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 힘쓰는 유통계의 흐름을 거스르는 만큼, 사람들의 이목이 쏠린 것은 더현대 서울의 확실한 강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푸드마켓 계산원 김 모 씨는 “지난 24일엔 오전보다 오후에 사람이 많았다. 26일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이 올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 복합쇼핑몰 IFC몰에서 일하는 직원 C 씨(20대‧남)는 “금융·증권 중심지인 여의도는 고소득 직장인과 용산·마포 등에 거주하는 VIP고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라 더현대 서울이 인기를 끌 것으로 생각한다”고 내다봤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더현대 서울은 판교점과 양대산맥을 이루는 백화점이 될 것이다. 앞으로 1년간 6300억 원의 매출을 내고 오는 2022년에는 연 매출이 7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손민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minjizzang@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