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체라고 해서 모든 제품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제품에 대한 경쟁력이 있는 업체나 특정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있는 업체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기술을 흡수해 취급하는 제품을 늘려가는 경우도 흔하다.
세계 최대 전자업체로 꼽히는 애플이 대표적인 사례다. 애플이 그동안 선보인 다양한 제품, 서비스, 기술 가운데 상당수가 관련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기존 업체를 인수한 뒤에 나온 결과물이거나 해당 업체와 제휴하거나 개발을 위탁해 넘겨받은 것이다.
애플이 자랑하는 음성인식비서 시리는 미국의 인공지능(AI) 전문업체 뉘앙스커뮤니케이션스가 개발한 것이고 애플 뮤직 서비스는 영국의 음악 스트리밍 스타트업 프라임포닉을 인수한 뒤에 나왔으며 얼굴인식 보안기술인 페이스 ID는 이스라엘의 3D 스캐닝 전문업체 프라임센스를 인수한 뒤 개발됐다.
애플에 인수된 업체들은 거의 대부분이 스타트업이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그동안 애플이 일관성 있게 이같은 행보를 보였기 때문에 자율주행 전기차를 독자적으로 개발 중인 애플이 미국의 전기차 스타트업 카누를 인수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애플은 지난 2014년부터 ‘프로젝트 타이탄’이란 이름으로 은밀히 가동해온 연구개발팀에서 개발한 일명 ‘애플카’를 이르면 오는 2025년께 출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플 주요 제품들, 스타트업 인수 통해 나와
애플카도 예외는 아니어서 애플카에 대한 개발이 본격화된 것도 지난 2019년 미국의 자율주행 전문 스타트업 드라이브.ai라는 업체를 사들인 이후다.
15일(이하 현지시간) 애플 전문 기자로 유명한 마크 거먼 블룸버그통신 기자에 따르면 애플은 애플카 연구개발 인력을 최근들어 대폭 충원하고 있다.
세계 최대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는 물론이고 포드자동차, 전기차 스타트업 리비안, BMW, 메르세데스-벤츠, 볼보 등 내로라하는 업체들로부터 비중 있는 인력들을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일단 애플카 개발팀에서 임원으로 일했던 마이클 슈베쿠치가 미국 전기항공기 스타트업 아처 애비에이션으로 자리를 옮기는 등 핵심 인력이 연말연시에 잇따라 퇴사하면서 발생한 공백을 메우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애플이 ‘전기차 제조업계의 애플’로 통하는 전기차 스타트업 카누를 인수할 가능성이 크다고 마크 거먼 기자는 전했다.
카누가 갖춘 기술력이 애플카 개발에 크게 도움이 될 정도로 탄탄한 것은 이미 알려진 바이고 카누가 자금 사정 악화로 최근 경영위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애플, 카누와 인수 협상 전력
카누는 지난 201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창업한 전기차 전문업체로 현대자동차가 한때 인수를 검토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사실은 애플과 카누가 전혀 낯선 사이는 아니다. 애플에서 카누를 공동창업한 울리히 크란츠를 지난해 6월 영입한 바 있기 때문. 크란츠는 독일 BMW에서도 30년간 일한 전기차 전문가다.
애플은 한 때 카누를 인수하고자 지난 2020년 초 직접 인수 협상을 벌이기도 했으나 양쪽의 입장이 달라 인수는 성사되지 않았다. 애플은 인수를 희망했으나 카누는 애플로부터 투자를 받는데 더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이 카누에 대한 인수를 다시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는 그 사이 카누 측의 사정이 투자자들에게 운영 자금이 바닥나고 있다고 호소할 정도로 많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카누는 올해말께 출시할 예정이었던 첫 번째 전기차이자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은 전기 미니밴 ‘라이프스타일’의 시판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거먼 기자에 따르면 운영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카누 측은 추가 투자를 받는 방안을 모색 중이지만 이같은 노력이 별 소득을 거두지 못할 경우 회사를 아예 넘기는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뿐 아니라 애플카를 개발 중인 애플이, 과거에 인수 협상까지 벌였던 애플이 어느 업체보다 우선적인 검토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
그는 “크란츠 전 카누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애플카 개발팀에서 책임자로 있을뿐 아니라 크란츠 외에도 카누 출신 엔지니어들이 애플카 개발조직에서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애플과 카누의 인수 협상이 열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혜영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