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증권거래소에선 오는 8일 부터 설립 5년차 스타트업 애니컬러의 주식 거래가 시작된다. 애니컬러는 지난해 매출 76억엔(약738억원), 영업이익 14억엔(약 140억원)을 기록했으며 지난 2020년과 비교하면 매출 119.5%, 영업이익 229.5%가 증가하는 등 급성장하고 있다. 이들의 핵심 사업은 '니지산지'라는 버추얼 유튜버 그룹을 운영하는 것이다.
일본 대중 음악계의 '등용문'으로 꼽히는 무도관 공연장에도 버추얼 유튜버가 처음으로 발을 내딛는다. 카미츠바키 스튜디오 소속으로 2018년 데뷔한 음악 전문 버추얼 유튜버 '카후'가 그 주인공으로, 8월 24일 1만명 이상의 관객 앞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버추얼 유튜버는 실제 인간이 가상 캐릭터를 내세워 개인방송 활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2011년 활동을 개시한 영국의 '아미 야마토'가 최초의 버추얼 유튜버로 알려져 있으나, 실질적으로 시장을 개척한 이는 지난 2016년 데뷔한 이래 300만 구독자를 끌어모은 일본의 '키즈나 아이'로 평가된다.
키즈나 아이가 사용한 아바타는 일본 만화·애니메이션에서 주로 묘사되는 '미소녀'의 외향을 취했고 이에 따라 버추얼 유튜버들은 대부분 애니메이션 풍의 미소년·미소녀 캐릭터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동아시아권 안에서도 '오타쿠'라 불리는 서브컬처 팬들만이 즐기는 마이너 문화로 인식돼왔다.
그러나 2020년 들어 버추얼 유튜버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서 성과를 거두며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그 해 9월 데뷔한 홀로라이브 영어권 유튜버 '가우르 구라'는 데뷔 40일만에 구독자 100만명을 확보하며 라이징 스타로 떠올랐다.
유튜브 통계 사이트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2020년 유튜버 중 슈퍼챗(실시간 후원) 수익이 가장 높았던 것은 18억원대 수익을 거둔 홀로라이브의 '키류 코코'였다. 이는 전년도 같은 회사의 '미나토 아쿠아'가 기록한 최대 연 수익에 비해 4.5배 가량 높은 수치였다. 이 둘은 모두 2021년 들어 100만 구독을 달성했다.
일본·영어권에서 여러 유튜버들이 100만 구독을 확보한 가운데 푸에르토리코의 '아이언마우스'(트위치 기준), 태국의 '기푸리', 아르헨티나의 '니무', 멕시코의 '파라' 등 세계 각지에서 100만 구독을 확보한 사례가 이어졌다.
한국에선 아직 100만 유튜버는 나오지 않았으나 85만 구독자를 확보한 '대월향', 유튜브에선 29만명에 그쳤으나 틱톡에서 360만명이 팔로우하는 '아뽀키' 등의 버추얼 유튜버들이 활동 중이다. 이중 아뽀키는 최근 CJ ENM 산하 음반사 스톤 뮤직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싱글 앨범 'Shut up Kiss Me'를 선보이기도 했다.
센서리움 측은 버추얼 유튜버의 성공 요인으로, 애니메이션·개인방송 애호가 등 잠재적 수요가 많았다는 점 외에도 △기술 발전으로 인한 접근성 증가 △크리에이터를 위한 편의성 등 2가지를 추가로 지목하며 "지금보다 기술이 더 발전할 수록 크리에이터들에게 더욱 인기를 끌며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실제로 업계 투톱으로 꼽히는 '니지산지' 운영사 애니컬러와 '홀로라이브' 운영사 커버 모두 기술 기업으로 출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니지산지'는 본래 모션에 따라 움직이는 2D 캐릭터를 제공하는 상용화 앱의 이름이었는데 버추얼 유튜버에 해당 기술이 그대로 활용됐다. 커버는 설립 초기 VR게임 전문 개발을 목표로 했으며 현재 자체 메타버스 '홀로어스'를 개발 중이다.
크리에이터를 위한 편의성에 관해 개인방송 분석 사이트 'AFK스트리밍'의 필립 메이넌 칼럼니스트는 "자신의 신상이 노출되길 꺼리면서도 소통 밀도를 높이고 싶은 스트리머들이 버추얼 유튜버를 선택한다"고 설명했다. 실시간으로 행동이 반영되는 가상 캐릭터를 통해 실물을 공개하지 않고도 팬들과 보다 밀접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일본에선 그래픽 아티스트들이 버추얼 유튜버 모델링 제작에 참여한 후 자신도 버추얼 유튜버로 데뷔하는 경우가 여럿 있었는데, 이중 유튜브서 74만 구독자를 확보한 '시구레 우이' 등 방송인으로 성공한 사례도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데뷔한 버추얼 유튜버 그룹 '레볼루션 하트', '로나 유니버스', '이세계 아이돌' 등에 전직 연예인·연습생 출신 멤버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브컬처 시장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역시 이뤄지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 스트리머 '코드미코'가 대표적인 예시로, 3D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그녀는 현재 언리얼 엔진을 활용한 3D 인간 캐릭터를 내세워 버추얼 유튜버로 활동 중이다. 앞서 언급한 '아뽀키' 역시 자신의 캐릭터로 3D로 모델링된 토끼 인간 캐릭터를 활용한다.
버추얼 유튜버 '아이언마우스'는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이 내 방송을 보고 '이걸 왜 보는 거냐'라고 묻더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진행한 네이선 그레이슨 기자는 "그녀를 포함한 버추얼 유튜버들은 이제 틈새시장이 아닌 트위치 플랫폼의 주류 문화로 인정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필립 메이넌 칼럼니스트는 "버추얼 유튜버가 애니메이션 등 비주류 문화와 공통 분모가 많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서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스트리머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버추얼 유튜버는 개인방송 문화의 일부로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