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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음식윤리와 은혜 갚은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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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음식윤리와 은혜 갚은 까치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이미지 확대보기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
사람은 공기와 물과 먹을거리가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 공기와 물은 지구가 제공하지만, 먹을거리는 자연의 식물, 동물, 미생물 등의 다른 생명체가 제공한다. 따라서 사람은 자연의 다른 생명체와 공존해야 생존할 수 있다. 인류가 생존을 지속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다른 생명체와의 공존이 성공하느냐 아니냐에 달려있다.

이것이 바로 사람에게 먹을거리에 대한, 좋고 바른/생각과 태도(good and right/thinking and attitude), 즉 음식윤리가 꼭 필요한 이유이고, 음식윤리의 기본 마인드를 ‘인간중심주의’에서 ‘비인간중심주의’로 근원적으로 바꾸어야 할 이유다.
인간중심주의는 생태계 구성원 중에서 사람에게만 내재적 가치가 있다고 본다. 내재적 가치의 예로서 벽에 걸린 그림의 미, 즉 아름다움을 들 수 있다. 반면에 비인간중심주의는 사람이 생태계 구성원 중의 하나일 뿐이며, 사람은 물론 다른 구성원들도 내재적 가치가 있다고 본다.

비인간중심주의는 생태계의 각 개체를 중시하는 개체론과 생태계를 유기적인 전체로 파악하는 전체론으로 나눌 수 있다. 개체론은 동물에게만 내재적 가치를 인정하는 동물중심주의(감각중심주의)와, 모든 생명체에게도 내재적 가치를 인정하는 생물중심주의(생명중심주의)로 나눌 수 있다. 반면에 전체론은 생명체는 물론 생명이 없는 생태계의 무생물도 내재적 가치가 있다고 보며, 대표적인 예로 대지윤리를 들 수 있다.
우리 집은 야트막한 산 중턱에 있고, 집 근처에 새들이 많이 산다. 물이 적은 산이라, 베란다 난간 바깥 받침대에 접시를 놓고 새가 먹을 물을 주었다. 며칠 후부터 까치와 같은 새들이 날아와 물을 먹고 가기 시작했다. 물을 먹는 새들의 모습이 귀여워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촬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거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체론의 입장에서 볼 때 새를 존중하고 새와 공존하려는 생각과 태도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전체론의 입장에서 볼 때는 생태계와 조화롭게 살아가는 새의 삶에 개입하여 생태계의 조화를 깨뜨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뿐만 아니라 새에게 먹이까지 준다면 더욱 그러하겠지.

그래서 과감히 물 접시를 치워버렸다. 물 접시를 치운 뒤 단골손님처럼 오던 새 한 마리가 긴 시간 난간에 앉았다 갔다. “왜 주다가 안 줘! 물 줘! 물 달란 말이야!” 마치 데모라도 하듯이. 측은지심이 올라와 물을 다시 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자연에 대한 간섭은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은혜 갚은 까치’ 설화가 떠올랐다. 한 남자가 까치 새끼를 잡아먹으려는 구렁이를 죽여 까치를 구해주었다. 남자는 캄캄한 밤중에 어떤 집에서 하룻밤 자게 되었다. 잠을 자는 사이에 구렁이가 온몸을 감고 남자를 죽이려 하였다. 그때 어디선가 종이 세 번 울리자 구렁이는 사라졌다. 남자가 종으로 가보니 종을 들이받은 까치가 죽어있었다.

이야기 속의 남자가 까치를 살린 것은 좋은 일이나, 구렁이를 죽인 건 바람직한 행위가 아니다. 자연에서 까치와 구렁이는 먹이사슬 관계에 있다. 구렁이는 까치 새끼를 먹고, 또 까치도 구렁이 새끼를 먹을 수 있는 관계다. 둘은 서로 먹고 먹히면서 공존한다. 그 관계에 사람이 개입하여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리는 것은 전체론의 입장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게다가 까치를 살리고 구렁이를 죽이는 것은 종 차별에도 해당한다.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그 남자가 까치 새끼를 살려준 행위나, 이 남자가 새에게 물을 준 행위는, 둘 다 생태계에 개입하여 혼란을 주는 행위다. 측은한 마음도 지혜롭게 잘 다스려야 다른 생명체와 성공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 인류의 생존 지속이 여기에 달려있다.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