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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돋보기] 허영인 회장 어깨에 올려진 책임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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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돋보기] 허영인 회장 어깨에 올려진 책임의 무게

은둔 경영자 허 회장, 공개 석상 나타나 거듭 사과

허영인 회장이 21일 서울 서초구 본사에서 최근 발생한 계열사 SPL 제빵공장 사망사고와 관련, 공식 사과했다. 사진=송수연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허영인 회장이 21일 서울 서초구 본사에서 최근 발생한 계열사 SPL 제빵공장 사망사고와 관련, 공식 사과했다. 사진=송수연 기자
공식 석상에 좀처럼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은둔의 경영자'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계열사 SPL에서 일어난 사망사고로 대중 앞에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간에는 공식 석상에서 볼 수 없던 허 회장이 직접 나선 것은 이번 사태의 엄중함을 느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요.

21일 오전 11시, 허 회장은 서울 서초구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대국민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허 회장은 "고인과 유족께 깊은 애도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번 사고가 전부 본인의 탓이라고 강조하는 동시에 진심 어린 사과를 했습니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안전한 일터를 만들도록 직접 챙기겠다고도 다짐했습니다. 이 일환으로 향후 3년에 걸쳐 총 1000억원을 투자해 그룹 전반의 안전경영 시스템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후속 대책도 내놨습니다.

오늘 발표한 후속대책을 면밀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1000억원은 △안전시설 확충 및 설비 자동화(700억원) △작업환경 개선 및 안전문화 형성(200억원) 등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이번에 안전사고가 발생한 SPL의 경우에는 영업이익의 50% 수준에 해당하는 100억원을 산업안전 개선을 위해서 쓸 계획이라고 합니다. 물론, 유가족에 대한 지원도 아낌없이 하겠다고 강조했죠.

◆진정성 있었던 회장님 사과에도…


허 회장의 등장 덕분에 여론은 회사 측 대응이 진정성있다고 평가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아쉬운점도 거론됩니다.

8명의 사상자를 낸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 화재 참사와 놓고 비교해 보겠습니다. 해당 화재 사고는 지난달 29일 있었습니다. 당시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이날 소식을 듣고 지체없이 바로 현장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리고 유가족 앞에서 애도와 사죄의 말을 전하고 "어떠한 책임도 회피하지 않겠다"는 회장 명의의 사과문도 내놨습니다. 그러나 SPC그룹은 사고가 일어난 다음날(16일)에서야 허 회장이 유가족을 조문하고 사과했습니다. 허 회장 명의의 사과문은 17일에야 나왔습니다.

이뿐일까요. 현대프리미엄아울렛의 경우 화재가 있은 후 즉각 영업을 중단하고 입점 협력업체들에게 보상금 지급 계획을 밝힌 한편, SPC그룹은 사고 이후에도 공장을 계속 가동하는 바람에 여론을 더 악화시켰습니다.

더욱이 조문객 답례품으로 주라며 빵을 놓고 간 것이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회사 측 대응이 미흡하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회사 빵 답례품'은 SPC그룹의 전통이긴 합니다. 내부 직원들이 부고 소식이 있을 때마다 빈소를 지키는 가족들이 혹여 식사를 챙기지 못할까 배려해 이어져 내려온 것인데요.

하지만 이번 사태는 고인이 공장에서 빵을 만들다 사고를 당했습니다. 회사측이 사안을 엄중하게 여기지 않고 있다는 비난이 이는 점이 바로 이것 입니다.

◆불매운동 일파만파, 불안에 떠는 가맹점주들


제빵왕으로 알려진 실력자 허 회장의 SPC그룹은 리스크가 많은 기업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합니다. 지난해에는 SPC 던킨도너츠가 위생 논란에 시달렸습니다. 앞서서도 계열사별 표절 및 광고논란 등으로 거의 매년 매스컴을 탔습니다.

그때마다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해 여론의 시선이 식어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데다가 이번 사고 후 일어난 일련의 이슈들이 실망스럽다는 평을 받으며 미운털이 더 단단히 박히는 듯 해 아쉽기만 합니다.

하지만 허 회장은 이를 인식한 듯 거듭된 사과로 여론에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재발방지 대책부터 직원들이 안전한 일터까지 직접 챙기기로 하는 등 노력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다만 변수에 대한 무게가 무겁습니다. 불매운동 때문인데요. 사고 후 미흡한 후속조치로 파리바게뜨를 비롯한 SPC그룹 계열사 제품을 사지 말자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어서 입니다.

불매운동 확산 움직임에 가맹점으로 이어질 피해 문제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의 심각성에는 공감하나 불매운동으로 가맹점주가 겪어야 할 고통도 고려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특히나 프랜차이즈라는 업태는 소비자와 밀접한 업종입니다. 불매운동이 다른 업군에 비해 쉽기 때문에 이 같은 움직임이 시작되면 매출에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허 회장의 향후 행보에는 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달려 있습니다. 업계가 SPC그룹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은둔의 경영자 허 회장은 공식 석상까지 나와 진심 어린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숙제가 많습니다.

우선 경찰 수사와 오는 24일로 예정된 고용노동부 종합감사에서도 오늘 보여준 모습 그대로 진정성 있는 자세로 나서야 합니다. 또 약속한 재발방지 대책과 유가족을 위한 지원 약속도 이행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한번 돌아선 고객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송수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sy1216@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