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는 ‘반도체 굴기(崛起)’를 내세우며 가파른 성장세를 구가하던 중국의 발목을 잡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제조업 전 부문에서 절대적인 지배력을 차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온 중국은 실제로 철강과 전자‧IT, 자동차, 조선, 철도차량 등의 산업에서 과점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반도체 제재는 타격이다. 봉쇄가 시작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아 중국 반도체는 수출과 수입 모든 면에서 역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반도체의 실질적인 칩 제조‧생산은 현지에 투자한 외국 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 반도체 산업이 이만큼의 자급률을 유지한 것도 외국 기업 덕분이었다.
만약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의 요구대로 중국을 빠져나간다면 중국 반도체 산업은 벼랑 끝까지 몰리게 된다. 중국 정부로서도 필사적으로 이들의 이탈을 막아야 한다. 미국과의 안보동맹을 강화하고 있는 한국에 대한 중국의 적대감은 크지만, 반도체 보복 조치를 시행할 때도 미국 기업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만 겨냥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해선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고 있는 것도 경제·산업적인 측면에서 두 회사의 위상이 크기 때문이다.
국내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사업장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양국 간 협력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정치‧안보 측면에서 봤을 때도 지나친 갈등을 해소하는 완충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면서 “이해득실 측면에서 자국이 얻을 수 있는 요소가 훨씬 많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어떻게 해서든 잡아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양국 간 갈등이 원활히 해소되기를 희망한다는 원론적인 태도를 견지할 뿐 어떠한 의견도 내놓지 않고 있다. 사태의 흐름이 언제든 바뀔 수 있으니 기업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것이다.
다만, 미‧중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을 반대하는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의 중국 방문으로 갈등 해소의 여지가 적게나마 마련된 것에는 기대를 품고 있다. 당장 양사에 1년 유예 조처가 내려진 반도체 장비의 대중 수출통제를 영구 유예로 전환해주길 바라고 있다. 중국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생산활동을 더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강화해 주길 바라고 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