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와 첨단 광물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다시 한번 불붙고 있다. 미국 정부가 첨단반도체에 이어 범용반도체(레거시 칩)마저 규제 움직임을 보이자 중국 정부는 희토류 수출 제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아직 본격적인 규제가 실행되지 않았지만 미국과 중국의 공급망 경쟁이 각 산업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아 관련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지난 21일(현지 시간) 다음 달부터 미국 내 △자동차 △항공우주 △방산 △통신 등 주요 분야에서 중국산 범용반도체를 얼마나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는지 실태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조사 실시 목적으로 중국으로부터 제기되는 국가 안보상의 위험을 낮추기 위한 목적이라고 공공연히 밝혀 중국에 대한 추가 규제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국이 조사에 나서는 범용반도체는 통상 20nm(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의 공정에서 만들어지는 저렴한 가격의 저성능 반도체로, 미국의 규제로 인해 중국 내 반도체 기업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점유율을 높여왔다. 미국의 이번 정책은 이러한 중국의 점유율 확대를 견제하기 위한 정책으로 중국 내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중신국제(SMIC) 등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맞서 중국은 희토류 카드를 꺼내 들었다. 희토류는 희귀 광물로 최근 다양한 분야에 사용되면서 ‘첨단산업의 쌀’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중국 상무부와 과학기술부는 희토류 제조와 정련 기술 수출을 제한하는 ‘중국 수출금지·제한 목록’ 개정판을 발표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 희토류 생산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는 상태로 희토류는 △자동차 △배터리 △스마트폰 △반도체 등 사용처가 매우 다양하다. 특히 미국은 희토류 수입의 상당량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2018∼2021년 기준 미국의 중국산 희토류 수입 의존도는 74%에 달한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관련도가 높은 기업들은 미·중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범용반도체가 쓰이는 가전·스마트폰 등의 업계는 당장 큰 타격이 없다는 입장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 내 반도체 기업들이 타격을 입으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에 대한 참고자료를 내고 "미국 측과 협의·협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