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대통령이 제시한 예산안은 집권 2기 청사진이다. 그는 오는 11월 대선을 겨냥해 중산층 감세와 상품·서비스 가격 통제 방침을 강조했다. 이번 예산 제안서에는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 인상에 따른 중산층의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세금 공제 혜택을 주고, 정부가 개입해 처방약 가격 인하를 유도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세법 개정을 통해 기업과 억만장자를 대상으로 한 최저세율 인상 방침 등을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7일 국정연설에서 밝힌 대로 최저 법인세를 현행 15%에서 21%로 대폭 올리기로 했다. 최저한세는 조세 감면 혜택을 받더라도 최소한으로 내야 하는 세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억만장자에 대한 증세 조처 중 하나로 미실현 자본이득에도 25%의 세율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향후 10년에 걸쳐 5000억 달러가량 세수가 늘어난다. 또 연간 100만 달러 이상의 소득자를 대상으로 자본이득에 봉급과 동일한 세율로 소득세를 부과한다.
바이든은 슈퍼 부자의 ‘실현 이득’과 ‘미실현 이득’에 모두 세금을 매기도록 했다. 소위 '완전 소득(full income)'에 대해 25%의 소득세를 부과하려는 것이다. 완전 소득에는 ‘미실현 자본이득’이 포함된다. 백악관은 미국의 400대 슈퍼 부자가 실질적으로 내는 소득세율은 지금까지 8.2%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자본이득세(capital gain tax)란 개인이나 기업이 투자자산을 매각할 때 자산 가격 상승분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자산을 매각할 때 자본이득이 ‘실현됐다’고 보고, 여기에 세금을 매기되 ‘실현되지 않은’ 자산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주식 가격이 아무리 오르더라도 매각하지 않으면 자본이득세를 부과할 수 없다. 주식·채권과 같은 자산의 미실현 이익에도 25%의 세율을 적용하면 임금 대신 주식으로 보상받으면서 과세를 피하는 슈퍼 부자들에게 세금을 물릴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석유와 가스 기업들의 생산을 장려하려고 부여했던 353억 달러 규모의 세금 감면 혜택을 취소할 수 있도록 의회가 입법 조처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통해 마련되는 금액 중에서 5억 달러를 신흥국의 기후변화 대응에 지원하고, 65억 달러를 미국 시골 지역에 무탄소 배출 전력을 공급하는 데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빅테크와 싸우는 법무부의 반독점 업무 추진 예산으로 6300만 달러를 배정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의회가 발목을 잡은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과 이스라엘 지원 예산도 편성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방예산을 1%만 증액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F-35 스텔스 전투기와 원자력 추진 잠수함 등 주요 무기체계 구매가 축소되거나 늦춰진다. 바이든 대통령이 의회에 8950억 달러(약 1174조원) 규모의 2025 회계연도 국방예산안을 제출한다. 이는 2024 회계연도 국방예산안보다 1% 많다. 바이든 대통령과 공화당은 지난해 5월에 연방정부의 채무불이행 사태를 피하려고 부채 한도를 상향하는 대신 2024 회계연도 국방 지출을 바이든 대통령이 요청한 8860억 달러로 제한하고, 2025년에는 예산을 최대 1%만 증액하는 상한을 두기로 합의했었다.
백악관이 이날 공개한 내년 예산안은 구체적인 세목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내년부터 10년간의 경제 추이를 바탕으로 장기 재정 계획을 밝힌 것이다. 연방 상·하원은 이 제안을 참고할 뿐이고, 구체적 액수가 포함된 연방 예산은 의회의 12개 예산 분과위원회가 편성권을 행사한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