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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심리적으로 비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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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심리적으로 비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존재"

[힐링마음산책(288)] 노벨상과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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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로는 최초로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가 2024년 3월 27일 향년 90세로 별세했다. 1934년 3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태어난 그는 이스라엘 히브리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심리학의 이론을 경제학에 적용해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창시한 학자로 칭송받고 있다.

그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음을 증명한 학자로 유명하다.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150달러를 따고 뒷면이면 100달러를 잃는 게임은 확률적으로 돈을 딸 확률이 높지만, 손실을 회피하는 성향 때문에 이 게임을 포기하는 사람이 게임 참여자보다 훨씬 많다는 점을 밝혀냈다. '합리적 인간'을 전제한 경제학의 오랜 통념을 뒤집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자신이 부딪히는 모든 상황, 경험에 의존 어림잡아 결정


현대 심리학의 발전에 큰 족적(足跡)을 남긴 노벨상 수상자는 카너먼 이전에도 있었다. 1849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실험 신경학자이자 생리학자인 이반 파블로프(Ivan Pavlov)는 개에 관한 일련의 실험을 통해 '조건반사'로 알려진 고전적 조건형성을 발견했다. 이 연구 결과로 학습심리학에 큰 공헌을 했다. 그는 190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각인(刻印·imprinting) 이론으로 유명한 콘라트 로렌츠(Konrad Lorenz)는 1903년에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동물학자이며 비교행동학의 창설자로 칭송받고 있다. 각인은 동물이 태어난 직후에 처음 경험한 특정 개체나 물체를 부모 혹은 돌연변이로 인식하고 그것을 따라다니는 행동 패턴이다.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는 병아리가 부화한 직후 어미 닭을 따라다니는 행동을 들 수 있다. 각인은 인간의 행동발달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는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파블로프나 로렌츠가 심리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지만 그들은 신경학자와 동물행동학자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과학으로 분류되는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그에 비해 카너먼은 대학부터 심리학을 전공한 정통 심리학자다. 그런 의미에서 카너먼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은 색다른 의미가 있다. 그 자신도 경제학자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창시했다고 일컬어지는 '행동경제학'의 '행동'이란 용어 자체가 심리학을 일컫는 또 다른 용어다. 심리학을 '행동과학'이라고 일컫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가 행동경제학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이전에 심리학자로서 '추단(推斷·heuristics)'과 '편향(偏向·bias)'에 관한 탁월한 연구를 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부딪히는 모든 상황에서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모든 정보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려고 한다면 인지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느끼게 될 것이다. 추단은 이렇게 시간이나 정보가 불충분해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거나 굳이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기존의 경험에 근거해 신속하게 미루어 판단하는 일종의 어림법이다.

만족할 정답 도출해 내지만 개인 고정관념이 크게 작용


추단 혹은 어림법은 큰 노력 없이도 빠른 시간 안에 대부분의 상황에서 만족할 만한 정답을 도출해 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때로는 터무니없거나 편향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추단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가용성 추단'이란 어떤 사건이 발생한 빈도를 판단할 때 그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활용하기보다는, 사건에 관한 구체적인 예를 얼마나 떠올리기 쉬운지에 따라 그 발생 빈도를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즉, 구체적인 예가 친숙하고 생생하며 기억에 남을 만하고 시간적으로 가까운 것일수록 떠오르기 쉽기 때문에, 이에 근거해 빈도를 판단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교통사고의 경우 비행기 사고를 당할 확률은 교통사고 중 제일 낮다. 하지만 비행기 사고는 대형 사고이고 여러 날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지므로 회상(回想)이 쉽기에 자동차 사고보다 더 위험하게 느껴진다.
심리학자로는 최초로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심리학자로는 최초로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 사진=로이터


가용성 추단과 크게 관련 있는 인지적 편향 중 하나가 '사후 과잉확신 편파(hindsight bias)'다. 사후 과잉확신 편파란 사건의 결과를 알고 난 후에 "내가 그럴 줄 알았어"라며 마치 사건이 발생하기 전부터 그 사건을 예측했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사후 과잉확신 편파는 사건의 결과를 보고 그 결과와 관련한 근거들을 빠르게 떠올리면서, 그것들을 과대평가해 이전부터 예견할 수 있었거나 예견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대표성 추단'은 우리가 어떤 대상이나 사람이 특정 범주의 전형적인 특성을 얼마나 많이 나타내는지, 즉 대표성이 있는지에 근거해 특정 범주에 속할 확률을 판단하는 인지적 책략이다. 카너먼이 실험에서 사용한 대표성 추단의 예는 '린다 문제'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린다라는 가상의 인물을 설정하고, 이 인물에 대해 31살의 여성이며 독신이고 철학을 전공했으며, 인종차별 반대와 사회 정의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반핵 시위에 참여했다는 설명을 했다. 그리고 피험자들에게 린다가 은행 직원일 확률(A)과, 은행 직원이면서 여성 운동가일 확률(B) 중에 어느 것이 더 높은지를 예측하도록 했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린다가 은행 직원일 확률(A)보다, 은행 직원이면서 여성 운동가일 확률(B)이 더 높다고 틀리게 예측했다. 이처럼 틀린 예측을 하는 이유는 이 같은 문제를 받았을 때 주어진 사람의 특성과 고려 대상이 되고 있는 두 범주(은행원과 여성 운동가)에 대한 고정관념과 비교해서 어느 것이 더 유사한지에 따라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닻내리기 추단'은 어떤 사항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초기에 제시된 기준에 영향을 받아 판단을 내리는 현상이다. 예를 들면, 사람들에게 한강의 길이를 짐작해보는 질문을 하면서 "한강의 길이가 500리보다 길까요 짧을까요?"라고 묻는 것과 "한강의 길이가 5000리보다 길까요 짧을까요?"라고 묻는 것은 상당히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물론 응답의 평균치가 첫 번째 질문보다 두 번째 질문에서 2배 이상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판단을 할 때 사람들은 의식하지 못한 채 당시에 가용한 근거를 사용한다. 비록 이 근거가 터무니없다고 해도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린 언제든 오판할 수 있어, 부족한 인간으로 더 겸손해야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되는 중요한 추단을 한 가지 더 소개하면 '감정 추단'이 있다. 흔히 인간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한다고 여기지만, 인간은 감정에 따라 판단을 하는 일이 많다. 이를 감정 추단이라고 한다. 예컨대, 공이 10개 들어있는 A 항아리에 검은 공은 1개가 들어있고, 공이 100개 들어있는 B 항아리에 검은 공은 8개가 들어있다. 검은 공을 뽑으면 상품을 준다고 할 때, 확률적으로 보면 A 항아리를 선택하는 것(10%)이 B 항아리를 선택하는 것(8%)보다 확률이 높지만, 많은 사람들은 B 항아리를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람들이 확률에 근거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눈에 보이는 검은 공의 숫자에 반응해 1개만 들어있는 항아리보다는 8개가 들어있는 항아리를 선택하는 것이다.

카너먼이 창시한 '행동경제학'은 고전 경제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비합리적 의사결정 행태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인간은 때로는 인지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추론을 통해 어림잡아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은 많은 편향에 빠지기도 하고, 틀린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그는 기존의 경제학과 심리학이 신봉한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 즉 인간은 항상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이성적 존재라는 명제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즉 인간이 합리적 존재라면 1달러를 벌었을 때 느끼는 기쁨과 1달러를 잃었을 때 느끼는 괴로움이 똑같아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잃었을 때 훨씬 큰 괴로움을 느끼고 이로 인해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존재라는 것이다.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또 다른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Richard Thaler) 시카고대 교수는 카너먼의 연구 성과를 두고 "지구가 둥글다는 발견에 견줄 만하다"고 극찬했다. 카너먼은 이런 찬사를 들을 만큼 심리학뿐만 아니라 각국 정부의 정책 평가, 질병 진단 방식, 심지어 야구계의 선수 모집 방식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진짜 공로는 인간은 항상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을 포함해 주위에는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확신에 차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들에게 카너먼과 행동경제학의 연구 결과들은 우리는 완벽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신이 아니라 언제든지 오판할 수 있는 부족한 인간이기 때문에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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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