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의 발로만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유력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미국의 저출산 추세 배경을 진단하며 이같이 밝혔다.
단순히 자녀 출산을 기피하는 것 외에 다양한 사회·경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
선진 경제 국가 중심으로 전세계적으로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상한 가운데 미국도 예외가 아니지만 구체적인 원인을 들여다보지 않고 이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NYT의 지적이다.
◇ 美 보수진영 “가족 중시하는 가치관 사라져 저출산”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산하 국립보건통계센터(NCHS)가 지난 4월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미국 여성의 1인당 출산율은 1.62명으로 전년 대비 2% 감소했다. 미국 정부가 출산율을 조사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NYT는 미국 굴지의 여론조사업체인 퓨리서치센터가 최근 발표한 조사 결과를 인용해 그 주된 원인은 미국 보수진영이 그동안 펼쳐온 주장과는 매우 다른 것으로 나타나 주목된다고 NYT는 전했다.
NYT는 “미국의 출산율이 갈수록 떨어지는 배경과 관련해 미국 공화당 대통령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J.D. 밴스를 비롯한 보수진영에서는 가족을 중시해온 미국 사회의 가치관이 사라진 결과, 미국 사회에서 향락주의에 빠진 결과라고 주장해왔다”면서 “그러나 최근 나온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는 현실과 거리가 먼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 자녀 없는 18~49세 미국 성인의 절반 “앞으로 자녀 낳을 생각 없어”
NYT에 따르면 이는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4~5월 자식이 없는 50세 이상 미국 성인 2542명과 18~49세 미국 성인 77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나온 결과다.
이번 조사 결과 18~49세의 미국 성인 가운데 앞으로도 자녀를 출산할 생각이 없다는 밝힌 응답자가 47%, 생각이 있다고 밝힌 응답자가 50%로 나타나 출산에 대한 의견이 서로 팽팽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8년 기준 조사에서는 출산할 생각이 있다는 응답자가 61%에 달했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50%로 크게 감소한 반면, 출산할 생각이 없다는 응답자는 같은 기간 37%에서 47%로 크게 증가했다.
NYT가 이번 조사 결과에서 주목한 대목은 자녀 출산을 희망하지 않는 다양한 이유들이었다.
50세 이상 응답자와 18~49세 응답자의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았으나 대체로는 비슷한 흐름을 나타냈다.
가장 큰 이유로 제시된 것은 ‘단순히 자녀를 낳고 싶지 않아서’와 ‘마땅한 배우자를 만나지 못해서’인 것으로 파악됐다.
18~49세 그룹에 속한 무자녀 성인의 57%가 전자를, 50세 이상 그룹에 속한 무자녀 성인의 33%가 후자를 이유로 꼽았다.
◇ 자녀 출산 가로막는 사회·경제적 이유들
그러나 단순히 자녀 출산을 희망하지 않거나 배우자를 만나지 못해 출산을 하지 못한 것과는 다른 이유들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른 이유에는 △자녀 양육보다는 개인적으로 좀 더 집중하거나 추구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전세계적인 문제에 대한 걱정 때문에 △자녀 양육비를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아서 △환경 문제에 대한 걱정 때문에 △자라면서 자신의 가정에서 보고 느낀 점 때문에 △불임 등 신체적인 결함 때문에 등이 포함됐다.
이 가운데 개인적으로 자녀 출산에 대한 관심이 있더라도 내키지 않게 하거나 포기하게 하는 사회·경제적인 요인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 △전세계적인 문제에 대한 걱정 때문에 △자녀 양육비를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아서 △환경 문제에 대한 걱정 때문에 등이다.
전세계적인 문제에 대한 걱정 때문에 평생 자녀를 낳을 생각이 없다고 밝힌 응답자는 18~49세 그룹에서 38%, 50세 이상 그룹에서 13%를 차지했다.
자녀를 낳고 기르는데 드는 돈 문제 때문에 출산 계획이 없다고 밝힌 응답자도 18~49세 그룹에서 36%, 50세 이상 그룹에서 12%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를 위시한 환경 문제 때문에 출산 생각이 없다고 밝힌 응답자는 18~49세 그룹에서 26%, 50세 이상 그룹에서 6%인 것으로 파악됐다.
자녀를 낳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매우 큰 18~49세 그룹에서 이같은 이유들을 꼽은 것은 이들이 자녀 출산 문제와 관련해 사회·경제적으로 받고 있는 압박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인구전문가인 카렌 벤자민 구조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는 NYT와 인터뷰에서 “각종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젊은 세대에 속한 상당수의 미국 성인들은 학자금 대출을 상환하고 내집을 마련할 정도로 경제적인 자립을 이룬 뒤에야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밝혔다.
구조 교수는 “그러나 문제는 이들에게 이같은 전제조건을 이루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그런 현실 때문에 결혼을 했더라도 부모가 되기를 꺼리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