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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의미' 찾기보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찾기가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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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의미' 찾기보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찾기가 먼저

[힐링마음산책(293)] 삶이 나에게 묻는 질문

개브리엘 토머스(미국, 오른쪽)가 지난 6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육상 여자 200m 결선에서 1위로 골인한 후 기뻐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개브리엘 토머스(미국, 오른쪽)가 지난 6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육상 여자 200m 결선에서 1위로 골인한 후 기뻐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지난 칼럼에서 1981년 개봉된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를 통해 두 가지 동기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영화는 1924년 파리올림픽 육상 400m 금메달리스트 에릭 리들(Eric Riddell)과 100m 금메달리스트 해럴드 에이브러햄(Harold Abraham)을 그린 실화 영화다. 두 사람 모두 뛰어난 달리기 선수다. 하지만 두 사람이 올림픽에 참가하여 메달을 따려는 이유는 서로 다르다.

유대인이자 고리대금업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렸을 때부터 무시당하고 심한 편견에 시달린 해럴드는 출세하여 자신을 무시한 사회에 보란 듯이 성공하고 싶었다. 가족의 지원과 본인의 노력으로 1919년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의 마음속 깊이 숨겨진 또 다른 목적은 영국을 대표하는 육상선수로 파리올림픽에서 우승하여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려는 것이었다.
에든버러 대학교의 학생 에릭 리들은 아시아에서 선교사로 일하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 선교활동을 삶의 목표로 삼고 있다. 선천적으로 빠르게 달리는 재능을 타고난 그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재능을 준 신에게 감사하고, 빠르게 달릴 때 신이 기뻐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에게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은 달리는 것 자체가 즐거울 뿐만 아니라,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재능을 준 신을 기쁘게 하는 신앙심의 표현이다.

이 두 사람에게 달리는 동기는 다르다. 이들의 달리는 의미 또한 서로 다르다. 비록 행동은 동일하지만 자신이 하는 행동의 의미가 서로 다르다. 해럴드 에이브러햄은 올림픽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따는 의미가 자신이 유대인이지만 영국인보다 더 유능하고 앞으로 그들보다 더 높은 지위를 얻어 지배할 힘을 얻는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에릭 리들은 메달을 따는 의미가 자신에게 잘 달릴 수 있는 능력을 준 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달리는 의미, 또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비단 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각자 자신의 인생 달리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전력을 다해 질주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달리는 의미는 무엇인가? 달리기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가?

상담과 심리치료 이론의 핵심은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힘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에서 시작한다. 상담과 심리치료 분야에 여러 이론이 있는 것은 이 근원적인 힘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론가들마다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유명한 지크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는 “쾌락의 추구”다. 그리고 그 가장 근원적인 쾌락은 ‘성(性)’이다. 그래서 성욕(性慾)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구다. 말년에는 성욕에 ‘공격욕’을 더했지만 역시 가장 근본적인 것은 성욕이다. 그의 이론을 정신분석학이라고 부른다.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 빈(Wien) 출신의 제자인 알프레트 아들러(Alfred Adler)는 인간 행동을 결정하는 욕구는 인간 존재에 필연적으로 내재해 있는 보편적인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우월성(優越性)’의 추구가 가장 근본적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스승인 프로이트와는 견해차가 심해 프로이트와 결별했다. 아들러의 이론을 ‘개인심리학’이라고 부른다.

빈 출신의 또 한 명의 뛰어난 정신의학자가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이다. 프로이트·아들러와 마찬가지로 유대인인 그는 두 사람과 달리 엄청난 시련과 고통을 겪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의 생존자로서,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등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다. 가장 비참한 환경인 수용소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결국 끝까지 살아남아 해방된 경험은 그를 ‘의미치료(Logotherapy)’라는 독자적인 훌륭한 심리치료 이론과 방법을 개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프랭클에 따르면,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적 이유는 ‘의미(意味)’를 찾는 것이다. 즉, 사람에게는 ‘의미에의 의지’가 있고, 이를 충족하며 살아야 한다. 그는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통해 육체적으로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수용소에서 살아나갈 이유를 갖고 있는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 즉 살아야 할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이 살아남았다. 이 존재 이유를 갖지 못한 사람은 결국 ‘실존적 공허(空虛)’에 빠진다. 이런 공허에 빠진 사람은 그 공허함을 잊기 위해 과도한 성적 활동에 탐닉하거나 부를 축적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결국 허망한 것이라는 걸 깨닫고 우울해지거나 심하면 자살까지 행하게 된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의미를 못 찾겠다”고 말한다. 또한 살아가는 뚜렷한 목적을 찾지 못하고 허송세월하는 사람들에게 “인생의 의미를 찾아라”라고 충고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의 기저에는 한 가지 가정(假定)이 있다. 즉, 인생의 참의미가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아직 모르거나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교나 철학 등은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이런 가정과 노력의 결과, 우리는 자신이 아직 모르고 있는 삶의 의미를 찾거나 깨닫기 위해 종교지도자에게 매달리거나 인문학 강의를 기웃거린다. 이런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삶의 의미조차 깨닫지 못하는 부족하고 소극적인 자세로 살아가게 된다.

프랭클은 삶의 의미가 이미 정해져 있고, 단지 우리가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가정을 단호히 부정(否定)한다.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존재여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게 되는가? 그 이유를 그는 우리가 질문을 잘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우리는 보통 “나의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 그리고 그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하지만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삶이 우리에게 “네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질문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우리 자신이 답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의미는 이미 정해져 있고, 나는 그것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내 삶의 의미는 내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오늘도 삶의 의미를 못 찾고 헤매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네 삶의 의미를 어디서 찾으려 하느냐? 빨리 네 인생의 의미를 네가 만들어야 한다. 네 삶의 의미는 너 말고 어느 누구도 또는 그 무엇도 줄 수 없다. 지금도 너에게 ‘빨리 나에게 살아가는 의미를 만들어 달라’고 간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프랭클의 이런 사상이 전 세계인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단지 연구실에서 나온 이론이 아니라 처절한 수용소 생활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간 그날 모든 소지품을 압수당했다. 압수당한 물품 중에는 그가 첫 저서로 출간하려고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초고가 있었다. 그것을 무기력하게 압수당한 후 너무나 절망한 나머지 살아야 할 의미가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런 고민을 하던 그에게 지급된 이미 죽은 수감자의 옷에 달린 주머니 속에서 히브리 기도서의 찢어진 조각을 발견했다. 그것은 ‘셰마 이스라엘(Shema Yisrael)’의 다음과 같은 기도 내용이었다. “진심으로 네 영혼과 힘을 다하여 너의 주를 사랑하라.” 프랭클은 이 구절을 읽는 즉시 신(神)이 자신에게 계시를 주신 것이라고 여겼다. 그는 이 쪽지를 통해 신께서 “어떤 고통이나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삶을 긍정하라고 명령하고 계신다”고 여겼다. 그는 기도문이 들어있는 옷을 지급받은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그가 발전시킨 심리치료의 한 방법, 즉 ‘의미치료’를 탄생시키고 강제수용소라는 혹독한 실험실에서 검증하게 만든 일종의 ‘상징적 소명(召命)’이었다고 나중에 술회했다.

올림픽 육상경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두 선수에게 금메달의 의미는 서로 달랐다. 그것은 금메달 그 자체에 이미 의미가 자동적으로 부여된 것이 아니라 각자가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을 뜻한다. 비록 두 선수가 어느 날 심사숙고해 금메달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려서부터의 경험에 의해 잠재의식적으로 만들어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메달의 의미를 부여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도 자신의 달리기 경기에서 금메달을 얻기 위해 온 힘을 다해 훈련하고 경기에 임하고 있다. 금메달이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다. “나는 너에게 어떤 의미이니?” 그 의미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볼 필요가 없다. 나 스스로 독자적으로 그 의미를 금메달에게 주어야 하니까.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