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9월 22일 바로 이곳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다섯 나라 재무장관 회의가 열렸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그리고 일본 등 이른바 G5로 불리는 선진 5개국의 재무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선진 7개국 모임인 G7 또는 20개국 모임인 G20의 뿌리가 G5 이다. 그 때 G5 시 회의를 소집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미국의 재무장관이었던 베이커가 주도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5개국 재무장관들은그 회의에서 ‘협조 개입을 통한 달러 약세 유도’라는 그 이전까지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비밀 합의를 했다. 5개국 정부가 목표 환율을 정해 놓고 그 선에 이를 때까지 미국 달러화는 매각하고 일본 엔화는 사 모으기로 담합을 한 것이다.
플라자 회담은 일본에게 큰 고통을 주었다. 엔화 환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일본의 수출 경쟁력이 무너져 내렸다. 급속한 엔고는 급기야 일본 경제의 근본을 뒤흔들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잃어버린 40년은 플라자 회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버블 붕괴로 집값이 폭락하고 주가는 바닥을 쳤다. 이후 일본은 불황 탈출을 위해 안간힘을 썼다. 특히 아베 정권은 세 개의 화살이라는 이름 아래 대대적인 양적완화와 마이너스 금리 그리고 엔화 약세 등의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폈다. 이 과정에서 앤캐리 트레이드가 발생했다. 일본에서 싼 이자로 돌을 빌려 해외 금융 시장에 투자하는 것이 엔 캐리 트레이드의 핵심이다.
와타나베 부인이라는 단어도 이 때 생겨났다. 와타나베 부인은 엔캐리 트레이드로 높은 이익을 얻는 일본의 개인투자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에서 가장 흔한 성인 '와타나베'에서 유래했다. 초기에는 일본의 주부 재테크 사단을 지칭하는 용어였으나 지금은 확대되어 쓰이고 있다.
전세계가 코로나 펜데믹을 거치면서 엔캐리 트레이드에 큰 변화가 생겨났다. 미국 과 유럽 등 글로벌 무대에서 거의 모든 나라들이 코로나 때 풀린 돈 때문에 물가가 오르자 인플레를 잡는다면서 한동안 금리를 계속 올렸다. 그 덕에 인플레는 잦아들고 있다. 고금리 때문에 경기 침체의 우려가 제기되자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이제 경쟁적으로 금리를 내리고 있다. 미국 연준 FOMC도 4년 만에 처음으로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은 사정이 다르다. 잃어버린 40년 불황을 타개한다고 오랫동안 너무 많은 돈을 풀어왔던 만큼 오히려 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전세계가 금리를 내리는 상황에서 일본만 금리를 올리다 보니 일본 엔화 가치가 연일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그동안 일본에서 싼이자로 돈을 조달해 글로벌 세계로 나아가 투자를 해왔던 와타나베 부인들로서는 해외투자분을 거두어 일본으로 환류시켜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바로 이 과정에서 앤캐리 자금의 대 청산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뉴욕증시와 유럽증시에서는 일본 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뉴욕증시에서도 엔캐리 청산 대문에 여러 차례 발작 현상이 생겼다. 미국 연준 FOMC가 금리인하를 할 때마다 엔캐리 청산의 발작이 일어날 수 있다. 전세계 금융시장이 제롬파월 의 빅컷 금리인하 보다 엔캐리 청산을 더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 연준 FOMC가 빅컷 금리인하를 단행할 경우 엔화 환율이 더 큰 폭으로 떨어지고 그 결과 엔캐리 청산이 폭발할 수 있다.
9월16일 뉴욕증시와 외환시장에 따르면 달러-엔 환율 140엔선이 끝내 붕괴됐다. 이날 달러-엔 환율은 한때 139.951엔까지 내려섰다. 이는 2023년 7월 28일 138.058엔을 기록한 후 1년 2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달러-엔 환율은 이후 140엔선을 겨우 회복했으나 엔화 강세가 이어지면 또 140엔선 아래로 무너질 수 있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9월19일과 20일 이틀간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연다. 미국 연준 FOMC 못지않게 중요한 회의이다. 만약 일본이 여기서 또 금리를 인상한다면 엔캐리 청산의 폭풍이 발생할 수 있다. 일본은행은 지난 3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인 단기 정책금리를 17년 만에 올리며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했다. 7월에는 금리를 0∼0.1%에서 0.25%로 인상했다. 이후 미국 경기 경착륙 우려가 나타나면서 8월 초 엔화가 달러화에 비해 강세를 보이고 주가가 급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만큼 이번 9월 에는 금리인상을 자제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행은 그러나 추세적으로 금리 인상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이후 금리를 더 올릴 가능성이 높다. 다무라 나오키 일본은행 심의위원은 최근 강연에서 경제·물가 동향이 일본은행 전망에 부합할 경우 기준금리를 "적어도 1% 정도까지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 심의위원들이 잇따라 금리 인상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다무라 나오키 BOJ 심의위원은 이날 오카야마시에서 열린 경제·금융 간담회에서 경제·물가 추이가 BOJ 전망에 부합할 경우 정책금리를 최소 1%까지 인상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앞서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는 물가가 2026년도(2026년 4월~2027년 3월)까지 예상대로 지속된다면 정책금리는 경기를 과열시키거나 냉각시키지 않는 중립금리 수준에 거의 근접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립금리는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 없이 물가가 안정된 상태에서 자금의 공급과 수요를 맞출 수 있는 이론적 금리 수준이다. 이날 다무라 심의위원은 그 중립 금리가 “적어도 1% 안팎이 될 것”이라고 예상치를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0.25%인 일본의 기준금리가 1%가지 오를 수 있다는 경고이다. 미국 연준 FOMC가 계속 금리를 내릴 것으로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일본이 그 반대로 금리를 올린다면 엔 캐리 발작 현상은 그만큼 심각해 질 수 있다.
청산 가능한 엔 캐리 트레이드의 규모를 정확하게 측정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뉴욕증시 전문가들은 4조~5조 달러 선으로 추산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역주행 폭과 속도에 따라 엔 캐리 청산이 파장이 더 커질 수도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