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리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 아시아 국가들이 연준의 금리 인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대표적인 국가는 동남아 국가들과 인도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안정적인 인플레이션과 경제 성장률로 인해 내년까지 금리를 3%로 동결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12일 HSBC이코노미스트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 중앙은행도 10월 금리를 6.50%로 동결할 것으로 예상됐다. 인도의 8월 소비자 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7%로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상승했으며, 특히 식료품 가격이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이와는 다른 이유로 금리 인하를 점진적으로 가져가는 아시아 중앙은행들도 있다. 대만은 고착화된 인플레이션과 과열된 부동산 시장으로 인해 금리를 2%로 동결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중국도 예상과 달리 기준 대출 금리를 동결했다. 대부분의 경제 지표가 전월 대비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디플레이션 압력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금리 인하가 유력했지만, 이 예상을 깨고 동결을 선택한 것이다.
실제로 8월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0.6% 상승해 예상보다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식료품 가격만 상승하고 비식료품 및 서비스 비용과 근원 인플레이션은 하락해 경제가 약세를 보였다는 분석이 나왔다. 점진적인 디플레이션 대응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우리나라 또한 마찬가지다. 수도권 인근 주택 가격 급등으로 인해 금리 인하가 가장 필요한 국가 중 하나로 손꼽힌 한국은 점진적인 인하 기조를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망됐다.
노무라증권의 아마미야 아이치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6일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기준금리는 3.50%로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며 다음 달부터 금리 인하를 시작할 수 있지만, 한국은행이 금융 안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만큼 2025년 말까지 25bp 인하가 3차례에 그칠 것으로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연준의 빅컷에 발맞춰 대규모 금리 인하를 할 경우 초래될 수 있는 금융시장의 혼란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아시아 국가가 점진적 인하를 결정한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는 연준의 결정 하루 전 3년여 만에 처음으로 금리를 6%로 25bp 인하했다. 또 지난 8월에는 뉴질랜드 중앙은행이 금리를 5.25%로 25bp 내렸고, 필리핀 중앙은행도 같은 달 4년 만에 처음으로 금리를 6.25%로 25bp 인하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아시아 중앙은행들이 변동성과 미국 경제 사이클로 인해 공격적인 금리 인하보다는 점진적인 속도로 상황을 따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큰 변동성 요인은 단연 11월 미국 대선이다.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당선될 경우 모든 수입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에 6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또 내년 미국 경제가 올해 예상 성장률인 2%보다 낮은 1%에서 1.5% 사이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많아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인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다.
이에 대해 미국 투자 운용사 뱅가드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수석 이코노미스트 첸 왕은 “아시아 중앙은행은 인하 여력이 있지만 반드시 인하할 필요는 없다”며 “아시아 중앙은행들은 연준의 움직임과 대외 변동성을 주시할 것이며, 좀 더 점진적인 속도로 움직이기를 선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홍콩 BofA 글로벌 리서치의 아시아 외환 및 금리 전략 공동 책임자인 아다르시 신하는 “아시아 전체 총생산은 내년에 4.7%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이보다 더 높은 성장률을 보일 수 있다”며 연말까지 더 천천히 금리 인하에 접어들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용수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iscrait@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