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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칼럼] 관계사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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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칼럼] 관계사고에 대하여

김신혜 플랜비디자인 컨설턴트이미지 확대보기
김신혜 플랜비디자인 컨설턴트
한 심리 전문가가 방송에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미국인들이 식당에 가면 메뉴를 보면서 일행에게 "저는 오늘 이걸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데, 한국인들은 "어떤 걸로 드시겠어요?"라고 먼저 물어본다고 한다.

한국인들에게 두드러지는 문화와 정서에는 '관계'를 중요시한다는 점이 있다. 전통적으로 개인주의보다는 공동체주의가 더 강했던 우리 민족은 개인의 목표나 성취보다도 인간관계의 조화와 유지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원형이 이렇다 보니, 서양의 개인주의 문화가 사실은 잘 맞지도 않고, 자꾸만 왜곡돼 접하게 되는 경우도 다분하다. 이러한 경향을 '관계지향적 사고'라고 말한다.
유사한 사고방식 중 하나로, 개인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을 인식하고, 그 관계에 맞춰 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조정하는 능력을 말하는 '관계사고'라는 것이 있다. 주로 타인의 감정이나 입장, 상황을 깊이 공감하고, 그에 따라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하는 과정이 이에 포함된다.

언제나 그렇듯 이 사고방식은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눈치가 빠르고, 유연함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지만 반대로 본인이 너무 타인을 많이 신경 쓰게 되어 피곤하고, 그러다 보니 자기 자신보다는 상대가 우위가 되어 종종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감정이 들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쌓이다 보면, 유연함은 걷잡을 수 없는 딱딱한 벽으로 변해버리곤 한다.
관계지향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무조건 '관계사고'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관계지향적 사고와 관계사고를 둘 다 하는 사람들은 유독 감수성이 민감하고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에도 취약하다. 이러한 타고난 관계사고력 때문에 일을 하고 삶을 살아가는 데 득을 보는 것도 많겠지만, 그것이 자기 자신을 파괴하고 있다고 느껴질 때를 위해 공유하고 싶은 것이 있다.

예전에 큰 프로젝트의 PM을 한 적이 있었다. 매번 미팅할 때마다 마주해야 하는 담당자의 수도 많고, 어려운 임원급도 많은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긴장 아닌 긴장도 많이 하고, 신뢰를 잘 쌓고 싶어서 무리도 많이 하고 있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어딘가 모르게 계속 불안해하는 임원이 한 명 있었다. 그의 불안을 이해하고 해소해보려고 노력해도, 그는 매일같이 자신의 불안함으로 닦달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 날 실무 담당자와 통화를 하면서 그의 불안감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대안에 합의하며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럼에도 그 직후에 해당 임원이 나의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반복되는 자신의 불안함에 대한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통화 내용을 모두 전달받게 됐는데, 사실 그 임원이 딱히 나쁜 말을 한 것도 아닌데도 그의 불안감이 나 자신에 대한 컴플레인처럼 느껴져서 무척 화가 났다. 그래서 한참을 씩씩대면서 화를 내다가 정신이 들었다.

아, 저분의 불안은 내 과제가 아니다.

관계사고가 강한 사람은 상대가 무언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만 해도, 그것이 자신의 탓인지를 생각하게 되고, 상대가 그런 것을 느끼고 있다는 걸 표현하면 ‘나를 공격하는구나!’라고 생각해버리기 쉽다. 그런데 그는 그저 불안해하고 있고, 불안을 얘기했을 뿐인데 그것을 '나 때문에', '나한테' 하는 공격이라고 덧붙이고 왜곡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관계사고와 관계지향적 사고가 강할수록 우리는 종종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빠지기도 한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그렇게까진 못 되더라도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욕먹거나 오해받는 것은 싫고, 그러다 보니 상대의 표현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며 무조건 '나'를 그 감정과 표현에 엮어버리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누군가 '나'에게 불안이든, 불편이든, 불쾌든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한다고 하면, 그것이 그의 과제임을 기억해보자. 그 과제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가 '나'의 과제다. 그의 불안을 나의 불안으로 가져오지 않고도 그의 불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공감해줌으로써 불안을 흘려보낼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만나게 된다면 속으로 '아야'라고 외쳐보길 바란다. 그리고 약간의 여백을 만들고, 한 걸음 물러나 그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다. 같은 상황이라도 누군가는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고, 누군가는 불안해할 수도 있다. 불안해하는 그 사람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가 불안해할 만한 그만의 과제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보자. 그리고 이 상황에서 나는 나를 위해, 또 그를 위해, 우리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잠시 고요 속에서 느껴보는 것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일본의 철학자 이치로 키시미와 후미타케 코기가 공저한 유명 베스트셀러인 '미움받을 용기'의 일부분도 함께 엮어서 적어보았다. 독자 중 누군가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이 가진 관계지향적 사고나 관계사고 같은 소중한 선물을 스스로를 괴롭히는 데 쓰지 말고, 더 가치 있는 곳에 쓰실 수 있기를 응원한다.


김신혜 플랜비디자인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