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많은 트렌드 전망서가 우후죽순 경쟁적으로 나오다 보니 언젠가부터 피로감을 호소하는 독자들이 늘고 있다. 저마다 조금씩 다른 내용을 다루고 있어 다 챙겨 보고는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 모든 트렌드 전망서를 섭렵하는 것도, 그중에 옥석을 가려 읽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하소연이다. 이런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책이 지난해 나왔다. 송길영 작가(전 바이브컴퍼니 부사장)가 쓴 ‘시대예보’다.
송길영 저자에 따르면 마치 날씨를 예보하듯이 앞으로의 시대를 예보하겠다는 것이 이 책의 기획 의도다. 다음소프트·바이브컴퍼니를 이끌며 고객 빅데이터를 분석해 인사이트를 길어 올리는 데 독보적이었던 그의 오랜 공력과 노하우가 이 책을 나오게 한 원동력이라 할 것이다. 언뜻 관계없어 보이는 수많은 고객행동 그 행간에 숨은 현시대의 개인과 조직, 사회의 욕구와 생각을 포착하는 작업을 오랫동안 수행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현시대를 진단하고 다음 시대를 내다본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를 호명(呼名)할 때 반드시 조직명과 그 조직 내에서의 직책이 앞뒤로 따라붙었다. A회사의 김 과장, B점포의 박 매니저, C교회의 이 목사 등 이런 식이다. 앞으로는 조직이나 직책보다는 자신만의 영역이나 기술, 특징을 나타내는 표현과 함께 개인의 이름이 강조될 것이다. 이미 그 변화가 시작됐고, 곧 변화의 속도와 폭이 점점 더 커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변화를 촉발한 동인이자 앞으로 이를 더욱 촉진하는 촉매제로 책에서는 디지털화, 인공지능(AI)의 등장, 만성적인 저성장 등을 꼽는다. 디지털화와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그간 사람이 손으로 처리해 오던 일들이 빠른 속도로 자동화되고 있고, 장기 저성장 국면에 따라 그 어떤 기업도 지속가능성이 담보되지 않는 현실과 맞물려 조직은 갈수록 축소되고 인력 규모는 감소된다. 평생직장 개념이 확고했을 때 개인은 조직에 소속돼 있기만 하면 생존이 보장됐지만, 더는 조직의 성장 및 생존이 확보되지 않는 현재 그리고 미래는 개인이 저마다 장기와 경쟁력을 갖추고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AI와 생존 투쟁을 벌여야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암울한 미래를 예고하는 불길한 예언서인가? 그렇지 않다. 책에서 그리는 미래는 디스토피아보다는 유토피아에 가깝다. 저자는 산업혁명과 그로 인한 대량생산체제 이전 인류는 원래 각자의 역량과 이름으로 불렸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빵 굽는 장인을 뜻하는 베이커, 솜씨 좋은 대장장이를 일컫는 스미스 등. 다시 200년 만에 자신의 이름을 되찾게 된 개인은 디지털화, AI화에 힘입어 충분히 1인 기업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진정한 자립과 연대가 비로소 가능해지는 시대인 것이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호명을 통해 개인은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에서 사회적 주체로 변모한다”고 말했다. 조직에서 극히 작은 일부를 감당하는 부속품 같은 ‘존재’에 불과했던 우리, 이제는 내 이름을 되찾고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주체’로 거듭날 기회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양준영 교보문고 eBook사업팀 과장
조용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ccho@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