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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대한민국 대전망(6)] "엔비디아 독주 막자"...글로벌 빅테크들, 합종연횡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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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대한민국 대전망(6)] "엔비디아 독주 막자"...글로벌 빅테크들, 합종연횡 돌입

기술과 시장의 주도권 싸움이 결정하게 될 반도체 산업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엔비디아 독주를 막기 위해 합종연횡하고 있다. 사진은 삼성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 사진=신희동 원장이미지 확대보기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엔비디아 독주를 막기 위해 합종연횡하고 있다. 사진은 삼성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 사진=신희동 원장
이영한 서울과학기술대 명예교수는 각계 대표 지식인 27명과 함께 1년 동안 관찰하고 분석해 집필한 '2025년 대한민국 대전망'(케이스북 출간)을 최근 펴냈다. 한국의 대표 지성인인 이들은 지속가능발전 5대 지지대인 과학 혁신력, 경제 활력, 사회 균형력, 환경 회복력, 문화 포용력을 기본 틀로 2025년을 내다봤다. 그 주제는 ‘광복 80주년 NEXT STEPS, 대한민국호 새로운 시험대에 서다’이다. 이영한 교수 등은 이를 기반으로 세계와 한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경제신문 글로벌이코노믹에 '2025년 대한민국 대전망'을 10회 연재해 깊고 폭넓은 통찰력을 제시한다. ‘2025 대한민국 대전망’에는 이영한(서울과학기술대 명예교수), 한상진(서울대 명예교수), 남성욱(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 윤순구(국립외교원 명예교수), 문형남(숙명여대 학장), 신희동(한국전자기술연구원장), 강건욱(서울대 교수), 차학봉(땅집고 미디어본부장), 김소임(건국대 교수), 최윤정(세종연구소 부소장)이 필진으로 참여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2025년 지속가능발전 5대 지지대의 건전성

② 광복 80주년에 BTS를 다시 본다

③ 대한민국의 핵무장론

④ 트럼프 2기 미·중 통상 갈등의 전망과 대응

⑤ AI 슈퍼사이클의 시작점과 AI CEO

⑥ 기술과 시장의 주도권 싸움이 결정하게 될 반도체 산업

⑦ 정밀 의학시대와 AI 헬스케어

⑧ 금리인하와 공급부족에 따른 집값 향방

⑨ 1000만 관객 영화와 K-Movie

⑩ 세계 정치·경제 판을 뒤흔드는 글로벌 사우스

지난 수십 년간 반도체 기술은 '무어의 법칙(Moore’s Law)'에 따라 비교적 예측 가능한 경로로 발전해 왔다. 이는 반도체에 집적되는 트랜지스터 수가 18~24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법칙이다. 이에 따라 공정 선 폭을 물리적·단계적으로 줄이는, 조금씩 나아가는 혁신이 주효했다. 그러나 최근 공정 미세화의 한계와 인공지능(AI)반도체의 등장이 혁신 양상을 바꿨다. 새로운 소재와 아키텍처, 첨단 패키징과 같이 기존 기술의 룰을 바꾸는 파괴적 혁신이 더 중요해졌다. 무어의 법칙으로 수십 년간 왕좌에 군림한칩 메이커 인텔이 다우지수에서 제외되고 엔비디아가 그 자리를 꿰찬 것은 이 같은 변화를 상징하는 사례다.

이처럼 기술의 불확실성이 커진 반도체 산업의 시계가 한층 더 불투명해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정치 불확실성이 더해진 것이다. 반도체 보조금 지급 근거가 담긴 반도체법(CHIPS Act)을 '나쁜 거래'로 규정한 트럼프의 당선에 전세계 기업이 긴장하고 있다.

안갯속 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지도를 그려야 경로를 찾을 수 있다. 다행히 기술의 발전과 시장의 수요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큰 틀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다. 기술과 시장이 그리는 새로운 경로를 탐색해 보고자 한다.

기존 반도체 지도를 '고지도(古地圖)'로 만든 것은 AI다. 2022년 11월 챗GPT 공개 이후 모든 반도체 생태계가 AI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거대 AI의 대규모 데이터 셋 처리와 저장에 고성능 반도체가 필수기 때문이다. 가장 앞서나간 기업은 단연 엔비디아다. 비디오 게임 등 그래픽 병렬 처리를 위해 개발된 GPU(그래픽 처리 장치)가 AI 병렬 처리에도 효과가 있는 것이다. AI 시장 선점이 절실한 빅테크(Big Tech, 거대 정보 기술 기업)들이 앞다퉈 엔비디아의 AI 가속기를 구매하고 있다.

초과 수요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당분간은 엔비디아의 독주가 지속될 것이다. 아직 GPU 수준의 성능을 구현하는 프로세서가 없기 때문이다. AI 개발자들이 벗어나기 힘든 개발 플랫폼 CUDA(쿠다, 엔비디아가 개발한 병렬 컴퓨팅 프로그램)도 공고한 시장 지배력에 일조한다.

그러나 시장은 특정 기업의 독주를 반기지 않는다. GPU 경쟁 기술을 개발 중인 반(反)엔비디아 기업들과 공급망 다변화가 절실한 탈(脫)엔비디아 기업들의 합종연횡이 시작됐다. UALink 컨소시움이 대표 사례다. 엔비디아의 고속 인터커넥트 규격 NVLink에 대응하는 UALink 개발을 목표로 구글, 메타, 아마존, 인텔, AMD 등 9개 기업이 힘을 합쳤다. 삼성전자, 인텔, 퀄컴, ARM 등 9개 기업이 주도하는 UXL 재단도 주목받고 있다. AI 개발 플랫폼을 만들기 위한 동맹이다. 이들의 지향점은 같다. 폐쇄형 기술인 NVLink와 CUDA를 개방형 기술로 대체해 엔비디아의 독주를 끝내겠다는 것이다. 합종연횡 이상의 오월동주(吳越同舟)도 관측된다. 일례로 최근 애플은 AI 학습에 구글 반도체 TPU(텐서 처리 장치)를 사용해 시장을 놀랬다. GPU 대안을 찾기 위한 방편이다.

이러한 움직임을 배경으로 내년엔 AI 반도체 생태계의 기류 변화가 예상된다. 지금까지는 엔비디아 중심으로 기술의 공급이 생태계를 주도하는 흐름이었지만, 앞으로는 시장의 수요가 생태계 지형을 바꿀 것이다. 특히 AI 추론(Inference) 시장의 확대가 중요하다. AI 학습(Training)에는 시간 당 데이터 처리량이 중요해 엔비디아의 고성능 범용 AI 반도체가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추론에는 특정 서비스를 지연 없이 제공하기 위한 맞춤형·저전력 AI 반도체가 적합하다. 따라서 AI 에이전트, 온디바이스 AI, 임바디드 AI 등 다양한 시장의 요구가 AI 반도체 생태계를 다변화시킬 것이다.

AI는 견고한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지형도 바꾸고 있다. 직접 동인은 HBM(고대역폭메모리)이다. GPU에 대용량 데이터를 고속으로 전송하는 HBM은 AI 가속기를 구성하는 핵심 반도체다. 한 발 앞서 HBM을 개발한 SK하이닉스가 시장을 주도하며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1등 공식을 뒤집었다. 삼성전자가 아직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가운데, 업계 3위인 마이크론이 먼저 납품을 시작했다. AI 시대 이전엔 상상할 수 없는 지각 변동이다.

삼성전자에겐 내년 하반기가 중요한 분기점이다. 새로운 공정이 도입되는 6세대 HBM4 양산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가령 HBM 두뇌 역할을 하는 로직다이(Logic Die,HBM 신호와 전력 제어 컨트롤러)는 HBM4 제품부터 메모리 공정이 아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정에서 제작된다. D램 간 연결 부품인 범프를 없애고 구리로 직접 연결하는 하이브리드 본딩도 적용될 전망이다. 지금까진 먼저 출발한 선수에게 유리한 구도였지만, 출발선이 같아지면 승자를 쉽게 점칠 수 없다.

한편으론 HBM을 보완할 차세대 기술이 주목받을 것이다. CXL(Compute Express Link) D램이 대표이다. CXL은 CPU와 메모리 반도체 사이의 고속·고효율 연결을 가능케 하는 차세대 인터페이스다. HBM이 높은 대역폭으로 GPU의 빠른 연산을 돕는다면, CXL은 CPU와 메모리, 기타 장치 간 효율 좋은 결을 통해 전체 AI 서버 시스템의 성능을 고도화한다.

반도체 위탁생산을 뜻하는 파운드리 시장도 AI 파급효과가 크다. 그러나 수혜를 본 기업은 TSMC 하나다. TSMC의 올해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9% 증가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2위 삼성전자와 격차는 더 커졌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4년 전 TSMC의 시장 점유율은 51.5%였으나, 지금은 62.3%에 이른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18.8%에서 11.5%로 낮아졌다. 후발 주자인 인텔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조 단위 적자 수렁에 빠져 한때 매각설이 대두됐다.

삼성전자는 GAA(게이트올어라운드) 공정을 적용해 세계 최초 3nm(나노미터. 10억 분의 m) 양산을 시작하는 등 공정 미세화 측면에서 일부 앞선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TSMC의 패키징(CoWoS) 기술력과 공정 수율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기술력만큼 중요한 것은 TSMC가 오랜 기간 고객사에 쌓은 신뢰 자산이다.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OIP)을 통해 파트너사 협력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와 대척점에 있는 기업이 인텔이다. 인텔은 자체 프로세서를 생산하며 높은 수준의 제조 기술력과 설계 자산(IP)을 축적했다. 그러나 이 자원을 자사 제품 생산에만 사용했다. 2021년 파운드리 사업에 재진출하며 외부 개방을 시작했지만, 이미 TSMC의 IP와 공정에 익숙해진 고객의 발길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파운드리는 전환비용이 높아 잠금(Lock-in) 효과가 크다.

당분간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의 아성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TSMC를 겨냥해 "우리 사업의 95%를 훔쳤다"고 한 트럼프의 당선은 변수가 될 수 있다. 관세 등 직접 조치가 아니더라도, 수요기업이 안정된 공급망 확보를 위해 높은 비용과 시행착오를 감수하며 복수의 대안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AI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프로세서 시장에선 '합종연횡', 메모리 시장에선 '지각변동', 파운드리 시장에선 '승자독식' 현상이 두드러지게 관측된다. 빠르게 재편 중인 시장에서, 우리 기업은 특정 분야를 제외하곤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도체 기업만이 아니다. AI 기업의 사정은 더 열악하다. 지난해 기준 국내 AI 기업이 보유한 엔비디아 H100 제품은 약 2000 개로 추정된다. MS와 메타는 같은 제품을 각각 15만 개씩 구매했다. 반도체 인프라가 핵심 경쟁력인 만큼, AI 격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며칠 전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일본에서 AI 인프라 구축 계획을 밝힌 것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대담을 나눈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AI로 일본을 '리셋(Reset, 초기화)'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일본 정부도 10조 엔에 이르는 보조금 지원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이처럼 미국, 중국, 대만은 물론 일본도 국가 역량을 AI·반도체에 결집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기술과 시장을 아우르는 전폭 지원이 필요한 때다. 점진 혁신보다 파괴적 혁신이 중요해진 반도체 산업인 만큼, 기존 정책의 업그레이드를 넘어 파격의 획을 긋는 지원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이 글은 이영한 등 27인(2024.10.), ‘2025 대한민국 대전망’, 케이북스의 내용을 근거로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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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동 한국전자기술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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