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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흔들리는 ‘저가 항공’ 사업모델…비용 증가·경쟁 심화로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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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흔들리는 ‘저가 항공’ 사업모델…비용 증가·경쟁 심화로 위기

미국의 대표적인 저가 항공사인 스피릿 항공 소속 여객기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의 대표적인 저가 항공사인 스피릿 항공 소속 여객기들. 사진=로이터
저가 항공사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이 흔들리고 있다.

과거 저렴한 항공권을 앞세워 시장을 선점했던 저비용 항공사들이 높은 운영 비용과 대형 항공사의 시장 잠식, 소비자 선호 변화 등의 요인으로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저가 항공 모델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경고하고 있다.

17일(현지시각) 야후파이낸스에 따르면 미국 저가 항공사 스피릿 항공은 최근 프런티어 항공의 21억6000만 달러(약 3조1200억원) 규모 인수 제안을 거부했다. 이는 프런티어가 이달 초 제안한 조건과 유사한 수준이었다.

앞서 프런티어는 29억 달러(약 4조2000억원)에 스피릿을 지난 2022년 인수하려 했으나 경쟁사인 제트블루가 38억 달러(약 5조5000억원)를 제시하면서 인수전이 무산됐다. 이후 스피릿은 지난해 11월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스피릿의 사례는 저가 항공사의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기존 저가 항공사 모델은 기본 운임을 낮추는 대신 위탁 수하물, 좌석 선택, 기내 서비스 등을 별도로 유료화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대형 항공사들이 유사한 저가 운임제를 도입하면서 경쟁이 심화됐다. 동시에 인건비와 유지·보수 비용이 증가하며 저비용 구조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마이크 보이드 보이드그룹인터내셔널 대표는 야후파이낸스와 인터뷰에서 “초저가 항공 모델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운영 비용이 올라가면서 저비용 항공 모델 자체가 사실상 사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주요 저가 항공사들은 경쟁 심화와 운영 비용 증가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저비용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시장 주도의 임금 인상, 공항 사용료 상승, 의료보험 비용 증가로 인해 예상보다 높은 비용 상승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난달 밝혔다. 이에 따라 사우스웨스트는 오는 2027년까지 5억 달러(약 7200억원) 규모의 비용 절감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 저가 항공사들은 기존 전략을 일부 수정하고 있다. 사우스웨스트는 수십 년간 유지해온 ‘오픈 시팅(좌석 자유 선택제)’ 정책을 폐지하고 좌석별 요금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프런티어도 올해까지 프리미엄 좌석과 비즈니스석을 추가할 계획이다. 저가 항공사들이 기존 초저가 모델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면서 점진적으로 기존 항공사들과 유사한 운영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시장에서도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최근 1년간 대형 항공사들의 주가는 상승했지만 저가 항공사들의 주가는 상대적으로 저조한 흐름을 보였다.

특히 제트블루는 지난 4분기 실적 발표에서 예상보다 높은 비용과 낮은 수익을 이유로 2025년 실적 전망을 하향 조정했고 이 발표 이후 주가가 급락했다.

댄 버브 네바다대 명예교수는 야후파이낸스와 인터뷰에서 “저가 항공 시장 자체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전통 항공사들의 국내선 저가 요금제 도입과 국제선 수요 증가도 저가 항공사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미국 내 소비자들은 해외여행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국내선 공급 과잉으로 인해 가격을 올려 수익을 보전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일부 저가 항공사들은 단순 비용 절감 외에도 새로운 시장 개척을 시도하고 있다. 프런티어는 기존 단거리 노선 중심에서 중·장거리 노선으로 확대를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형 항공사들과의 경쟁에서 열세에 놓여 있다.

보이드 대표는 “프런티어가 하루 한 편 운항하는 것으로는 델타항공이 하루 12편 운항하는 노선에서 경쟁하기 어렵다”며 “시장 내 브랜드 인지도와 고객 충성도 면에서도 전통 항공사에 비해 불리하다”고 지적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