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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커피 가격 50년 만에 최고에도 커피 농가는 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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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커피 가격 50년 만에 최고에도 커피 농가는 울상

국제 커피 가격 추이. 사진=국제커피기구(ICO)이미지 확대보기
국제 커피 가격 추이. 사진=국제커피기구(ICO)
국제 커피 가격이 5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중남미 커피 농가들은 이를 축복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후 변화로 인한 수확량 감소와 생산비 상승으로 인해 농민들은 오히려 생계를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22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뉴욕 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아라비카 커피 선물 가격은 파운드당 4달러(약 5800원)에 근접하며 지난 197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20% 상승한 수준이다. 로부스타 커피 가격도 1.5달러(약 2160원)를 넘어 30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국 농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미국 주요 도시에서 판매되는 원두 커피 가격 역시 평균 파운드당 7달러(약 1만70원)를 넘어섰다. 이는 전년 대비 15% 상승한 수준이다.
그러나 NYT에 따르면 온두라스 남서부 산악지대에 위치한 ‘핀카 엘 푸엔테’ 농장은 위기에 직면했다. 네 번째 세대 커피 농부인 마리사벨 카바예로와 남편 모이세스 에레라는 최근 커피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수익이 줄어드는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에레라는 “커피 생산은 우리 삶의 전부”라며 “하지만 많은 농부들이 희망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핀카 엘 푸엔테 농장은 최근 몇 달간 예기치 못한 한파와 폭우로 인해 커피 농작물에 큰 피해를 입었다. 수확철인 12월과 1월에 강추위가 닥쳤고, 이어진 비로 인해 숙련된 노동자들이 수확을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수확량은 줄었지만, 생산비는 오히려 상승했다.

에레라는 “높아진 커피 가격이 오히려 위기를 알리는 신호”라며 “기후 변화가 커피 농업을 지속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브라질과 베트남 등 주요 커피 생산국들도 이상 기후로 인한 피해를 입어 전 세계 커피 공급량이 줄어들고 있다. 브라질의 경우 지난해 가뭄과 한파로 인해 커피 생산량이 전년 대비 25% 감소했으며, 베트남 역시 폭우로 인한 피해로 수확량이 15% 줄었다.

기후 변화 외에도 커피 농가들은 인력 부족과 생산비 상승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온두라스 현지 농민들은 숙련된 노동자를 확보하기 위해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해야 했고 비료 가격도 크게 올랐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온두라스의 농업용 비료 가격은 전년 대비 35% 상승했다. 더욱이 많은 현지 주민들이 미국으로 이주해 노동력 부족 문제가 심화됐다. 이로 인해 핀카 엘 푸엔테 농장은 일부 생산지를 줄이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일부 농민들은 지속 가능한 커피 재배로 전환하며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온두라스 코르킨 지역의 세르히오 로메로는 지난 2009년 가족 농장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전환했다. 그는 커피 나무 위로 소나무와 마호가니 나무를 심어 그늘을 제공하고, 토양 수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로메로는 “기존 농법은 토양 건강을 해치고 기후 변화에 취약했다”며 “지속 가능한 농법이야말로 미래”라고 말했다.

그의 농장 ‘카피코’는 현재 140에이커 규모로 확장됐으며, 공정무역 인증을 통해 고급 커피로 인정받고 있다. 공정무역 프리미엄을 통해 지역 학교와 보건소 개선에도 기여하고 있으며, 농민들에게 더 나은 수익을 제공하고 있다.

커피 가격 상승에도 커피 농가들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커피 농장주인 호세피나 로페즈는 “커피 가격이 오르긴 했지만 작황 피해로 수확량이 크게 줄었다”며 “향후 3년간 가격이 유지될지 알 수 없어 농장을 확장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로페즈의 농장은 커피 녹병(라 로야) 피해로 올해 수확량이 지난해 대비 70% 감소했다.

이와 함께 커피 거래 시장의 혼란도 농가에 부담을 주고 있다. 커피 수출업체들은 가격 변동성을 헤지하기 위해 선물 거래에 참여하지만 최근 급격한 가격 상승으로 손실을 입은 업체들이 자금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 수출업체들은 마진콜로 인한 자금 부족으로 파산 위기에 처했으며, 이는 커피 공급망 전반에 불안정을 초래하고 있다.

기후 변화, 생산비 상승, 노동력 부족 등으로 커피 산업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지속 가능한 농법을 통해 커피 농가들이 장기적인 생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계커피연구소의 버른 롱 대표는 “커피 가격 상승은 경고 신호”라며 “지속 가능한 농법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커피 산업 전반이 붕괴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커피 농가들은 단기적인 수익에 집중하고 있으며, 공정무역 커피로 거래되는 비율도 전체 생산량의 3분의 1에 불과하다고 NYT는 덧붙였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