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한 인수합병(M&A)이 늘어나는 가운데, 채권 투자자들 사이에서 예상치 못한 신용도 악화에 대비한 재무제한조항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9일(현지시각) 일본 회사채 시장에 정통한 관계자의 인터뷰를 인용해 이와 같이 보도했다.
일본에서는 회사의 경영권이 바뀌면 투자자가 사채 조기 상환을 청구할 수 있는 'COC(Change of Control) 조항'이 거의 활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로 인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석에 따르면 최근 세븐앤아이홀딩스, 닛산자동차 등 정기적으로 엔화 채권을 발행하는 대기업에서 지배권 변경으로 이어질 수 있는 움직임이 잇따르면서 투자자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니세이아자산운용의 히로유키 미야타 채권운용부 전문부장은 “COC 조항은 신용등급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넣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 조항이 없는 채권에 투자하는 것은 리스크가 커진다는 것이다.
세븐앤아이는 최근 기업가치 제고에 나서면서 회사채 기준금리 대비 가산금리가 급격하게 확대된 상황이다. 시장조사업체 매크로밀과 광학기기 제조업체 톱콘도 해외 사모펀드(PE)가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스프레드가 기록적인 수준으로 치솟았다.
스프레드의 급격한 확대는 인수 등으로 회사 경영권이 바뀌면서 부채 증가와 상장폐지, 신용 등급 강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라다 켄타로 SMBC 닛코증권 수석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상장폐지 등의 이벤트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가운데, 회사채 투자자들로부터 그 리스크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의가 빗발친다는 시장 상황을 전했다.
그는 “주가수익비율(PER)이 낮거나 인수 위험이 인식되기 쉬운 기업의 사채 중 적절한 보호장치가 도입되지 않은 사채에 대해서는 향후 투자자들이 더 높은 프리미엄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해외 주요 채권시장에서는 COC 조항은 주로 저등급 채권 발행 시 발동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활용도가 낮은 것은 기업이 전통적으로 자금 조달을 은행 차입에 의존하는 한편, 인수 대상이 되기 쉬운 저등급 기업의 회사채 발행도 해외에 비해 적은 편이라 COC에 대한 활용도가 낮은 사정이 있다.
그러나 신용등급에 관계없이 M&A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일본에서도 투자자 보호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특히 신용등급이 높은 기업의 사채에 투자할 경우가 많아 투자자들의 우려는 깊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지난해 일본증권업협회 워킹그룹 회의에서는 신용등급이 BBB 플러스 이하인 채권을 대상으로 COC 조항과 채무불이행(디폴트) 가능성이 높아졌을 때 발행사가 투자자에게 통지하도록 의무화하는 '보고 약정'을 유연하게 적용하기로 합의했다.
앤더슨 모리 토모노리 법률사무소 고문 기무라 아키코(木村明子)는 “일본에서는 간접금융의 비중이 큰 것이 사실이며, M&A의 규모가 커지면서 자금조달을 은행 대출만으로 모두 충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라고 지적했다.
또 미즈호증권의 오오하시 히데토시(大橋英敏) 최고 신용 전략가는 올해 일본 기업이 인수 대상이 될 위험이 작년보다 더 높다고 말했고, 도쿠시마 카츠유키 닛세이기초연구소 금융연구부 연구이사는 “COC 조항을 부여하는 것은 투자자에게 안도감을 줄 수 있는 만큼 발행사와 증권사가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주제”라고 말했다.
이용수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iscrait@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