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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연출·출연의 '승무 완판', 제4대 벽사의 정재만춤 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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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연출·출연의 '승무 완판', 제4대 벽사의 정재만춤 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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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연출·출연의 '승무 완판'
‘하늘의 춤’이라고 명명했다/ 이끼 낀 시절 건너/ 염불장단에서 연풍대까지/ 세기 반을 넘어 다듬은 춤/ 붉은 기운의 정사년 유월/ 한 사내아이가 벽사의 기운을 타고 태어났다/ 남한강 변의 추억을 타고 세월이 흘렀다/ 이음 하는 호(號) 벽사(碧史)가 사대에 이르렀다/ 한성준 한영숙 정재만에 이어 정용진/ 명문 무가(舞家)의 도도한 내공이 명경지수 같은 무대 위로 번져온다/ 눈 내리던 날의 서초벌 봄날 오후/ 밝고 뜨거운 기운과 역동으로/ 시진 반을 장삼자락 휘날리며/ 신이 된 선친과 화담하고 가볍게 착지했다/ 목어와 함께한 벽사의 춤/ 하나의 풍광이 되었다

3월 4일(화) 오후 3시,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벽사춤’ 주최, 벽사정재만춤보존회 주관, 정용진 연출·출연의 '승무 완판'이 공연되었다. 완판이나 완창은 기대감을 부풀리는 용어이다. 선친 정재만(鄭在晩, 1948.03.04.~2014.07.12., 제3대 벽사) 명인의 생신에 맞춰 제4대 벽사(碧史) 정용진이 '승무 완판'을 7년 만에 헌정했다. 맑고 밝은 공연장은 서양화의 단색화 풍(風)이었다. '승무 완판'에는 1) 한영숙 묘소에서 춤으로 예를 표하는 정용진 부자 2) 정용진의 벽사 내림 춤판 3) 정재만 명인의 정용진 지도 모습이 담긴 세 개의 동영상이 십분가량 영사되었다.

벽사 정용진은 이날 영상을 포함한 90분을 온전히 '승무 완판'에 몰입하여 접신의 경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정용진(세종대 무용학 박사, ‘벽사춤’ 대표, ‘벽사정재만춤보존회’ 회장)은 2003년 12월 2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가 되었다. 초대 벽사 한성준의 ‘승무’는 45분 분량의 ‘승무 원본’과 이것을 오른쪽 왼쪽의 양쪽 대칭으로 추는 90분 정도 분량의 ‘승무 완판'이 비기(祕技)로 존재했다. 정용진은 벽사 정재만류 ’승무‘ 제1호 이수자로서 반듯하게 춤 전통을 이어간다. 정용진은 이날 공연으로 한성준-한영숙-정재만-정용진의 '승무 완판' 전통의 예를 갖추었다.

1969년 7월 4일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승무‘(僧舞)는 승복을 입고 춤을 추지만 불교 의식무(儀式舞)와는 다르다. ‘승무’는 한국 대표 민속춤으로 현재 ‘국가무형유산’이라고 불린다. ‘승무’는 한국 춤사위를 집대성하고 있으며 질량 확대가 크고 공간 구성미가 두드러진다. 벽사류 ’승무‘는 중용(中庸)을 바탕으로 어르고 맺고 풀면서 인간의 내면을 성찰하는 초월의 경지로 승화된 기원을 담은 제의무(祭儀) 로써 천지인(天地人)의 삼재(三才) 사상을 내재한 담백하고 우아하며 정제된 춤사위의 신비를 보여주는 고품격의 춤이다. 승무는 벽사 춤의 사군자 중 대나무(竹)에 비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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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연출·출연의 '승무 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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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연출·출연의 '승무 완판'

정용진 춤의 본질을 보여주는 '승무 완판'에서 그는 흰 바지저고리와 장삼, 붉은 가사, 흰 고깔을 쓰고 백색 탄생 제의를 주재했다. 정용진은 완급과 강약에 이르는 장단의 변화에 따라 승무를 추었는데, 장삼 소매를 뿌리는 동작이나 장삼 자락을 휘날리게 하는 팔동작은 춤 공간에 그리는 현란한 무필(舞筆)이었다. 춤의 백미를 견인하고 조화를 이룬 라이브 반주에 대금(이웅렬), 피리(이재혁, 연홍관), 장구(윤재영), 타악(최철영), 거문고(류수지), 해금(김지희), 아쟁(정성수)이 악기로 편성되었다. 정용진의 남성 홀춤 '승무 완판'은 예술춤 정석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정용진을 '승무 완판'으로 이끈 존경의 대상이 된 정재만은 한영숙의 수제자로서 세종대·숙명여대 교수를 역임했다. 경력 사항으로 월드컵 전야제 안무 총괄(2002),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무용총감독(2002), 부산 아시안게임 무용 총감독(2002),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2000), 아시안게임 폐막식 안무(1986)가 있고, 옥관문화훈장(2007), 제55회 대한민국예술원상(2010), 대한민국문화예술상(2000), 체육부장관상(1988)을 수상했다. 깔끔하고 진지했던 한국무용가 정재만은 다정다감하고 살뜰하게 춤을 지도했기 때문에 사후에도 그를 그리워하는 후학들이 많다.

정용진은 인간의 고뇌를 고차원의 춤으로 풀어내고 승화시키는 벽사춤의 위대한 예술적 가치를 보여주었다. 그는 전통춤의 핵심을 아우르면서 벽사류 춤의 정수인 ’승무’와 함께 한 시간이 33년이 된다. 이번 공연으로 자신의 춤을 재검증받고, 정통을 잇는 벽사로서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낀다. 춤은 염불장단에 합장으로 시작되고, 마지막 장면은 굿거리장단에 호흡을 조절하며 큰 걸음으로 시작하여 연풍대로 제자리에 돌아와 합장으로 마무리된다. 춤은 깊은 발디딤에 긴 한삼을 천천히 뿌려 모으며 웅크리고 펼치면서 순식간에 모아 제치며 비상하는 장삼 놀림을 보였다.

정용진은 대한민국 전통예술전승원 무용분과위원장, 한영숙춤보존회 부회장,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 이사로서 제34회 무용협회 신인콩쿨 한국창작 특상 '길'(1997), 제5회 전국 재인춤경연대회 문화부장관상 대상 '살풀이춤'(2000), 제1회 전국우리춤경연대회 문화부장관상 대상 '살풀이춤'(2001), 제5회 전국전통무용경연대회 대통령상 대상 '승무'(2003), 우리춤대축제 우수작품상 '춤과 소리의 향인'(2008), 대한민국 전통연희축제 'Mr. 춘향' 대상(2009), 보훈무용예술협회 '올해의 문화예술 특별상'(2022), 대한문화진흥협회 '우수문화예술인상'(2024)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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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연출·출연의 '승무 완판'

'승무 완판'의 춤 구성에서 장단과 움직임은 연희적 구성과 간(間)의 분절을 갖는다. 완급 조절로 박을 타고 사위를 뿌려 올리거나 크게 뿌려 팔을 넓게 펴고 천천히 내리기를 연출하면서 춤은 격상된다. 숨의 단계를 고르며, 어깨춤과 발디딤이 맺었다가 풀리기를 반복하며 양손의 북채 운용 조짐이 보이고 북을 어르고 치면서 장삼을 날리며 삼진삼퇴하고 모든 몸놀림은 대삼소삼 원칙을 따른다. 북은 폭풍의 시종을 감내한다. 느린 호흡, 큰 걸음의 연풍대(筵風擡)로 원위치하여 합장으로 종료된다. ‘승무’는 맺고 풀음의 원리와 음양의 이치로 삶의 순환 과정을 묘사한다.

한국전통춤의 시조 한성준(韓成俊, 1874∼1941)의 제1회 무용발표회(1936)에서 ‘승무’의 예술춤 형식을 처음 소개했다. ‘승무’는 신무용과 창작무용의 동인이 되는 원전(原典)이다. 그의 손녀 한영숙(韓英淑, 1920~1989)은 조부로부터 다양한 춤을 배워 후학들에게 전수했다. 한영숙의 ‘승무’는 북과장, 자진모리, 당악 넘김채 정도로만 이루어져 있다. 조용하던 춤은 당악 연주에 맞춰 활달하게 다시 이어진다. 정용진은 아버지 정재만의 생신날 촘촘 디딤새로 아버지를 즐겁게 해드린 기쁘게 해드린 것을 기억해 내고 주변과 함께 '승무 완판'으로 그 의미를 헤아린 효자였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