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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베선트의 재무부에 맞서지 마라" 파월 연준 의장이 힘을 못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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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베선트의 재무부에 맞서지 마라" 파월 연준 의장이 힘을 못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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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박사
미국 뉴욕증시에는 속담들이 많다. 속담에는 오랜 경험을 통해 얻어진 공동체의 지혜와 슬기가 담겨 있다. 뉴욕증시 속담에 “연준에 맞서지 마라(Don't Fight the Fed)”는 말이 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의 통화정책 기조를 거스르지 말라는 뜻이다. 연준에 맞서지 말라는 이 교훈은 비단 뉴욕증시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투자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금과옥조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중앙은행은 금융·통화정책을 총괄한다. 돈의 양과 금리 수준을 중앙은행이 결정한다. 금융시장의 시세를 좌우하는 가장 결정적인 변수가 바로 통화정책이다. 그런 만큼 중앙은행과 보조를 맞추지 않고서는 투자에 성공할 수 없다. 제아무리 뛰어난 투자의 신이라 해도 중앙은행에 맞서면 패가망신한다. 중앙은행의 기능 중 가장 무서운 것이 금리다. 주식이나 채권은 물론 비트코인·이더리움·리플 등 가상 암호화폐와 금값·국제유가도 금리에 따라 춤을 추게 된다. 중앙은행 중에서도 기축통화인 달러를 찍어내는 미국 연준의 힘이 가장 세다. 그런 만큼 "연준에 맞서지 마라"는 속담은 뉴욕증시를 넘어 전 세계 경제에 통용되는 글로벌 경고이기도 하다.

그 막강한 미국 연준이 요즘 들어 힘을 제대로 못 쓰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에 눌려 연준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제롬 파월의 연준은 코로나 때 풀린 돈이 물가를 위협하자 2022년부터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려 인플레를 잡았다. 물가가 어느 정도 잡히자 2024년 9월부터는 침체된 경기를 활성화하고 고용을 촉진하겠다며 금리인하를 단행하기 시작했다. 2025년에도 미국의 기준금리를 4차례 더 내리겠다고 예고했다.

연준의 금리인하 계획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2025년 1월과 3월에 FOMC를 잇달아 열었지만 당초 약속했던 금리인하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두 번 연속으로 금리를 동결했다. 파월 연준 의장이 불과 3개월 전에 점도표를 통해 한 인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파월 의장은 창졸간에 거짓말쟁이 '양치기 소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연준의 연이은 금리인하를 믿고 투자한 사람들은 큰 손해를 봤다. 연준에 맞서 손해를 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연준을 믿었다가 낭패를 본 투자자가 적지 않다. 미국 뉴욕증시에서는 연준에 대한 의심이 짙어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당초 예고한 만큼 올해 중 네 번의 금리인하를 통한 경기부양 기조를 계속 이어가기 어렵다고 보는 분위기다.
연준의 금리인하 행보를 막은 것은 다름 아닌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으로 물가가 오르면서 연준이 금리인하를 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트럼프 관세 폭탄으로 부과되는 관세는 결국 미국 소비자가 부담할 수밖에 없다. 추가 관세만큼 물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물가와 통화 가치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는 연준으로서는 금리인하는커녕 오히려 금리인상을 단행해야 할 수도 있다. 오락가락하는 연준의 행보에 시장의 실망은 커지고 있다.

이 와중에 뉴욕증시의 메인 언론인 블룸버그가 "이제 그만 연준은 잊어라"는 특집기사를 내 주목을 끌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연준에는 시장을 주도할 힘이 없다면서 아예 무시해 버리라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연준 대신 재무부가 금융·통화정책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면서 ‘베선트의 재무부에 맞서지 마라’고 강조했다. 트럼프가 임명한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취임하자마자 국채금리 인하를 약속해왔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리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 실세금리의 한 축인 국채금리를 내리기는 결코 쉽지 않다. 더구나 지금 미국은 국가부채와 재정적자의 누적으로 국채를 추가 발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채 발행은 채권시장에서 공급 과잉을 몰고 와 금리를 올릴 수 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베선트는 국채금리를 약속대로 내리고 있다. 금융 규제를 풀어 은행 등 대형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국채 매입을 대폭 늘리도록 했다. 암호화폐 스테이블 코인의 담보를 통해 국채 판매를 늘리기도 했다. 일본과 유럽 등을 설득해 중국으로 빠져나간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매물 폭탄도 상당 부분 해소했다. 또 정부 발행 물량도 억제해 공급 확대에 따른 금리인상을 차단하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의 국채금리가 내려가고 있다. 블룸버그는 바로 이 점을 들어 베선트의 재무부가 연준을 꺾고 금융시장의 새로운 황제로 등극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베선트의 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시작하자 월가 국채 전문가들도 국채금리 전망을 하향 조정하기 시작했다. 바클레이스와 소시에테제네랄 등 월가 주요 기관의 전략가들은 올해 연말 미 국채 10년물 금리 전망치를 모두 내렸다. 이들은 이 같은 조정에 대해 베선트 장관의 ‘캠페인’ 때문이라고 밝혔다. 베선트 장관의 10년물 국채금리 억제 발언은 단순한 구두 경고가 아니며 10년물 입찰 규모를 제한하거나 채권 수요를 늘리기 위해 은행 규제를 완화하는 등 구체적인 조치가 뒤따를 수 있다고 전략가들은 분석했다. BNP파리바의 미국 금리 전략 총괄인 구니트 디힝그라는 “채권시장에서 그동안 ‘연준에 맞서지 마라’는 말이 종종 언급됐지만 이제는 ‘재무부에 맞서지 마라’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준에 맞서지 마라"는 뉴욕증시의 속담이 이제는 "베선트의 재무부에 맞서지 마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미국 국채금리는 최근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두 달 사이 10년물 국채금리는 0.5%포인트나 하락했다. 베선트의 힘이다.

미국 월가의 대형 금융기관들 사이에서 국채금리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금융기관들이 금리 전망치를 낮춘 주된 근거는 베선트 장관의 정책 기조다. 베선트 장관은 최근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인하 촉구와 관련해 “그와 나는 (기준금리가 아닌) 국채 10년물 금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베선트는 10년물 국채 경매 규모 제한, 국채 수요 진작을 위한 은행 규제 완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정부효율부(DOGE)의 재정적자 감축 지지 등의 정책 수단을 활용할 수 있다는 방침이다. 베선트 장관은 당분간 장기채 발행 규모를 기존대로 유지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베선트는 헤지펀드 기업인 '키 스퀘어 그룹(Key Square Group)'의 창업자로 뉴욕증시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콘웨이에서 태어났다. 부동산 개발업자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예일대에서 정치학 학사를 취득한 후 1991년 조지 소로스의 펀드에 합류했다. 소로스 펀드가 1992년 영국 파운드화 공매도를 할 때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담당했다. 2011~2015년 소로스펀드의 최고투자책임자(CIO)로 재직했다. 2013년에는 일본 엔화에 대한 공매도로 10억 달러의 수익을 냈다. 동성애자다. 베선트의 남편은 뉴욕주 뉴욕시 검사다. 대리모를 통해 출산한 두 아이를 자식으로 키우고 있다.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 기간에는 트럼프 선거 캠프에 200만 달러를 기부했다.

베선트는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이 미국이 유럽 스타일의 사회민주주의 국가가 되지 않고 부채의 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면서 국가부채 감축을 트럼프 2기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국가부채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스테이블 코인을 대량 발행해 국채를 인수하자는 것도 베선트의 구상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주필/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