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15일(토) 오후 6시,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정경화 류 프로젝트’ 주최·주관, 성재형숨무용단· 김숙자춤보존회·문묘일무전통예술진흥원 후원, 정경화(성신여대 무용예술학과 초빙교수)의 춤 '揮-흩날리다Ⅱ'가 공연되었다. 정경화는 선화예중·고, 이화여대 무용과, 성균관대 무용학 박사에 이르기까지 전통과 창작을 오가며 실기와 이론적 학습에 매진했다. 현재까지 다수의 전통춤 개인 공연과 '향미사' 연작과 '까마귀 탱고'에 이르는 창작춤 안무를 지속해 오고 있다.
정경화 예술감독, 재구성, 연출, 출연의 '揮-흩날리다Ⅱ'는 정신(精神): 부정놀이춤(경기, 김숙자류 정경화 춤), 동정(動靜): 살풀이춤(경기, 한성준 한영숙류, 김현정 춤), 전신(傳神): 즉흥무(경기, 한성준 강선영류, 정경화 춤), 초예(超詣): 승무(호남, 이매방류, 류일훈 춤), 실경(實境): 설북춤(경기, 김숙자류, 정경화 춤), 섬농(纖穠): 교방굿거리춤(영남, 김수악류, 김현정 춤), 기려(綺麗): 태평무(경기, 한성준 강선영류, 정경화 춤)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정신(精神): 부정놀이춤(경기, 김숙자류, 정경화 춤), ‘샘물의 바닥처럼 청명하고, 막 터트리려고 하는 꽃망울처럼 충만하다.’ 무굿의 시작에 부정을 가셔내고 집안의 잡귀를 몰아내며 군웅 오실 터를 닦는 춤이다. 귀신의 살이 몸에 닿으면 재앙을 받는다는 속설에서 신의 힘을 빌려 재난 흉액 소멸을 기원한다. 가락은 부정놀이 장단, 섭채, 부정놀이, 반서름, 조임채, 넘김채, 자진굿거리, 당악의 순서이다. 김숙자에서 김운선(국가무형유산 살풀이춤 보유자)으로 이어지며 미학적 예술성이 두드러진다. 정경화는 이 춤을 전수하며 2023년 첫 공연 이래 해마다 2~3회 무대에 선보이고 있다. 붉은빛이 무대를 감싸며 악사들의 요란한 연주에 맞춘 적색 주조의 의상을 입은 정경화의 현란한 춤은 사방의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며 집중의 분위기를 유발한다. 춤꾼이 무대를 완전히 장악한 다음 바른 정신의 춤 서사가 시작된다.
동정(動靜): 살풀이춤(경기, 한성준·한영숙류, 김현정 춤), ‘고요한 것은 하늘로부터 받은 본성,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타고난 욕구이다.’ 춤은 배경 막에 영상으로 한자 ‘動靜’(동정)이 다 쓰여 질 때까지 추어진다. 살풀이춤은 지역, 나이, 연희자, 의상의 색상, 반주 등에 따라 느낌을 달리한다. 20세기 초 한성준의 손녀 한영숙이 무대 춤으로 재구성한 춤이다. 이번 공연의 살풀이춤은 한영숙의 제자 손경순으로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춤으로 남도 무무(巫舞)의 영향을 받은 살풀이장단에 맞추어 춤추는 이의 심적 고저 또는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였다. 김현정은 긴 천을 운용하며 이승에 이는 정한을 끊어내며 독창적 표정 연기로 열정과 냉정을 오가며 백색 춤 수사에 진심을 보탠다. 정한과 비애를 풀어 기쁨으로 변화시키는 이중구조를 표현하며 정중동과 절제미의 극치를 보이며 고도의 미학적 예술성을 견지한다.
전신(傳神): 즉흥무(경기, 한성준·강선영류, 정경화 춤), ‘내재적 정신 본질의 표현은 자유로운 초월이다.’ 즉흥무는 몸과 마음을 바로 세운다는 의미인 입춤으로 전통적 기본 춤으로서 수건춤으로도 불리며 레퍼토리화 되었다. 작은 수건을 운용하는 즉흥무는 춤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춤추는 이의 즉흥성이 인정되며, 한과 조응(調應)하는 포용성의 맵시 춤이다. 전통예술의 예술적 혼을 되살려 고도의 미를 창출하는 정형 춤으로 존재한다. 정경화의 춤에 대한 과거의 감각은 현재의 동작이 되며, 미래의 기억이 된다. 춤은 시간을 타고 넘어 반복되고 확장된다. 전통춤 ‘즉흥무’ 조형에는 연희자가 세월을 이어온 수많은 몸의 기억이 응축되어 있다. 춤사위와 발디딤, 움직임과 수사, 표정 연기와 소품 운용은 사연을 단다. 신의 경지로 유혹하는 춤 연기가 즉흥무에 담긴다.
초예(超詣): 승무(호남, 이매방류, 류일훈 춤), ‘세속을 초탈하고 자연을 숭상하는 운일의 정취이다.’ 국가무형유산 ‘승무’는 민속춤의 정수이며 한국 춤의 모든 기법이 집약되어 있다. ‘승무’와 ‘처용무’의 전수자 류일훈(깃’s 무용단 대표)은 경희대 무용학과 박사과정 출신으로 품위와 격조 높은 예술 춤을 지향한다. ‘승무’는 전래 속설은 많으나 문헌 기록이 없어 창제 과정이 확실치 않으며, 조선 중기 불교 의식무의 영향을 받은 기방 예인에 의해 창작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힘 있고 호화로운 장삼 놀이는 속세의 번뇌와 수도승의 고행을 표현하듯 하며 공간의 미적 형태가 아름다우며 내공의 호흡을 표출하는 멋과 흥을 담고 있는 춤사위가 일품이다. 류일훈의 ‘승무’는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통과의 한 부분으로서의 슬픔에 대한 사유를 스쳐 간다. 푸릇한 고뇌가 노련한 고독에 버금가는 아픔으로 번져왔다.
실경(實境): 설북춤(경기, 김숙자류, 정경화 춤), ‘감정과 생각이 느끼는 대로 표출하니 기세가 충만하다.’ 설북춤은 소고보다 큰 북을 한 손에 들고 추는 춤이다. 설북놀이는 안성지방 농악 가운데 개인 놀이였으며 호적, 꽹과리, 징, 장구 등의 악기에 맞추어 길군악, 굿거리 동살풀이, 자진굿거리 순으로 북놀이를 한다. 지역 중심의 유파의 전통춤은 기억의 순환을 뚜렷하게 한다. 그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 특유의 정서와 몸짓을 담고 있다. 정경화는 “춤은 기억을 변형하고, 재창조하며, 새로운 감각을 부여한다.”라고 말한다. 춤은 같은 춤이라도 매번 다른 감정이 실리고 다르게 표현된다. 춤이란 기존의 움직임 위에 세월의 흐름에 따라 유화(油畫)의 덧칠처럼 덧칠되며 세련미와 깊이를 더해 발전하며 변화를 거듭하면서도 본질적인 정체성을 유지한다. 문화의 원형도 시대적 차이가 있다.




섬농(纖穠): 교방굿거리춤(영남, 김수악류, 김현정 춤), ‘아름답고 그윽한 깊은 골짜기는 때때로 미인의 풍모를 보인다.’ 김현정이 선보인 춤은 김수악류 교방굿거리춤이 진주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 이전, 1998년 호암아트홀에서 예전무용단에 의해 초연된 춤이다. 당시 굿거리장단으로만 추어지던 굿거리춤을 자진모리장단에 소고를 들고 추는 춤으로 재구성한 ‘입춤’이다. 오래전 배워 익혔던 춤을 다시 기본을 다지고 호흡을 정리하며 잊지 말아야 할 것들과 자신만의 것들을 깊이 고민하며 무대에 올린 춤이다. 이 춤은 민속춤의 지역적 다양성을 소개하고, 각 지역 춤의 독창성과 미학적 가치를 재발견, 세대 간 소통의 장을 마련하며 글로벌 문화 교류의 맥을 형성한다. 진주 교방굿거리춤은 전통춤의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해외 관객들도 공감할 수 있는 국제적 무대 형성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공연이었다.
기려(綺麗): 태평무(경기, 한성준 강선영류, 정경화 춤), ‘우아함과 풍부함을 근본으로 화려하게 아름답다.’ 국가무형유산 태평무는 한성준의 왕십리 당굿을 바탕삼아 무대 춤으로 구성한 것이다. 나라의 풍년과 태평성대를 축원하는 춤이다. 재정립된 태평무는 정중동의 미적 형식을 소지하며 의젓하면서도 경쾌한 춤사위, 절도 있게 몰아치는 발 디딤새가 섬세하고 신명과 기량의 과시가 돋보인다. 음악은 진쇠 장단, 낙궁, 터벌림, 올림채. 도살풀이 등 다양한 가락으로 구성된다. 정경화는 1997년 강선영 선생과의 인연을 시작으로 2001년 태평무를 이수하였고 현재까지 태펑무의 예술적. 미학적. 철학적 가치를 연구·교육·공연함으로써 값진 문화유산 계승에 진력하고 있다. 정경화는 전통춤 공연이 있을 때마다 태평무를 고정 레퍼토리화 하면서 자신만의 특화된 태평무의 무게감과 장엄미를 연기해 내고 있다.
정경화 재구성, 안무, 연출, 출연의 '揮-흩날리다Ⅱ'는 미디어아트와 함께 선보이는 휘(揮)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이다. ‘지역 중심 유파별로 보는 한국 민속춤의 흐름: 춤-기억의 순환’이라는 주제로 경기, 호남, 영남 세 지역의 대표 민속춤을 유파별로 조명함으로써 한국 민속춤의 다양성과 깊이를 조망하였다. “춤은 인간이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몸은 기억을 품고 기억은 춤으로 표현되며, 춤은 다시 새로운 기억을 만든다. 지역 중심의 전통춤 유파들은 이 과정을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내며, 고유한 움직임 속에서 역사와 문화, 개인의 감각이 교차한다.” 춤은 삶 속에서 끊임없이 순환하며, 몸과 마음을 이어준다. 음악이 흐르면 춤을 추고, 기억은 몸을 타고 흐르며, 춤은 시간 속에서 반복된다. 정경화는 이론적 갈증을 춤으로 예증하면서 해석의 다양성을 채집하는 소중한 시간을 공유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