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적인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는 금융 시장이 불안할 때마다 피난처로 자리매김하며 주목받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이후 관세 전쟁이 본격화하면서 이달 들어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11일(현지시각) 뉴욕 시장에서 미국 국채 기준물인 10년물 수익률은 장 초반 18bp(0.18%포인트) 넘게 상승한 4.582%까지 급등하며 지난 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지난주 4%로 거래를 마감한 뒤 주 초반인 7일에만 해도 4%를 잠시 밑돌았으나 이후 60bp 넘게 급등했다.
초장기 물인 30년물 국채 수익률은 지난 9일 거래에서 5.023%까지 치솟은 뒤 전일 잠시 되밀렸으나 이날 4.974%로 재상승하며 5%를 다시 위협하고 있다.
채권 수익률과 가격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시장에서는 중국 등 해외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를 매도하고 있다는 추측과 함께 헤지펀드들의 베이시스 거래 청산 등이 국채 가격 급락을 촉발했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 주 주요 교역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했으나 중국에 대한 관세는 145%로 인상하자 이날 중국은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84%에서 125%로 인상하면서 미국 국채 가격 급락을 부채질했다.
주요 외신들은 무위험 자산으로 인식됐던 미국 국채가 투자자들에게 이처럼 외면받고 있는 이면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해석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 국채는 글로벌 금융위기나 9/11 테러 및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됐을 때도 최고의 안전자산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무역에 대해 전면적인 공격을 시작하자 이제 안전한 피난처의 지위가 점점 더 의심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미국 국채가 신흥시장 채권처럼 위험 자산과 비슷하게 거래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미국 국채 가격 급락과 동시에 달러와 미국 주식 시장에서도 매도 공세가 이어졌다.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지수는 뉴욕 시장 초반 100 이하로 떨어지며 6개월 만에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달러화는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스위스 프랑화와 유로화에 대해 10년 만에 최대 하락 폭을 기록했다.
찰스 슈왑의 캐시 존스 수석 전략가는 "시장이 직면한 문제는 미국 정책에 대한 신뢰 상실"이라며 "관세 정책의 갑작스러운 변화로 인해 레버리지 거래가 무산되고 매수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국채 매도세가 더 지속될 수 있다고 전망하면서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을 팔고 유럽 시장으로 이동할 가능성에 주목했다.
블룸버그의 사이먼 화이트 매크로 전략가는 "미국 국채가 피난처의 지위를 잃고 있다"면서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도 약화되고 있으며 경기 침체 위험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두 자릿수의 재정적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자본이 미국을 떠나는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수정 기자 soojung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