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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렌즈] '관세 오징어 게임'인가, '죄수의 딜레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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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렌즈] '관세 오징어 게임'인가, '죄수의 딜레마'인가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이미지 확대보기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벌이고 있는 글로벌 관세 전쟁에서 세계 각국이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말은 두 사람의 협력적인 선택이 둘 모두에게 최선임에도 자신의 이익만을 고려한 선택으로 인해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심리학 용어다.

트럼프가 모든 나라를 대상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상황에서 다른 나라들이 연합해 미국에 대응하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을 제외하고, 어느 나라도 드러내 놓고 다른 나라와 공동 전선 구축에 나서지 않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트남·말레이시아·캄보디아 등 동남아 3국을 순방하면서 반미 연합 전선 구축에 나섰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0일간 유예한 상호관세는 베트남 46%, 말레이시아 24%, 캄보디아 49%다. 외신에 따르면 동남아 국가들은 주요 2개국(G2) 경제전쟁에 휘말려 의도하지 않은 타격을 받을 위험과 함께 한쪽을 편들다가 다른 편을 자극할 가능성 등을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작한 관세 전쟁의 최종 목표는 중국 함락이다. 미국은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한국을 비롯한 5개 핵심 우방국과 협상을 타결해 중국을 포위하려고 한다. 트럼프 정부에서 관세 협상을 총괄 지휘하는 야전사령관인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먼저 움직이는 사람의 이점(first mover advantage)이 있을 것이라면서 “보통 가장 먼저 협상을 타결하는 사람이 최고의 합의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베선트 장관은 지금 세계 모든 나라가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 현실을 관세 협상에 십분 활용하려고 한다. 미국이 모든 품목에 적용하는 보편관세·상호관세와 함께 철강·자동차·반도체·의약품 등에 대해 품목별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어서 미국과 먼저 협상을 타결하면 관세율이 낮아지거나 면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협상을 늦추면 조기 타결한 경쟁국과 달리 미국의 관세 폭탄이 집중적으로 투하되는 ‘관세 오징어 게임’의 희생자가 될 것이라는 게 미국의 메시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6일(현지 시각) 동남아 3국을 순방한 시 주석을 의식한 듯 일본과의 첫 관세 협상 테이블에 직접 등장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등으로 구성된 미국 협상팀이 일본 측 관세 협상 대표인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과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에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매우 생산적인 소통이 이뤄졌다”며 서둘러 성과를 내세웠으나 일본은 뒤로 움찔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협상 결과를 보고받은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17일 “양국 간 여전히 입장 차가 있고, 쉽게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주에 대미 협상에 나서는 한국도 ‘퍼스트 무버’의 이점을 노리고, 조기 타결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게 워싱턴 통상 전문가들의 일치된 조언이다.

한국은 특히 미국과 중국 간 협상이 끝내 결렬되고, 미·중 경제가 디커플링하는 사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이 관세 전쟁으로 중국의 입지만 넓혀주는 전략적 선물을 안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으로부터 보편관세·상호관세·품목관세를 얻어맞은 국가들이 거대한 시장을 보유한 중국을 대안으로 여길 수 있다고 WSJ가 강조했다.

미국은 대중(對中) 전선에서 패퇴할 위기를 맞으면 한미동맹 관계, 한국에 대한 안보·군사 지원 등을 내세우며 한국에 미국과 중국 중 양자택일 하라는 압박을 가할 수 있다. 한국 정부와 기업은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도 염두에 두면서 대미 협상에 나서야 한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