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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트럼프 미치광이 전략의 뿌리... 닉슨 쇼크와 헨리 키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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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트럼프 미치광이 전략의 뿌리... 닉슨 쇼크와 헨리 키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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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박사 글로벌 이코노믹 연구소장 /고려대 연구교수
'미치광이 전략'이라는 말이 있다. 의도적으로 미친 척 행동함으로써 상대를 혼란에 빠트리고 그 틈을 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전략이다. 국제정치학 교과서에 나오는 학문 용어다. 미치광이 전략을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인물은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외교관이었던 고(故) 헨리 키신저 박사다. 키신저는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외교안보 고문역을 하면서 그로 하여금 중국과 수교하도록 만든 유명한 인물이다.

원래 이름은 하인츠 알프레트 키싱거(영어: 헨리 앨프리드 키신저)였다. 1923년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났다. 938년 아돌프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스파탄버그에 있는 캠프 크로프트에서 군사훈련을 받았고 1943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전후 하버드대에 진학해 문학 학사와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은 '복원된 세계: 메테르니히, 로버트 스튜어트와 평화의 문제들'이다. 국제 관계론의 근대 현실주의 학교를 창립한 한스 J. 모건소가 그의 스승이다. 키신저는 1969~1977년 미국 외교정책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이 시기 닉슨 대통령을 보좌하며 미국과 소련 간 데탕트 정책을 개척했다. 중국의 "개방"을 이끈 1972년 저우언라이 총리와의 회담도 그의 작품이다. 1973년 베트남 종전 등의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요즘 세계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폭탄으로 아비규환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치광이 전략으로 뉴욕증시를 비롯한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뉴욕증시뿐 아니라 달러환율·국채금리·국제유가·금값 그리고 비트코인·이더리움·리플 등 가상 암호화폐도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는 2015년 '불구가 된 미국'이라는 책을 발간한 적이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나는 무슨 행동을 할지, 혹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지 않다. 나는 예측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상대를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미치광이 행보가 고도로 계산된 협상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미치광이 전략은 상대가 정상인이라는 가정하에 자신이 광인처럼 행동하는 전략이다. 그래서 외교 상대가 상식적이지 않을 경우, 즉 똑같이 미친 놈이라면 전혀 먹히지 않는다. 오히려 진짜 전쟁까지 가고 마는 역풍이 불기도 한다. 실제 역사에서도 전쟁을 피한답시고 도발하며 상대방을 약 올리다가 되레 상대방의 뚜껑이 열려서 선전포고를 받고 전쟁이 시작된 사례가 적지 않다. 트럼프의 미치광이 전략은 닉슨-키신저와 많이 닮았다. 닮은 정도를 넘어 아주 판박이이다.
닉슨이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 미국은 베트남전쟁으로 지쳐 있었다. 국민들의 피로감이 높았고, 경제적으로 인플레이션과 무역적자가 누적됐다. 대외적으로는 소련의 강력한 부상이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에 균열을 내던 시기였다. 미국의 국력이 완연한 쇠퇴기였을 때 닉슨은 ‘베트남 철군’ 공약을 내걸고 미국의 안정을 원하는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 유권자를 파고들어 대선에서 승리했다. 트럼프 역시 천문학적 규모의 무역적자에 인플레이션이 치솟는 등 미국 경제가 추락하던 시점에, 또 신흥 패권국 중국이 미국에 강력한 위협 세력으로 떠오르며 미국 중심의 기존 질서가 위태로웠을 때 등장했다. 트럼프는 미국의 힘이 쇠락해진 시점에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내걸고 저소득·저학력 백인 남성 중심의 ‘침묵하는 다수’를 자극해 지지층을 다졌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닉슨과 트럼프는 대내외 정책 면에서도 맞닿아 있다. 닉슨은 ‘미국은 베트남전쟁과 같은 군사적 개입을 피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고 1972년 베트남 파병 미군 50만여 명의 철수 결정을 내렸다. 주한미군 7사단도 철수시켰다. 트럼프의 ‘안보 무임승차론’이 이와 궤를 같이한다. 그는 이미 한국을 향해서도 ‘머니 머신’(부자 나라)이라 부르며 방위비 증액을 압박해 왔다. 트럼프는 ‘동맹 중시’ 기조 대신 동맹국이라도 거센 위협을 가해 자국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고 있다. 트럼프의 대중국 전략은 닉슨이 미·소 냉전 구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미·중 화해 드라이브를 걸었던 ‘키신저(당시 국무장관) 전략’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신흥 패권국으로 부상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와 손잡고 신냉전 체제를 유리하게 가져가려는 ‘역(逆)키신저 전략’이다.

트럼프 관세 폭탄의 뿌리도 닉슨에 있다. 닉슨은 1971년 달러 중심의 금본위제도인 브레턴우즈 체제를 끝내겠다고 발표해 이른바 ‘닉슨 쇼크’를 불렀다. 당시 달러 보호와 무역수지 개선을 이유로 ‘보편관세 10%’란 초강수를 뒀다. 경쟁국의 통화 가치 절상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였다. 닉슨의 조치는 공식적으로 브레턴우즈 체제를 폐지한 것은 아니었으나 브레턴우즈 체제의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를 중지시키면서 체제를 사실상 무너뜨렸다. 닉슨은 브레턴우즈 체제의 개혁이 이루어지면 달러의 금태환 제도를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으나 체제를 개혁하기 위한 모든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1973년에 이르러 브레턴우즈 체제는 사실상 변동 환율 불환 제도로 대체됐다. 닉슨 쇼크는 결국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트럼프와 닉슨의 평행이론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둘은 서로 오랫동안 교류하면서 가치관과 철학을 공유해왔다. 1982년 36세의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트럼프가 69세 닉슨 전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트럼프와 닉슨은 11년간(1982~1993) 수차례 편지를 주고받았다. 1982년 첫 편지에서 트럼프는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닉슨에게 "그때 만나서 영광이었다"고 적었다. 닉슨은 트럼프에게 "앞으로 (가치 있는) 조언을 공짜로 제공하겠다"고 화답했다. 둘은 미식축구·부동산·베트남전쟁·미디어 전략 등을 주제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닉슨은 트럼프가 인수했던 뉴저지 제너럴스 풋볼팀을 어떻게 다룰지도 조언했다.

이들이 주고받은 편지는 2020년 일반에 공개됐다. 리처드 닉슨 재단의 수석 부사장인 짐 바이런은 AP통신에 "편지들은 자료 4600만 장, 사진 30만 장 등이 포함된 기록 보관소에서 2년간 연구를 통해 발견됐다"고 전했다. 이 편지는 트럼프에게 닉슨이 어떤 영향을 줬는지 잘 보여준다. 편지뿐만이 아니다. 둘은 수시로 만나 정보와 비전을 공유했다. 정치적 동지였던 것이다. 닉슨은 처음부터 트럼프가 정치가로 성공할 거라고 예견했다. 1987년 12월 당시 41세 사업가였던 트럼프에게 닉슨은 대선 출마를 권유하는 듯한 편지를 썼다. 편지에서 그는 "내 아내가 트럼프 당신이 ‘도나휴 쇼’(MSNBC의 유명 토크쇼)에서 대단했다고 말했다. 당신이 출마 결심만 하면 당선될 것이라고 했다"고 적었다. 닉슨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사실상의 스승이다. 닉슨을 공부하면 트럼프 관세 폭탄의 본질과 향후 행보도 예측해볼 수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