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라인’과 야후 재팬 서비스 회사인 소프트뱅크 자회사 ‘Z홀딩스’는 18일 오후 5시 일본 도쿄 그랜드프린스 호텔에서 공동기자 회견을 갖고 경영 통합 합의서 체결 소식을 공식화했다. 양측은 또 이 자리에서 매년 1000억엔(약 1조700억원)을 AI 분야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네이버 라인·소프트뱅크 야후재팬 각각 50% 지분…AI에 매년 1조원 투자
두회사의 제휴는 단순한 핀테크나 전자상거래뿐 아니라 보다 근원적 경쟁력의 원천인 AI기술을 기반으로 한 더 강력한 글로벌 IT 회사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18일 오전까지만 해도 네이버는 “소프트뱅크와 라인, 야후 재팬 운영사인 Z홀딩스의 경영통합 합의서를 체결하기로 결정했다”고 간단히 발표했다. 그러나 오후가 되면서 일본에서 AI분야 투자전략이 나오면서 이해진과 손정의의 거대한 글로벌 AI기술 기업 구상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날 오후 5시 공동발표장의 핵심은 합작회사의 지향점이 글로벌 AI 기반 업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두 회사는 미중글로벌 IT거인에 버금가는 한일 AI 플랫폼을 완성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데자와 츠요시 라인 사장은 18일 “글로벌 IT 업계에서는 인재, 자금, 데이터가 강자에게 몰린다”며 “현재는 안타깝지만 시가총액, 이익, 연구개발 등 미국의 IT 거대기업과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카와베 Z홀딩스 사장은 “야후, 라인, 네이버 등은 모두 동아시아 회사"라며 ”GAFA가 디지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미국, 중국 다음 가는) 제3 세력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해진-손정의의 꿈, 글로벌 IT 기업 대항마”와 “일본판 알리바바”
두회사의 글로벌 제휴와 합작 움직임 배경에는 날로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는 미·중 글로벌 IT공룡들의 파워와 상대적으로 날로 위축되는 한일 기업들의 존재감이 자리한다.
미국 중심의 강력한 IT기업군인 GAFA, 그리고 중국 중심의 IT기업군 BATH의 글로벌 양극화 체제에 한국과 일본 기업들은 점점 설자리를 잃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결국 이해진 GIO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는 글로벌 IT 제국주의에 맞선 동맹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라인의 일본 내 월간 이용자 수는 8200만 명으로 일본 최대지만 지난 6~9월 월간 이용자 수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5%에 그쳤다. 또한 지난 1~9월에는 339억 엔(약 3649억 원)의 적자를 냈다. 네이버도 국내 포털 서비스는 압도적인 1위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국내 시장이 제한적이다. 두 회사 모두 혼자의 힘만으론 구글과 알리바바와 같은 글로벌 기업에 대항해 승산이 낮다고 본 것으로 해석된다.
손정의 회장은 이번 제휴로 일본판 알리바바를 꿈꿔보게 된 것은 물론, 최근 겪은 엄청난 투자손실을 만회할 좀더 안전한 투자상대를 확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손 회장은 소프트뱅크를 통해 우버·위워크 같은 기업들에 투자했지만 이들의 경영악화로 최소 수조 원 대 투자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닛케이는 지난 14일 “손 회장이 야후를 중심으로 일본에서 알리바바를 실현하려 한다”고 말했다. 중국 알리바바는 12억명의 결제서비스를 토대로 전자상거래 등 중국인의 생활과 관련된 모든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하는 최대 플랫폼이다. 그러나 그간 AI 분야에도 역점을 둬 온 두 회사의 수장들의 행보를 보면 이들의 야망은 일본을 너머 아시아와 그 너머를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회사 통합의 결실 ‘Z홀딩스’의 기대 효과는?
8000만 명의 이용자를 거느린 라인과 5000만 명의 이용자를 둔 야후 재팬이 통합된 Z홀딩스가 출범하면 이용자가 1억 명이 넘는 거대 인터넷 서비스 플랫폼으로 거듭난다. 두 회사의 결합은 국내 포털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 같은, 아니 그 이상의 연쇄반응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기존 사업인 검색 포털과 메신저 결합에 시너지가 예상된다. 라인과 야후재팬은 각각 일본 모바일 메신저와 검색 서비스 시장에서 선두 사업자로 현지 이용자를 기반으로 시장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14년 카카오는 다음을 합병한 후 카카오톡을 통해 국내에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다음 콘텐츠를 카카오톡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주문·배달·페이·투자·쇼핑 등을 카카오톡 하나로 가능하게 만들었다. Z홀딩스도 이같은 전략을 따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즉, 회사 통합의 산물인 Z홀딩스는 간편결제와 이커머스 사업에 라인의 파워를 더하면서 모바일 연결성을 강화해 나갈 수 있게 된다. 라인도 다른 서비스로의 확장이 용이해진다. 또한 방대한 결제 데이터가 쌓이면서 자연스레 핀테크 사업 확장에도 유리하지게 된다.
하지만 18일 발표에서 보듯 두회사가 합작사업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문은 글로벌 AI 기술 네트워크로 읽힌다. 한국과 일본, 동남아, 유럽을 잇는 기술·투자·데이터 네트워크를 통해 글로벌 AI 최강자로 도약하겠다는 각오다. 손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는 AI 펀드를 통해 동남아 곳곳의 AI 기술기업에 투자를 해 왔다. 네이버도 2017년 제록스리서치센터유럽(XRCE) 인수 후 공격적으로 AI 기술 개발과 기업투자에 나섰다. 특히 네이버는 지난달 ‘데뷰(DEVIEW) 2019’에서 발표한 한국과 일본, 프랑스, 베트남 등 동남아를 잇는 ‘유라시아 기술 연구 네트워크’ 구상이 이번 소프트뱅크와의 제휴로 적잖은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NH투자증권은 “메시징 앱과 포털 사이트의 결합으로 강력한 경쟁력을 확보, 글로벌 인터넷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게 됐다”고 평가했다. KB증권은 “소프트뱅크와 제휴해 네이버로서 세계 시장에서의 존재감이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해진과 손정의, 그들은 누구인가
지난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해진 GIO는 1999년 네이버를 창업했다. 네이버와 한게임의 합병으로 탄생한 NHN의 공동대표를 지난 2001년부터 맡았으며 2002년에는 네이버에 지식인 서비스를 개시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으로 포털 업계의 1위에 등극했다. 지난 2013년부터 현재까지 네이버 자회사 라인의 회장을 맡고 있으며 2017년 네이버 GIO도 함께 맡았다.
네이버 자회사인 라인은 한국의 NHN과는 별도로 NHN 재팬(라인 코퍼레이션)에서 개발했다. 라인은 일본 내에서 점유율이 가장 높은 메신저이며 한국의 카카오톡의 위상과 거의 비슷하다. 일본의 인구가 1억2000만명인데 2019년 6월 기준 라인을 이용하는 월간 이용자 수가 8000만 명에 달했으며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 라인 이용자 수는 1억6500만 명으로 집계됐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1957년 일본 사가현 도스시에서 출생했으며 재일교포 3세다. 1981년 9월 소프트웨어 유통업체인 소프트뱅크를 설립했으며 그 후 1996년 야후재팬을 설립했고 2015년까지 야후재팬 이사회 회장을 역임했다.
소프트뱅크 그룹은 일본 최대 IT 회사로 일본 3대 통신사를 넘어 인공지능 로봇분야에도 진출했다. 핵심 계열사로써는 소프트뱅크 모바일, 소프트뱅크 커머스, 야후 재팬, ARM, 보스턴 다이내믹스, 스프린트가 있다. 한국 내에는 자회사로 소프트뱅크 벤쳐스, 소프트뱅크 커머스 코리아를 운영중이다.
홍정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goodlif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