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적 의미의 갈라파고스는 보존할 가치가 있는 천혜의 보고(寶庫)로 통하지만, 기술적 의미로는 고립경제를 일컫는 시대착오적 '정보쇄국'과 동의어로 쓰인다.
일본 ICT산업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인터넷, 모바일TV 상용화와 음악파일 다운로드, 전자결제, 디지털TV 등으로 앞선 기술력을 선보였다. 그러나 인구 1억2000여 명에 달하는 든든한 내수시장에 만족해 글로벌 표준보다는 '일본식 모델'만을 고집해 ICT 왕좌의 자리에서 초라하게 물러났다.
코로나19를 맞아 우리 사회 곳곳에 언택트(비대면) 바람이 거세게 불며 산업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대표적 내수산업인 통신업계도 전국에 망을 깔아놓고 매달 통신요금을 받는 '곶감 기업' 방식으로는 미래의 경쟁력을 잃고 결국 경쟁산업에 흡수될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낄 것이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다’는 속담이 있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콘텐츠제공사업자(CP)들의 무임승차를 막을 일명 ‘넷플릭스법(망 품질 유지 의무법)’이 가까스로 마련됐다. 그렇지만 유튜브와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공룡 포식자들은 CP를 무기로 통신망 이용권 공세를 더욱 강화할 기세다.
통신업계의 방어적 고민은 더 깊어진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최근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슬로우 다운(천천히 행동하기)을 요구하고 있지만 ICT 기업은 글로벌 위기 극복을 위해 어느 때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변해야 한다”며 “전 영역에서 구 시대 공식을 모두 깰 때”라고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 흔적없이 사라지지 않으려면, 변화의 흐름을 주도하고 개척해야 한다.
스웨덴의 통신 장비 제조사 에릭슨(Ericsson)은 글로벌 통신서비스 업종의 수익은 2019년 1조6000억 달러에서 2026년 2조3000억 달러로 7000억 달러의 ‘새로운 시장’의 출현을 예측했다. 이 가운데 88%인 6190억 달러가 스마트팩토리·스마트시티·자율주행 등 5G로 인해 새롭게 발생하는 B2B 비즈니스에서 창출될 것으로 내다봤다.
4차 산업혁명 핵심 중 하나인 AI(인공지능)의 시대를 이끌기 위한 최상위 공룡 기업들의 합종연횡도 활발하다.
수 년 전부터 구글과 월마트는 'AI 음성 쇼핑' 동맹을 맺고 아마존에 대항해 온오프 유통의 최강자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아마존은 AI스피커 시장 선점을 위해 MS와 제휴를 맺었다. 라인과 야후재팬은 동남아 AI 시장 선점을 위해 손을 잡았다. 중국의 BATH(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화웨이)도 'AI 전선'을 구축했다.
국내에서도 KT-LG전자-LG유플러스 그룹군과 SK텔레콤-삼성전자-카카오 그룹군을 축으로 한 ‘AI 연합군'이 속속 출범하고 있다.
때마침 문재인 정부도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기 위해 한국판 디지털 뉴딜정책을 내세우며 다양한 분야의 데이터화와 5G를 비롯한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에 이은 휴먼 뉴딜을 통해 오는 2025년까지 총 76조 원을 투자해 일자리 55만개를 만들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8월 시행되는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은 데이터 규제보다 활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 주도 재정투자 확대와 선언적 정책으로는 ‘밑빠진 독에 물 붓는 정책’이 되고 만다. 특정 이익집단을 넘어 다수가 공유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통신·의료·금융 등 이종산업 간 데이터 결합의 제도적 물꼬를 마련해야 한다. 디지털시대에 한참 못미치는 ‘낡은 규제의 깃발’을 뽑고 스마트산업으로 고도화하도록 ‘튼튼한 안전판’을 만들기 위해 정부와 국회가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위기를 갈라파고스섬에 스스로 갖혀 퇴화할 것인지, 연대와 공유를 통한 생산적 파괴로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설지 선택의 길목이다.
최영운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oung@g-enews.com